1919년 '의리적…' 첫 개봉작10월27일 '한국영화의 날'로 1935년 '춘향전' 첫 발성영화'마부' 베를린영화제서 은곰상… '국제시장' 28일만에 1425만

지난해 12월17일 개봉한 <국제시장>은 개봉 28일 만에 천만 관객 돌파에 이어 1425만 명을 기록하는 금자탑을 세웠다. 2012년은 한국영화 관객이 1억 명을 돌파한 의미심장한 해다. 한국영화의 시작은 초라했다. 60-70년대에 엿장수들이 동네에 오면 아이들이 빈병, 폐지를 들고나가 달콤한 엿이나 둥글게 생긴 깡통과 교환했다. 깡통에 들어 있는 필름은 밀짚모자에 두르면 햇빛에 반사되었던 폼 나는 아이들의 놀이기구였다. 극장상영 후 버려진 소중한 한국영화필름들이 망실되었던 현장이다. 시대별로 중요한 영화들을 추억해 보자.

한국영화의 시생대

1919년 10월 27일. 한국 최초의 연쇄극인 김도산 감독의 <의리적 구토(義理的 仇討)>가 단성사에서 개봉되었다. 그날이 '한국영화의 날'로 지정된 이유다. 나운규의 <아리랑(1926)>은 한국영화예술의 정점을 찍었고 이규환감독의 <임자 없는 나룻배(1932)>도 한국예술영화의 좌표가 되었다. 이명우 감독의 한국 최초 발성영화 <춘향전(1935)>은 무성영화시대를 마감시키며 변사들을 퇴출시켰다. 이후 일제에 의해 암흑기를 맞은 한국영화는 해방 후 제작된 최초의 영화 <자유만세(1947)>를 명동 시공관에 올리며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50-60년대: 한국영화 전성시대

이병일감독의 <시집가는 날(1956)>은 제4회 아시아영화제에서 특별희극상을 받아 한국영화사상 최초로 해외 영화제 수상작이 되었다. 1964년은 무려 147편의 영화가 제작되며 양적 팽창을 이루며 흥행규모도 해방이후 처음으로 외화를 능가했다. 질적으로도 성장했다. 강대진감독의 <마부(1961)>가 제11회 베를린 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했다. 그로인해 당시 한국영화는 '고무신관객들만 본다'는 폄하적인 시선에 변화가 생겨났다. 또한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 <갯마을(1965)>등 문예영화들과 <맨발의 청춘(1964)>같은 청춘물이 큰 인기를 끌었다. 또한 윤정희의 데뷔작인 <청춘극장(1967)>은 그 해 흥행순위 1위를 차지하며 이후 문희, 남정임과 여배우 트로이카 시대가 개막했다.

70년대: 한국영화의 침체기

'난세에 영웅이 탄생한다'는 말처럼 극에 달한 통제와 검열에도 이장호감독의 <별들의 고향(1974)>, 하길종감독의 <바보들의 행진(1975)> 같은 걸작들이 탄생했다. 김호선감독의 <겨울여자(1977년)>는 58만6천명의 흥행 신기록을 세웠고 성역 같았던 이 기록은 23년 후 임권택감독의 <장군의 아들(1990)>(67만9천명)에 의해 깨졌다. 70년대 중반 이후 <진짜진짜 잊지마>, <고교 얄개> 같은 하이틴 영화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1980년대: 에로물 범람으로 얼룩진 빛과 그림자

80년대 한국영화의 65%는 성인물이었다. '한국영화는 3류'라는 등식이 형성되는 순간이다. 그래서인가 씻김굿처럼 임권택 감독의 <만다라(1981)>와 강수연에게 모스크바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긴 <아제아제 바라아제(1989)>, 로카르노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배용균 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1989)> 같은 불교소재 영화들이 한국영화의 존재감을 살렸다. 박광수 감독의 <칠수와 만수>, 이명세의 <첫사랑>등은 외국비평가들로부터 '한국의 새로운 물결(The Korean New Wave)'이란 평가를 받았다.

90년대 이후 현재의 한국영화

임권택의 <서편제(1993년)>는 매혹적인 남도소리로 100만 관객을 매혹시켰다. 1174만 명을 기록한 강재규의 <태극기 휘날리며>는 한국을 세계영화인들이 주목하는 영화시장으로 떠오르게 했다. 베니스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은 김기덕감독의 <피에타(2012년)>는 한국영화의 작품성을 해외에서 인정받게 했고 총 7편이 1천만 관객 클럽에 가입했다.

한국인에게 영화는 일상생활처럼 삶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한국영화는 해방과 전쟁, 그리고 격동의 역사에 흔들리면서도 문화적 전통과 긍지를 잃지 않고 한국인의 어제와 오늘을 감동적으로 표현해 왔고 미래를 향한 좌표를 제시하고 있다. 시작은 미미했지만 한국영화는 할리우드 영화에 점령되지 않은 극소수의 나라로 성장과 발전을 계속하고 있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