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에는 음악 팬 100명의 설문조사로 작성한 댄스 곡 14곡에 대사를 넣어 마치 방송을 듣는 것 같은 <김광한의 디스코파티>앨범도 발표했다. 1990년에는 그가 진행했던 라디오 방송 '팝스 다이얼'이 3천회를 돌파해 대형공연을 여는 등 DJ 인생의 정점을 찍는 왕성하고도 의미 있는 활동을 벌였다. 고 김광한은 생전에 후배들로부터 '선생님'이라는 호칭보다 '형'으로 불리길 원했다. 그 모습에서 나이든 사람의 권위의식과 대접받기보다 어린 후배들과 격의 없는 소통을 원하는 소탈한 인품이 읽혀졌다.
직접 록밴드를 만드는 꿈을 품었던 그는 드럼을 배우기도 했다. 밴드공연에 애정을 가지고 살뜰하게 찾았던 이유다. 2014년 5월까지 CBS 표준FM에서 '김광한의 라디오스타'를 마지막으로 진행했던 그는 마지막 방송 날 아쉬움을 숨기질 못했다. "작년 봄까지 CBS에서 매달 한 번씩 함께 방송했는데 그때 잘해줄 걸 하는 후회가 됩니다. 가끔 견해차로 방송에서 다투었거든요.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DJ 김기덕)
지상파 방송을 그만 둔 뒤에도 인터넷 방송에서 팝 음악을 들려주는 DJ생활을 계속 했던 그는 록페스티벌은 물론 홍대 앞 작은 공연까지 챙기며 최근 음악흐름에도 민감하게 반응했었다. 올해로 데뷔 50주년을 맞은 그는 한국대중음악평론가협회 부회장을 맡았다. 지난 5월에는 KBS2 '불후의 명곡-한국인이 사랑하는 팝송 특집'에 전설로 출연해 녹슬지 않은 입담과 즉석 LP플레이까지 선보였지만 황망하게 세상을 떠났다. 고 김광한의 부고 소식에 SNS에는 그를 기억하는 지인들의 글이 릴레이를 이뤄 안타까움을 더했다.
"그분은 한마디로 팝송 바보였다."(박현준 경인방송 PD) "형님은 제 맘속에 영원한 DJ이셔요.(김철희 CJ아지트 대표) "뮤직비즈니스계에 들어오면서 방송으로 존경하던 분들의 실망스러운 모습을 너무 많이 봤지만, 선배님은 그대로 이셨습니다."(김영중 도프레코드 대표) "김광한 선생님은 제가 팝 음악에 빠지게 하는데 가장 많은 영향을 주신 분이자, 제 어린 시절의 히어로이셨죠."(김성한 대중음악평론가) "TV 지구촌영상음악에서 팝음악을 소개해주시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음악 소개하는 공간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늘 아쉬워하셨고, 음악 글 쓰는 후배들을 항상 격려해주셨습니다."(권석정 피키케스트 기자)
고인이 남긴 메시지 하나를 소개한다. "허니허니, 여러분의 허니에요. 좋은 음악이 많이 나오는 라디오를 많이 들어주세요. 클래식이든 팝이든 가요든 다 좋아요."(고 김광한) "병상의 남편에게 '당신의 인생은 성공했어요.'라는 말을 하자 알아듣던지 눈물을 한 방울 흘렀습니다. 여보! 진심으로 사랑해요"(미망인 최경순) 최근 경주 한국대중음악박물관은 고 김광한 DJ의 유품으로 전시관을 꾸밀 계획이라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글ㆍ사진=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