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의 바비 로크(Bobby Lock)는 평생을 단 한 개의 퍼터로 플레이했다. 방울뱀이라는 별명이 붙은 요술방망이 퍼터 하나로 브리티시 오픈 우승 4회를 포함해 PGA투어 통산 15승, 각종 프로대회 우승 74회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남겼다.

이를 두고 뉴질랜드 출신 프로골퍼 토마스 헨리 코튼(T. Henry Cotton)은 이렇게 말했다.

“평생 단 한 개의 퍼터만 계속 사용한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아내에게 쏟는 애정과 신뢰 이상으로 그 퍼터를 사랑하지 않고선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근대 최고의 퍼팅 달인으로 불리는 바비 로크가 일생 단 하나뿐인 퍼터와 인연을 맺은 것은 9세 때. 어느 날 소년 로크는 아버지가 회원으로 있던 골프클럽 연습그린에서 퍼팅연습을 하고 있었다. 소년이 쓰고 있던 퍼터는 아버지가 쓰던 아주 낡은 2번 아이언을 톱으로 잘라 만든 것으로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다. 이 모습을 아버지의 친구인 한 회원이 클럽하우스 베란다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자기가 쓰던 헌 퍼터를 들고 로크에게 다가가 “아주 열심히 연습하는구나. 진짜 퍼터로 연습해보지 않겠니?” 하고 말했다.

소년 바비 로크는 이렇게 해서 처음 제대로 된 퍼터를 손에 쥘 수 있었다. 그가 평생 반려로 삼은 이 퍼터는 지금 기준으로 보면 가관이었다. 검붉게 찌든 호두나무로 만든 샤프트에 일자형 퍼트헤드가 달려 있었다. 아버지 친구는 전날 새 퍼터를 사서 헌 퍼터를 버릴까 고민하던 차에 로크를 만나 그에게 주었던 것이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로부터 골프를 배운 로크소년은 어느 날 짧은 퍼팅을 실패한 후 투덜거리며 퍼터를 그린 위로 내동댕이쳤다.

이를 아버지가 보았다.

“그 따위로 골프를 하다니 너는 골프 할 자격조차 없는 녀석이다.”

아버지는 로크가 갖고 있던 골프클럽을 몽땅 빼앗았다. 로크는 손발이 닳도록 빌며 두 번 다시 그런 일은 하지 않겠다고 서약하고 나서야 골프클럽을 되돌려 받을 수 있었다.

후에 바비 로크는 1931년 14세의 나이로 남아공 소년선수권대회에서 우승, 일약 골프스타로 부상했다. 다음해인 1932년 브리티시 오픈에 첫 출전해 베스트 아마추어 타이틀을 쟁취했고 1938년 프로로 전향했다.

그의 퍼팅 솜씨는 가히 천재적이어서 골프의 달인 샘 스니드(Sam Snead)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1946년 브리티시 오픈에서 우승한 뒤 남아공에서 바비 로크와 16회에 걸친 시범경기를 가졌는데 12회는 로크가 이기고 나는 두 번밖에 이기지 못했다. 나머지는 무승부였다. 나를 이처럼 형편없는 스코어로 몰아붙인 것은 다름 아닌 로크의 그 낡고 방울뱀처럼 생긴 호두나무 퍼터였다. 나는 그의 퍼터에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었다.”

어느 날 친구가 로크에게 하나의 퍼터만 사용하는 고집스러움을 물었다.

“나는 이 낡은 퍼터만으로 충분하다. 이 퍼터는 나에게 지극히 충실하기 때문이다. 나도 물론 중요한 경기에서 퍼팅을 많이 미스 했다. 그때마다 나는 퍼터가 나쁜 것이 아니라 내 퍼트 솜씨가 서툴렀다고 생각했다.”

로크의 대답은 그의 탁월한 퍼팅 실력이 퍼트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실수를 최소화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 덕분임을 깨닫게 해준다.

1930~1950년대 최고의 골퍼로 명성을 날리며 ‘모던 골프(Modern golf)’라는 명 교습서를 쓴 벤 호건은 “드라이버는 쇼, 퍼팅은 돈.(Drive for show, putt for dough)”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호건의 이 말은 아무리 화려한 골프를 해도 퍼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결코 이기는 골퍼가 될 수 없음을 체득한 데서 우러난 고백이다.

