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129년 탄생한 갈레노스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비롯한 4명의 황제 주치의였으며 그 당시는 인체를 해부할 수 없었던 관계로 사람과 가장 닮은 영장류 ‘바바리마카크’를 해부해서 해부학, 생리학, 병리학에 걸쳐 방대한 그리스 의학체계를 집대성하였다. 이후 베살리우스가 현대해부학을, 윌리엄 하비가 현대생리학을 확립하기 전까지 약 1500년 동안 유럽 의학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갈레노스는 “우리가 섭취한 음식은 간에서 혈액으로 바뀌어 정맥을 타고 돌면서 전신에 영양분을 공급하면서 점점 소멸된다.”고 했다. 윌리엄 하비는 1628년 ‘심장과 혈액의 운동에 관해서’란 책을 발표하면서 기존의 갈레노스의 이론에 대해 “간에서 혈액이 만들어져서 인체를 순환하면 정맥에 있는 깔대기 같은 판막이 반대방향으로 되어 있어야 하고, 혈액이 영양분을 공급하면서 소멸된다면 실험상 1시간동안 245Kg이란 엄청난 양의 혈액을 매일 간이 만들어야 하는 데 이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서 심장이 혈액 순환계의 중심이 되어 동맥에서 정맥으로 흐르며 소모되지 않고 순환한다고 주장했다.

1661년 ‘말피기’가 동맥과 정맥 사이에 존재하는 모세혈관을 발견하면서 심장이 중심이 되어 혈액이 소멸됨이 없이 순환한다는 그의 주장에 힘을 보태고 현대 생리학이 시작된다. 지금 어느 누구도 알고 있는 이런 내용이 그 당시만 해도 아무도 몰랐던 사실이었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혈액은 중요한 것으로 인식된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혈(血)의 생성과정과 순환체계, 혈(血)과 기(氣)의 관계, 혈(血)과 진액(津液)의 관계 같은 한방 생리학적인 혈(血)에 대해서는 이미 앞선 칼럼에서 많은 부분 소개되었다. 혈(血)에 문제가 발생하면 먼저 혈허(血虛) 상태가 올 수 있다. 혈허(血虛)증상은 한 마디로 혈(血)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혈이 부족하면 당연히 세포들은 아우성일테다. 혈(血)은 크게 3군데 장부(臟腑)에서 관장하는데 이들이 원활하게 기능하지 못하면 혈허가 된다.

먼저 비위(脾胃)는 음식물을 소화하고 흡수해서 전신에 영양을 공급하는 일을 하므로 비통혈(脾統血)이라고 한다. 비장(脾臟)은 입맛을, 위장(胃臟)은 소화를 담당하는데 입맛이 없거나 소화가 안 되거나 음식섭취는 많이 하는데 영양분의 흡수가 안 될 때는 비부통혈(脾不統血)의 상태가 되어서 혈(血)을 원활하게 공급할 수 없다. 두 번째는 간장혈(肝藏血)이다. 간은 비위 및 소장에서 흡수된 정미로운 물질 중에 해로운 물질이 없는지 해독하고 전신이 혈(血)을 필요로 할 때 곧 바로 쓸 수 있도록 잘 갈무리하는데 이를 간장혈(肝藏血)이라고 한다. 심장의 기능이 약해지면 전신으로 혈을 보낼 수가 없다. 이를 심주혈(心主血)이라고 한다.

이 외에 각종 사고나 도상(刀傷)으로 실혈(失血)이 많이 되거나, 과로하거나 연로하여 신장의 정기(精氣)가 약해지면 역시 인체가 혈을 잘 생산해 내지 못해 피가 부족한 혈허증상이 올 수 있다. 혈액검사를 하지 않아도 혈허증상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먼저 얼굴이 백지장같이 핏기가 없이 하얗거나(面色蒼白) 누렇게 떠 있다(萎黃). 사흘 동안 피죽도 한 그릇 못 먹은 사람같이 얼굴이 초췌하고 눈이 퀭하다. 입술도 핏기가 없이 창백하고, 어지럽고(眩暈), 눈이 침침해지며(眼昏), 귀에서 매미소리나 파도소리 혹은 쇳소리가 들리고(耳鳴) 조그마한 일에도 덜컹 가슴이 내려앉고 쿵쾅거리며 요동치면서 두근거리고(心悸), 잠이 잘 안 오거나 자주 깨고(失眠), 물건을 어디다 둔 건지 깜박깜박 잘 잊어먹는다(健忘).

피부가 영양을 못 받아 메마르고 거칠고, 머리카락도 가늘게 쇠고 잘 빠져서 듬성듬성하다. 여성의 경우 생리로 나올 피가 잘 안돌아서 생리가 주기에 맞게 터져야 할 때에 안 터지고 늦어지는 경지(經遲)증이 있거나 재 때 나오더라도 양이 적고(量少), 생리 혈 색깔이 묽고(色淡) 심하면 월경이 없어지는 경폐(經閉)증에 이르게 된다. 혈허(血虛)와 음허(陰虛)는 동시에 오는 경우가 많고 이 둘의 증상이 확연히 잘 구분되지 않기 때문에 혈허증이 나타나면 음허증에 쓰는 약을 같이 처방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기혈(氣血)의 관계도 고려하여 기운을 올리는 한약을 같이 쓰는 것이 좋다.

하늘꽃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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