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GA 투어 발런티어 오브 아메리카 텍사스 슛아웃

나중에 중국 선종(禪宗)의 제6조가 된 혜능(慧能)이 인종(仁宗)이라는 당대 대강사의 법회에 참석했다. 혜능은 마음을 활짝 열고 열반경 강론에 심취했다. 인종법사의 법문에 사방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했다.

그때 어디선가 한줄기 사나운 바람이 일었다. 깃대에 걸린 깃발을 찢어버릴 듯한 강한 바람이었다. 한동안 인종의 법문이 중단되고 있을 때 총명한 눈의 한 아이가 일어나 소리쳤다.

“바람이 움직이는 것입니까? 깃발이 움직이는 것입니까?”

이 질문에 청중은 어리둥절했으나 인종은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한 여인이 일어나 “바람이 움직이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한 젊은이가 일어나 “아닙니다, 깃발이 움직이는 것입니다.”라고 이의를 제기했다.

어린아이가 던진 질문은 두 사람의 대답으로도 끝을 보지 못하고 청중은 바람이 움직인다는 쪽과 깃발이 움직인다는 쪽으로 서로 나뉘어 논쟁을 벌였다.

그때 한 남자가 일어나 인종법사를 향해 말했다.

“법사께서 증명하소서. 우리는 법사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인종법사는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았는데도 한 남루한 차림의 중년 사내가 어른거렸다. 눈을 뜨자 마당 끝에 한 초라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이왕이면 이 일은 대중이 정할 일이니…. 어디 저쪽에 있는 분이 일어나 말해보구려.”

인종법사가 지목한 초라한 차림의 사내는 혜능이었다. 혜능은 얼떨결에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공중에서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이 그의 목덜미를 잡아드는 것 같았다. 그는 일어서자마자 큰 소리로 말했다.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닙니다.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닙니다.”

이 말이 떨어지자 마당을 가득 메운 청중들은 갑자기 시끌벅적해졌다. 조용한 바다에 폭풍이 몰아친 듯 했다.

그런 분위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인종법사가 나섰다.

“그럼 무엇이 움직이는 것인가?”

혜능이 큰 소리로 말했다.

“이곳에 모인 여러분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 말이 떨어지자 청중들은 모두 조용해졌다. 오직 바람소리만 윙윙 거렸다.

인종법사는 혜능을 불러 법단 위로 올라오도록 했다.

“오늘의 열반경 법회는 이것으로 마칩니다. 자, 이리 와 앉으시지요.”하고 인종은 혜능을 법좌에 앉히고 물러났다. 백발이 성성한 인종은 이제야 진정한 스승을 만난 즐거움에 굵은 눈물을 흘렸다.

며칠을 함께 지내며 혜능의 도 깊이를 엿본 인종법사는 “이제부터 저는 스승의 제자이옵니다. 이 나이든 기왓장 하나를 받아주소서.”라고 말하고 예를 갖춰 혜능에게 삼배를 올렸다.

1일(한국시간) 텍사스 강풍 속에 막을 내린 LPGA투어 발런티어 오브 아메리카 텍사스 슛아웃 대회의 최대 화두는 바람이었다. 시속 60km가 넘는 강풍에 대부분의 선수들이 속절없이 휩쓸렸다.

‘돌부처’ 박인비가 쿼드러플 보기를 포함해 하루에 9 오버파를 칠 정도였으니 다른 선수의 추락은 보나마나다. 공동 2위로 재일교포 노무라 하루(24)와 함께 챔피언조에 편성돼 기대를 모았던 아마추어 성은정(18)이 무려 15 오버파를 쳐 공동 40위로 밀려나는 등 대부분의 선수가 강풍에 맞서다 추락했다.

최종 4라운드에서 언더파를 기록한 선수는 양희영(2언더), 지은희(1언더) 두 명뿐이었고 최종 합계 언더파를 기록한 선수도 노무라 하루, 크리스터 커, 제시카 코다 등 단 3명이었다.

이날 대부분의 선수들이 강풍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바람을 이겨내려 덤벼들었지만 결국 바람에 휩쓸리고 말았다. 그나마 전날 벌어둔 점수가 있어 추락의 타격을 덜 받은 노무라 하루와 크리스티 커에게 기회가 주어졌다. 크리스티 커는 평소 성격대로 노련함을 겸비한 전투적 대응으로 강풍 속에서도 기회를 잡았으나 끝까지 이어가지 못했다.

노무라 하루는 여러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바람에 순응하면서 자신의 리듬을 잃지 않았다. 강풍 속에선 퍼팅이 난조에 빠지기 십상인데 노무라 하루는 꽤 까다로운 거리의 퍼팅을 성공시키는 저력을 보였다.

다른 선수들이 세차게 몰아치는 바람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가 하면 지나치게 바람의 세기와 방향에 신경을 쓰는 바람에 본래의 스윙 리듬을 잃는 경우가 많았는데 노무라 하루는 달랐다. 박인비 못지않게 담담한 표정에 미소까지 자주 보여 강풍 속의 플레이를 즐기는 듯 했다.

한마디로 이날의 승패는 바람에 대어든 자와 바람에 순응한 자의 몫으로 나뉘었다.

골프를 하다보면 다양한 자연환경과 만나게 된다. 자연조건이 좋을 때는 별 문제가 없는데 나쁠 때는 의외의 변수들이 속출한다. 물론 자연조건이 육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마음이 육체보다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육체가 받아들이는 정도만 의식하면 되는데 마음은 자연조건과 같은 외부상황을 과장해서 받아들인다.

괜히 지레 겁먹고 최악의 상태를 상상한다. 자연은 친화의 상대가 아니라 물리치거나 극복해야 할 적이 되어버린다. 자연히 근육은 경직되고 마음은 흔들리고 산란해진다. 강풍이 몰아치는 것은 피할 수 없지만 강풍에 순응하기보다는 강풍을 이겨내려 덤비는 바람에 마음의 태풍을 일으킨다. 정말 위험한 것은 실제 바람이 아니라 바람에 흔들리는 내 마음인 것이다.

방민준(골프한국 칼럼니스트)

(골프한국 프로골프단 소속 칼럼니스트에게는 주간한국 지면과 골프한국, 한국아이닷컴, 데일리한국, 스포츠한국 등의 매체를 통해 자신의 글을 연재하고 알릴 기회를 제공합니다. 레슨프로, 골프업계 종사자 등 골프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싶으신 분은 이메일()을 통해 신청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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