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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칼럼] 유성식 "박근혜 대통령·김무성 대표는 동반자 관계? 적대적 관계?"

김무성 대표의 대권 가도에서 박 대통령은 후원자인가? 방해자인가?
김 대표의 대권 도전 모델은 김영삼·이회창·노무현 중 누구와 유사할까
'시간' 변수 대입해야… 내년 총선 결과·박근혜정권 지지율 변화가 변수
  • 유성식 시대정신 이사
[데일리한국= 유성식 시대정신 이사 칼럼]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관계를 두고 말들이 많다. 두 사람은 동반자 관계인가, 적대적 관계인가? 김 대표의 대권 가도에서 박 대통령은 후원자인가, 방해자인가? 여의도 정가에는 아무래도 후자가 다수설이다. 벌어지는 현상에는 두 가지 측면이 섞여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그럴 것이라는 분석이 더 많다. 이유는 주로 김 대표에 대한 박 대통령의 태도 때문이다. 김 대표로서야 어떻게든 박 대통령과 당내 친박의 지지를 얻어 대권 순풍을 타고자 하나 사정은 여의치 않다.

박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는 동반자 관계? 적대적 관계?

지난해 친박이 서청원 최고위원을 당 대표 후보로 옹립해 김 대표를 넘어뜨리려 한 것부터, 최근 청와대가 김 대표의 오픈 프라이머리 공천 방식에 공개적으로 반대한 것까지 박 대통령은 중요한 순간마다 반대 쪽에 있었다. 개헌 논란이 불거졌을 때, 유승민 전 원내대표 거취 파동 때도 청와대는 김 대표의 입장을 묵살했다.

지난주 박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의 5자 회동이 끝난 뒤 박 대통령이 “김 대표가 수고를 많이 했다”고 칭찬한 것을 두고 둘의 관계가 달라지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있었다. 하지만 그간의 경과에 비추어 이 정도의 일로 박 대통령 마음이 움직였을 것으로 보는 건 무리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라는 정책적 의견 일치 이상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과 김 대표 사이가 틀어진 것을 두고 많은 이들이 박 대통령 특유의 성정(性情)과 공적·사적 영역에서의 김 대표 언행에서 원인을 찾고 있으나 확인할 수 없는 내용이 대부분이어서 일일이 거론하기는 어렵다. 다만, 2009년 정부청사 세종시 이전 백지화를 둘러싸고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청와대와 박근혜 의원이 충돌했을 때 친박이었던 김 대표가 이 대통령 입장을 두둔했던 사실이 결정적 계기의 하나였음은 분명하다. 세종시 이전은 당시 박 의원에게 정치적 사활이 걸린 문제였다. 같은 해 박 의원은 당내에서 일고 있던 ‘김무성 원내대표 추대론’에 대해 “원칙에 어긋난다”며 제동을 걸었다.

물론 박 대통령과 김 대표 관계의 변화 가능성은 있다. 앞으로 당 안팎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고, 이 와중에 두 사람이 불가피하게 손을 잡게 되는 경우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흐름은 박 대통령이 김 대표를 기피 또는 견제하는 쪽이라고 할 때 관심은 김 대표가 이 장벽을 여하히 돌파할 있을까 하는 데 쏠릴 수밖에 없다.

대통령 5년 단임제가 도입된 1987년 체제에서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 즉 대통령과 여당의 차기 유력 대선후보는 늘 긴장 관계에 있었다. 권력 속성 상 필연적 현상이기도 했다. 전두환-노태우, 노태우-김영삼, 김영삼-이회창, 노무현-정동영이 모두 그랬다. 이 가운데 노태우-김영삼과 김영삼-이회창은 정도가 심했다. 대통령은 2인자를 끌어내리려 했고, 2인자는 대통령을 극복과 차별화 대상으로 삼았다. 사실상 대결 모드였다. 김영삼은 대선후보 경선과 본선을 통과해 노태우에 완승했고, 이회창은 경선은 통과했으나 본선에선 실패했다.

김 대표의 대권 모델은?… 김영삼·이회창·노무현 모델

김 대표는 어떤 모델을 만들어낼까. 김영삼일까, 이회창일까. 아니면 드라마틱한 반전을 통한 ‘김대중-노무현’ 같은 협력모델일까. 세 번째 가능성은 일단 제쳐두고, 김영삼과 이회창의 케이스를 되짚으면서 김 대표의 상황과 비교해보는 것도 나름 시사점이 있을 것이다.

노태우와 김영삼은 각각 김영삼과 이회창이 여당의 대선후보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노태우는 ‘6공 황태자’ 로 불리는 박철언을 통해 막전막후에서 김영삼을 괴롭혔고, 민정계 수장인 박태준을 대안으로 띄우려고도 했다. 대통령이 된 김영삼은 이홍구→이수성→이인제로 지지 인물을 바꿔가며 이회창이 후보가 되는 것을 어떻게든 막아보려 했다.

