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혈액 분석기’로 혈(血)의 상태를 그 자리에서 직접 검사하는 방법은 요즘도 쓰이지만 한동안 광풍이 분 적이 있었다. 누구나 현미경을 갖다놓고 “당신의 피 한방울로 당신의 건강에 대한 모든 정보를 진단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면서 말이다. 아마도 일본의 내과의사인 ‘다카하시 히로노리’가 2009년 펴낸 ‘나를 살리는 피, 늙게 하는 피, 위험한 피’란 책의 내용이 이 진단법을 뒷받침해준 논리적인 근거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는 병원의 혈액학 교실에서 한동안 근무한 적이 있어 신빙성을 더해 주는 것 같다. 검사방법은 간단하다. 손가락 끝에서 피 한 방울을 채취해서 현미경 슬라이드에 떨어뜨리고 커버 글라스를 덮은 다음에 그걸 현미경으로 보면 적혈구가 움직이는 모습이 보인다. 적혈구의 경계가 선명한지 희미한지, 요산 같은 결정들이 그 속에 있는지, 수생생물이나 공해물질이 있는지, 곰팡이나 구강세균이 있는지 등등을 보고 진액 같은 혈장 부위가 혼탁한지 아니면 깨끗한지를 주로 보게 된다.

특히 중요한 것은 적혈구가 낱개가 아닌 여러 개가 겹겹이 쌓여 사슬처럼, 때론 뭉텅이처럼 떡 지게 보이는 것이 있는 지 여부다. 그렇게 된 것이 있으면 적혈구가 연전(連錢)되었다고 한다. 동전을 이어서 쌓아놓은 모습이란 뜻이다. 연전은 과도한 스트레스, 불규칙한 생활 습관, 운동부족, 특정질환, 수면부족, 편식을 할 때 많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검사법이 정확한 진단을 보장하는 지는 알 수 없지만 어혈을 설명하기에 이만큼 좋은 시각적 자료는 없다.

혈(血)은 전신을 순환할 때 장애가 없이 시원시원하게 순환해야 한다. 하지만 매를 맞거나 부딪쳐서 출혈이 생겨서 멍이 들면 출혈부위를 막으려고 피떡이 생겨 순환을 방해하게 되고, 당연히 혈류속도는 정체되게 된다. 이 뿐 아니라 혈관을 통과하는 혈액의 량이 줄어들거나, 기운이 없어 혈을 잘 추동하지 못하면 어혈이 생길 수 있다. 특히 스트레스로 기(氣)가 막히거나 체(滯)하게 되면 역시 어혈이 올 수 있다. 어혈은 뇌경색, 심근경색 등을 일으키는 죽음의 전령으로 요즘은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며칠을 밤낮없이 쉬지 않고 일하는 젊은이에게 많이 발생한다. 젊다고 해서 안심할 수 없는 질환이 어혈이다.

지금부터 말하는 증상 중에 하나의 증상이 있다면 어혈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첫 번째는 동통(疼痛) 곧 통증(痛症)이다. 혈이 혈맥을 통해서 원활하게 순환하지 못하면 그 부분의 기운 또한 막히게 되어 불통즉통(不通則痛) 즉 “통하지 않아서 통증”이 생긴 것이다. 통증의 종류도 여러 가지이지만 어혈로 인한 통증은 여기저기 통증이 옮겨 다니지 않고 정해진 통처(痛處)에서만 칼로 찌르는 듯한 자통(刺痛) 중심의 양상을 띤다는 점이 다른 통증과 구별되는 점이다. 둘째는 종괴(腫塊)가 형성된다는 점이다. 모서리에 찍히거나 사고로 타박상을 입으면 그 부분이 부풀어 오르는데 이것이 종괴다. 이런 외상을 입지 않고도 내부에서 출혈로 인한 종괴가 생길 수 있다. 종괴의 색깔은 여축없이 피멍의 색깔이다. 셋째가 출혈이다. 코피나 객혈, 항문출혈같이 출혈이 계속되는 곳은 어혈이 있다고 보면 된다. 마지막으로 전신에 걸친 어혈 증상의 유무다. 혀가 새까맣거나 검은 보라색을 띠거나, 얼굴에 검푸른 빛이 돌고, 피부가 거북껍질같이 뻣뻣하고 윤기가 없고 보라색 반점이 여기저기서 보인다는 특징이 있다.

혈열(血熱)은 말 그대로 혈에 열이 많은 경우에 나타나는 병리적 현상이다. 혈열의 대표증상이 혈열망행(血熱妄行)이다. 혈이 열을 받으면 재 마음대로 망나니처럼 문제를 발생시킨다는 뜻이다. 혈(血)에는 수화(水火)가 함께 있는 데 수(水)에 해당되는 진액이 과로나 영양부족으로 부족하게 되면 상대적으로 수화(水火)의 균형이 일그러져서 수(水)없는 외로운 화(火)가 위로 치솟게 된다. 이를 상열(上熱)이라 한다. 상열이 되면 혈(血)이 맥관 밖으로 나와서 문제를 일으키는데 뇌에서 그렇게 되면 뇌출혈이요, 코에서 그러면 코피가 날 것이고, 폐에서 피가 나면 객혈(喀血)이 되고, 대변에서 출혈이 되면 변혈(便血), 소변에서 발생하면 뇨혈(尿血)이 된다. 여성에게는 월경이 과다하게 나오거나 붕루(崩漏)가 된다.

하늘꽃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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