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오래지 않은 경험이다.

두어 살 차이의 연배로 모두 구력이 20년이 넘는 베테랑들이었다. 그 중에 한분은 초면이었는데 실력자로 소문이 나있었다.

나는 첫 홀 드라이브샷은 무난하게 날렸으나 두 번째 샷을 실수해 그린과 40여m 떨어진 언덕으로 볼을 보내고 말았다.

모두들 무난히 파온에 성공한 세 사람은 가파른 언덕에서 어떻게 탈출할까 나를 주시했다. 보기나 더블보기를 각오한 터라 별로 긴장하지 않고 웨지 샷을 날렸는데 용케도 그린에 떨어져 핀 가까이에 멈췄다. ‘나이스 어프로치’와 ‘오케이’라는 말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그런데 딱 한 분, 실력자로 소문난 문은 순간 얼굴이 굳어졌다. 그전까지 그는 파온에 성공해 운이 좋으면 버디도 챙길 수 있는 기회라 느긋한 자세로 미소를 머금고 남의 플레이를 구경하고 있었다. 내가 언덕에서 세 번째 샷을 고민하는 것을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그는 내 볼이 깃대에 붙는 순간 미소가 사라지고 낯빛이 하얘지는 듯했다.

나머지 두 사람은 내게 다가와 하이파이브로 멋진 어프로치샷을 축하해주었으나 그는 입을 닫았다. 그의 버디 퍼팅마저 너무 홀을 지나쳐 보기를 범한 뒤 그의 낯빛은 잿빛으로 일그러졌다. 핸디캡을 5라고 자랑하던 그의 그날 라운드는 그의 어법에 따르면 ‘최악의 라운드’였다.

사실 나는 그날 첫 홀에서 보인 그의 낯빛에서 그의 라운드가 어떨 것이란 걸 짐작하고 있었다. 많은 라운드 경험을 통해 동반자들의 골프습관과 일거수일투족이 어떻게 라운드에 영향을 미치는가를 지켜보며 나름대로 터득한 감별안 덕분이다.

내가 얻은 교훈은 ‘낯빛이 골프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 감별법에 따르면 진짜 실력자는 낯빛이 한결 같았다. 물론 한결같이 시무룩하거나 불만에 찬 낯빛이 아닌 주변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동반자들에 대해 긍정과 칭찬과 격려의 말을 건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낯빛이 한결 같은 사람은 동반자들의 플레이에 적절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플레이를 펼칠 줄 알았다. 물론 무너질 때도 없지 않지만 그럴 때도 한결 같은 낯빛만은 잃지 않았다.

카멜로온처럼 상황에 따라 낯빛이 변하는 사람은 어느 한 순간 리듬이 무너져 플레이의 기복이 심한 경향이 있다. 자신이 잘 나가고 남이 무너질 때 기쁨과 흥분을 주체 못해 파안대소하다가도 남이 잘 나가고 자신이 추락하면 성난 멧돼지처럼 식식거리며 전체 라운드 분위기를 망치곤 한다.

남의 플레이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과묵하게 자기 플레이만 하는 사람은 실력은 평균 이상이지만 골프 메이트 순위에서 한참 뒤로 밀리는 편이었다.

긍정과 배려의 감정을 느끼게 하는 한결같은 낯빛은 부단한 연습만큼 골퍼로서 갖춰야 할 필수덕목이 아닐까.

방민준(골프한국 칼럼니스트)

(골프한국 프로골프단 소속 칼럼니스트에게는 주간한국 지면과 골프한국, 한국아이닷컴, 데일리한국, 스포츠한국 등의 매체를 통해 자신의 글을 연재하고 알릴 기회를 제공합니다. 레슨프로, 골프업계 종사자 등 골프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싶으신 분은 이메일()을 통해 신청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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