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열약(淸熱藥)에 생지황(生地黃)이 나온다. 생지황을 말린 것이 건지황(乾地黃)이고 생지황을 익혀서 찌는 것이 숙지황(熟地黃)이다. 이에 대한 명칭도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 데 중국의 경우에는 날 것 즉 신선한 것을 선지황(鮮地黃)이라 하고, 건조시킨 것을 생지황(生地黃)이라 하고, 생지황을 익혀서 찐 것을 숙지황(熟地黃)이라고 하고, 생지황을 까맣게 태워 쓰는 것을 생지탄(生地炭), 숙지황을 까맣게 태운 것을 숙지탄(熟地炭)이라고 한다. 중국에는 건지황(乾地黃)이란 한약재가 없고, 생지탄이나 숙지탄은 우리나라에는 없다.

숙지황(熟地黃)은 한의사들이 보음(補陰)이나 보혈(補血)할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염두에 두는 한약이다. 이렇게 숙지황을 많이 사용하다보니 숙지황의 효능을 높이려는 수치(修治) 방법도 많다. 우선 한의대 본초학 교재에 나오는 숙지황 제법을 보자. 지황즙(地黃汁)으로 제조하는 방법으로 먼저 지황(地黃)을 깨끗하게 세척한 다음 물을 푹 잠기게 넣으면 가라앉는 지황이 있을 것이고, 물 표면에 뜨는 지황인 천황(天黃)과 어중간하게 물 가운데 위치한 지황인 인황(人黃)이 생긴다. 천황과 인황을 찧어서 즙액을 만들어서 가라앉아 있던 지황을 건져서 함께 버무려서 찜통에 넣고 충분히 찐 다음 햇빛에 말린다. 이 한 과정을 일증(一蒸)이라 하고 이 것을 아홉 번 반복해서 찌고 말리는 것을 구증구폭(九蒸九曝)이라고 한다.

두 번째로 소개된 방법은 첫 번째의 방법에서 지황즙으로 지황을 버무릴 때 술과 사인(砂仁)과 진피(陳皮)를 넣어서 함께 버무리는 방법이다. 숙지황은 찐득하고 끈적거려서 복용할 때 간혹 더부룩하고 가스 차는 듯한 소화장애를 일으키는데 그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서 술과 사인과 진피를 넣고 버무리는 것이다. 세 번째는 생지황을 쓰지 않고 적당히 마른 건지황을 사용하는 방법으로 건지황을 씻은 다음 그 이후는 비슷한 공정을 거쳐서 구증구폭하는 방법이다. 숙지황의 수치는 원료 한약재를 생지황(生地黃)을 쓸 것인가 아니면 건지황(乾地黃)을 쓸 것인가 하는 점과 버무릴 때 막걸리를 쓸 것인가 아니면 청주를 쓸 것인가 하는 점의 조합으로 나누어진다. 숙지황은 현삼과의 지황(地黃)의 뿌리줄기(根莖)를 수치해서 쓴다. 이명(異名)으로는 숙지(熟地)나 숙하((熟?)가 있다. 숙지황은 우리나라 전역에서 재배된다. 성질은 약간 따뜻하고(微溫) 독(毒)은 없고 맛은 달다(甘). 단맛이 나고, 따뜻하며 약간 걸쭉해서 윤택하고 액이 많아 끈적이는 것이 많은 관계로 혈이 부족한 것을 보충하고, 뻑뻑하고 메마른 조직 사이로 들어가 촉촉하게 해줘서 자윤(滋潤)시키고, 카사노바같이 정력을 많이 낭비했거나 과로나 스트레스로 정(精)이 부족한 것을 보충하고 골수를 튼튼하게 채워준다. 하지만 두텁고 걸쭉한 맛은 위장장애를 가져와서 수치할 때 사인(砂仁)과 진피(陳皮)같은 것을 넣어서 함꼐 찌거나 아예 숙지황이 들어가면 의무적으로 사인과 진피를 넣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 방송에서 건강하기 위해서는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는 권고를 받아들여 물을 하루에 2-3리터를 마셔서 위장이 물로 가득차고 그 결과 소화가 재 때 안 되어 위장에 머무르는 바람에 더부룩하고 가스 차고 배가 남산만큼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 있는 사람 또한 숙지황(熟地黃)의 걸쭉한 성미를 이겨내지 못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인체의 음혈(陰血), 정(精)같은 물질적인 베이스는 모두 간장(肝臟)과 신장(腎臟)에서 공급이 된다. 그래서 보음(補陰)이나 보혈(補血)하는 한약의 귀경(歸經)은 간신(肝腎)인 경우가 많다. 숙지황(熟地黃) 또한 다른 경락으로 가지 않고 간경(肝經)과 신경(腎經)으로만 약효가 흘러들어간다. 효능은 자음보혈(滋陰補血)과 익정전수(益精塡髓)다. “음(陰)을 보해서 혈(血)을 보충하고 정(精)을 보하고 골수를 충전한다.”라는 뜻이다. 그래서 간신(肝腎)의 음(陰)이 허한 증상에 많이 사용된다.

요슬산연(腰膝酸軟)은 간신음허(肝腎陰虛)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이다. 허리와 무릎이 뻑뻑하고 소리가 나면서 시큰거리는 느낌이 든다. 움직일 때마다 허리가 아래로 내려앉는 것 같은 느낌이 있고 통증도 수반하지만 시큰거리는 게 감별의 포인트다.

하늘꽃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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