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결혼식장에서 갑자기 신랑이 털썩 주저 앉았는데 알고 보니 잠을 자고 있었다면 혼주들은 고사하고 하객들은 어떤 생각이 들었겠는가? 실재로 있었던 일이다. 수면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이 환자의 뇌를 조사해보니 뇌의 시상하부(Hypothalamus)의 측핵(Lateral)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부분에서 나오는 모종의 물질이 결핍된 것으로 보아 그 물질의 이름을 하이포크레틴(Hypocretin)이라고 명명한다. 비만을 연구하는 학자들도 뇌의 똑같은 부분에서 분비되어 식욕을 촉진시키는 이 물질을 오렉신(Orexins)이라 명명하고 장기간 연구해왔다. 실은 이 두 물질은 같은 물질이다. 여기서는 오렉신으로 총합해 부르겠다.

오렉신이 신체를 잠들지 않고 깨어 있도록 하는 각성작용이 있는 것 외에 식욕을 촉진한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비만은 현생인류의 최대 화두다. 인류가 지금처럼 음식에 관한한 풍요로운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춘추전국시대에 잦은 전쟁으로 추수철을 놓치거나, 논밭이 병장기로 뒤덮이면 백성들은 먹을 것이 없어 서로의 자식을 바꿔서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1년을 기다려야 수확하는 곡식에 비해 전쟁으로 들판에 지천으로 널 부러져 있는 시신은 독수리나 까마귀의 먹이도 되었지만 같은 동족인 사람의 먹거리도 되었다. 이렇게 탄생한 음식이 ‘해(?)’다. 사람의 허벅지 근육을 소금에 절여서 젓갈로 만들어서 먹은 식인의 풍습이다. 항상 굶주림에 익숙했던 인류의 유전자 속에는 어쩌면 ‘보이는 족족 먹어라, 쉼 없이 먹어라, 내일은 그 음식이 없어질 수 있다. 있을 때 많이 먹어두어라’같은 ‘배고픈 유전자’가 각인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흔히 본능 중에 가장 강력하다고 알려진 성욕도 나이가 들어서 노쇠해지면 생각이 없어진다. 하지만 음식은 하루라도 먹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감정을 느낀다. 우리가 먹는 음식물에서 만들어진 대부분의 포도당은 ‘뇌’로 공급된다. 지방이 분해되면서 만들어진 지방산이나 단백질이 분해되어서 만들어진 아미노산은 뇌가 사용하지 않고 유일하게 포도당만 사용한다. 하루에 뇌가 사용하는 포도당의 양은 150g 정도이며 이는 생존을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꼭 필요한 양이다. 어떤 문제로 인해 음식섭취를 못할 때를 대비해서 음식 섭취 시 잉여의 포도당을 글리코겐의 형태로 간에 최대 100g, 근육에 최대 200g 까지 저장한다. 간에 저장된 글리코겐은 온전히 뇌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근육에 저장된 글리코겐은 운동하는 데 사용할 뿐 아니라 뇌에도 공급하기도 한다.

밥을 안 먹으면 기운이 빠져서 움직임이 둔한 이유도 활동을 줄여 근육에 있는 글리코겐을 최대한 아껴서 뇌로 보내기 위한 작전인 것이다. 간과 근육에 저장된 글리코겐은 금방 쓸 수 있는 단기저장 형태다. 하루 정도가 지나서 이들을 다 쓰고 난 다음에는 비로소 장기저장형태인 지방을 분해해서 쓰게 된다. 이쯤에서야 몸의 지방이 빠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피하지방이나 복부지방에 있는 비만세포들이 지방으로 가득 차게 되면 세포 밖으로 랩틴(Leptin)이라는 효소를 분비한다. 비만세포에서 시도 때도 없이 분비하는 것은 아니고 비만세포가 지방을 가득 머금고 빵빵해질 때만 분비된다. 식욕억제 호르몬이라 입맛을 떨어뜨린다. 어린이의 비만은 특히 중요하다. 어릴 때 살찌면 비만세포 숫자가 많아지므로 살찌면 안 된다. 나이 들어 배가 나오는 것은 비만세포 숫자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비만세포가 가득 채워져서 팽팽해지는 것이다. 인슐린과 랩틴의 조절은 시상하부의 여러 핵에서 이루어진다.

시상하부는 온갖 욕망이 들끓는 곳이다. 우리의 욕망이 성취되어 행복하고 즐거우면 며칠 동안 밥을 안 먹어도 배가 고프지 않게 된다. 선사들이 느끼는 법열(法悅)같은 것이다. 법열을 느끼면 일주일을 굶어도 배고프지 않다. 비만치료의 가장 중요한 치료법은 즐거움, 행복함이다. 즐거우면 식욕이 안 당긴다.

지난번 혈(血)-적혈구(赤血球)의 칼럼은 순전히 윤승일 한의사가 한의사 보수교육에서 강의한 것을 소개한 것이다. 이번 칼럼은 ‘박문호의 자연과학세상’에서 말한 비만에 대한 핵심만 얘기한 것이다. 두 분께 감사드린다.

하늘꽃한의원 원장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