김영삼과 이회창이 살아있는 권력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대안부재론’ 또는 ‘대세론’을 업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영삼에 대해서는 '부동의 야권 후보인 김대중을 꺾을 수 있는 사람은 민주화 운동의 상징성을 공유하면서도, 경상도(부산·경남) 출신인 김영삼밖에 없다'는 인식이 여당 지지자들 사이에 많았다. 이회창도 1996년 정계 입문 후 줄곧 여권 차기 후보 지지율 1위를 고수하면서 대세를 굳혀갔다. 결국 일반 국민의 지지가 힘이었다. 만약 이들이 다른 마음을 먹고 탈당이라도 하면 정권을 빼앗기는 것은 물론이고 대통령의 ‘퇴임 이후’도 보장받기 어려운 게 현실이었기에 권력의 견제도 한계가 있었던 셈이다.

김영삼과 이회창은 기질적으로 둘 다 ‘강성’이었다. 부러질지언정 물러서지 않고, 사생결단의 권력투쟁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김영삼이 청와대 주례회동에서 마주한 노태우를 면전에서 윽박질렀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회창이 1997년 탈당 가능성을 흘리며 김영삼을 압박해 당 대표를 쟁취했다는 것도 정설이다. 둘의 차이는 상대가 한 사람은 연성(노태우), 한 사람은 강성(김영삼)이었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노태우는 후보가 된 김영삼을 지원했으나, 김영삼은 끝까지 이회창의 걸림돌로 작용했다.

김무성 대표는 어떤가. 우선 김영삼, 이회창만큼 확고부동한 여당 유력 후보의 입지를 굳히고 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지난해 7월 대표 취임 이래 여권 차기 주자 1위 또는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지만, 아주 단단해 보이지는 않는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조사 대상에 포함시키면 순위가 출렁이고, 대통령과의 대립으로 지지율이 급상승한 유승민 전 원내대표에게 잠시나마 1위를 빼앗기기도 했다. 청와대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대세’의 수준은 아직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또 김 대표는 싸움닭 스타일이 아니다. 김영삼에게 정치를 배웠지만, 들판형 정치인과는 거리가 있다. 외모에서 풍기는 첫 인상과는 달리 대결보다는 조정과 타협을 중시하는 쪽이다. 전술적 고려가 있었겠지만, 김 대표가 그동안 청와대와의 갈등 국면에서 번번이 먼저 발을 뺀 것도 이런 기질과 전혀 무관하다고는 볼 수 없다. 상대인 박 대통령은 강한 리더십이라는 면에서 둘째라면 서러운 지도자다. 한번 정한 자신의 관점을 여간해서는 바꾸지 않으며, 목표에 대한 집착과 성취욕이 강하다. 이렇게 보면 김 대표가 처한 주·객관적 상황이 김영삼·이회창에 비해 좋은 구석이 없는 것 같다. 그의 장래에 대한 비관적 전망이 나올 수도 있겠다.

시간 변수 적용해야… 김 대표에게는 내년 총선 이후가 중요

그러나 이것은 앞선 두 2인자와의 평면 비교일 뿐이다. ‘시간’이라는 변수를 대입하면 사정이 달라질 수 있다. 김영삼·이회창이 승기를 잡은 것은 대통령 집권 4년차 이후였다. 정권의 레임덕이 심해지고, 대통령 지지도가 급전직하한 상황이었다. 대통령으로서도 2인자의 도전을 물리치고 버틸 힘이 부족했다. 박근혜정부는 내년 3월부터 4년차에 돌입한다. 4월에는 20대 총선이 있다. 4년차에 반드시 레임덕이 생긴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노태우정부 이래 말기에 접어든 정권에 대한 민심의 피로와 이탈 현상은 예외 없이 나타났다.

대통령 지지도 하락은 김 대표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 역사 교과서 문제는 정권 지지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당면 변수다. 사실 박 대통령 지지도가 50%를 넘나드는 현 상황에서 김 대표가 정면 대결을 불사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총선 결과도 매우 중요하다. 새누리당이 공천 룰 논란을 잘 수습하고 총선에서 승리할 경우 선거를 지휘한 김 대표의 당내·외 입지는 강화될 것이다. 이것이 ‘김무성 대세론’으로 확대돼 청와대가 손을 댈 여지가 사라질 개연성도 있다.

정권 지지율 변화와 총선 승리라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김 대표는 정국 주도권을 잡고 대선후보의 위상을 굳힐 수 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박 대통령은 이명박정부 지지율 하락이라는 악조건 속에서 과반 의석 획득이라는 대승을 이끌어냄으로써 여권을 완벽하게 평정했다.

김 대표에게는 앞으로가 중요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지금은 약간 비세(非勢·형세가 좋지 못함)인 듯하지만, 향후 정국 전개와 본인 역량에 따라 판세를 뒤집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 때는 박 대통령이 김 대표 후원자로 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김 대표에게는 혹독한 과정이 될 것이다. 김영삼은 “40년 민주화 투쟁보다 3당 합당 후 후보가 되기까지 2년여 기간이 더 고통스러웠다”고 술회한 바 있다. 천하의 승부사도 권력과의 싸움은 힘에 겨웠다.

■유성식 시대정신 이사 프로필
서울대 동양사학과,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 한국일보 정치부장- 대통령실 시민사회비서관, 국무총리실 공보실장- 시대정신 이사(현),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객원교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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