골프에서 퍼팅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 압도적이다. 주말골퍼라면 전체 타수의 50%, 프로선수라면 40% 내외를 퍼팅이 차지한다고 보면 틀림없다. 이븐 플레이를 한다면 72타 중 절반인 36타가 퍼팅이란 얘기다.

이처럼 퍼팅의 비중이 막대한 데도 정작 주말골퍼들은 퍼팅 연습에 인색하다. 주변에 퍼팅 연습장이 없기도 하지만 좁은 공간에서라도 퍼팅연습에 거의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라운드 약속이 잡히면 형식적으로 연습장 구석에서 몇 번 볼을 쳐보거나 라운드 당일 골프장에 도착해 연습그린에서 허겁지겁 연습해보는 것이 고작이다.

이래서는 퍼팅 타수를 줄일 수 없고 스코어도 개선시킬 수 없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1~2시간씩 퍼팅 연습을 하는 프로선수들도 자주 짧은 퍼팅을 놓치는데 거의 퍼팅 연습을 하지 않는 주말골퍼가 그린에서 혹독한 시련을 겪는 것은 당연하다.

퍼팅을 잘 하려면 자신의 생체리듬에 맞는 안정된 퍼팅 스트로크를 익히고 계절과 시간 등 상황에 따라 변화무쌍한 그린을 읽어낼 줄 알아야 한다. 이러고도 주변 상황에 흔들리지 않은 고도의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불행히도 퍼팅 연습을 소홀히 하는 주말골퍼들은 이런 조건을 충족시키기가 불가능하다. 특히 라운드 기회가 적고 여러 골프코스를 경험해야 하는 주말골퍼를 괴롭히는 것은 그린 읽기다. 캐디로부터 도움을 얻지만 한계가 있다.

그러나 조금 부지런하고 습관을 바꾸면 퍼팅연습이 부족해도 그린의 라인을 훌륭하게 읽어낼 수 있다. 경험으로 터득한 나만의 비법을 공개하고자 한다.

그린 읽기는 파온을 노리는 샷을 날리는 순간부터 시작된다고 보면 틀림없다. 멀리서 그린의 기울기가 어떤 모양인지 살펴 까다로운 라이에 볼이 놓이지 않도록 에이밍을 한다. 샷을 한 뒤 그린에 다가가면서 그린의 둔덕과 계곡, 경사 등을 유심히 살핀다. 볼 마크를 한 뒤 재빨리 볼 위치와 홀 사이를 오가며 미세한 지형을 읽는다. 필요하다면 360도 회전하며 살피는 것도 필수다. 그리고 스트로크의 강도나 좌우 기울기 등을 마음속으로 정한다.

여기까지는 보통 주말골퍼들이 하는 루틴과 대동소이하다. 문제는 다음이다.

동반자 3명의 라인을 내 입장에서 읽어보는 것이다. 동반자가 퍼팅 스트로크를 준비하고 있을 때 나라면 어떻게 치겠다는 생각을 갖고 동반자의 스트로크와 볼이 굴러가는 모양을 관찰하면 내 판단이 맞는지 틀린지 알 수 있다. 자신의 퍼팅 차례가 끝났어도 그린에 남아 다른 동반자의 라인과 실제 볼이 굴러가는 모양을 끝까지 지켜본다.

자신의 라인만 살펴보고 퍼팅을 하는 사람과, 동반자의 라인과 퍼팅을 모두 살핀 사람의 정보력 차이는 물으나 마나다. 자신의 퍼팅 준비하기도 바쁜데 나머지 동반자의 라인까지 살피려면 엄청 부지런해야 함은 물론이다. 당연히 동반자들에게 방해를 주지 않고 소문 없이 임무를 수행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홀마다 이런 식으로 동반자의 라인을 읽어버릇 하면 몇 홀 지나지 않아 그린을 수월하게 읽어내는 눈이 열린다. 남들은 자신의 라인만 보고 한정된 정보에 갇혀 있는데 나는 세 사람의 라인을 읽어내고 퍼팅 결과를 수렴까지 할 수 있으니 얼마나 풍부하고 가치 있는 정보가 축적되겠는가.

방민준(골프한국 칼럼니스트) )

(골프한국 프로골프단 소속 칼럼니스트에게는 주간한국 지면과 골프한국, 한국아이닷컴, 데일리한국, 스포츠한국 등의 매체를 통해 자신의 글을 연재하고 알릴 기회를 제공합니다. 레슨프로, 골프업계 종사자 등 골프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싶으신 분은 이메일()을 통해 신청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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