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와 같은 대부분의 한의사는 동네 한의원을 운영하고 치료수단은 대개 한약 보다는 침치료가 주가 된다. 침으로 치료할 때 환자의 치료되는 모습을 보면 침 맞은 그날 하루는 좋았다가 그 다음날 아침에는 역행해서 약간 나빠지고 오후가 되면 어제보다 좋아진 느낌을 스스로 느낄 정도로 호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과정이 완치될 때까지 지난하게 이어진다.

성격이 급한 환자는 보통 한의원 문이 열리자 내원해서 예전에는 침 한방에 단번에 나았는데 이번에는 원장이 신경도 안 쓰고 대충 놓았다고 애꿎은 간호사들에게 투정을 부리기 일쑤다. 왜 아침이면 어제보다 더욱 아프고, 일어나서 조금이라도 움직일라치면 아픈 곳이 덜 아플까? 밤에 휴식을 취할 때 그 전날 육체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입었던 상처들이 치유가 된다. 그 전날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아도 하루 밤을 자고 나면 그 충격량이 반감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이와는 달리 밤에 잠잘 때는 한 자리에서 뒤척거리기만 할 뿐 낮에처럼 역동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당연히 혈액순환 속도가 느려질 것이고 체온도 조금 떨어진다. 그래서 통증은 더욱 심화된다. 대개 밤에 끙끙 앓으면서 “내일은 한의원에 꼭 가 봐야지.”하고 결심하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조금 움직이면 어제보다 많이 좋아진 것을 안도하면서 한의원 내원을 취소하기 일쑤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든 질병이 대개 밤의 끝인 아침에 더욱 아픈 이유다. 이를 주경야중(晝輕夜重)이라 한다. 낮에는 질병이 가벼워지고 밤에는 심해진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환자는 침만으로 치료를 하려고 하지만 어떤 환자는 한약이 반드시 병용(倂用)이 되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치료를 위해 한약을 복용해야 한다고 하면 한약에 대해 거부감이 있는 환자는 여러 가지 이유로 거부의사를 밝힌다. 중국산이라서 신뢰가 안 된다거나, 중금속이 문제가 된다거나, 권위 있는 의사가 한약을 복용하면 간이 나빠지기 때문에 어떤 한약도 복용하면 안 된다고 했다거나, 지금 사돈의 팔촌이 이것저것 몸에 좋다는 것을 넣어서 지어준 흑염소 보약이나 개소주를 내려서 먹고 있다고 하거나, 몸에 좋은 건강식품을 수십 종류 먹고 있어서 한약을 먹고 싶어도 먹을 시간이 없다고 하는 등등 무수히 많은 이유를 댄다.

한의사들이 마치 경제적인 이익을 챙기려고 쓸데없이 한약을 강권하는 듯이 비춰져서 씁쓸하지만 필자 같이 점잖고 아량이 넓은 한의사는 하도 이런 말을 많이 들어서 그냥 ‘허허’ 하고 넘어간다. 하지만 피 끓는 젊은 한의사는 조목조목 반박할 수 있으니 복용하기 껄끄러우면 그냥 “돈이 없어서 복용할 수가 없다.”고 하는 게 제일 깔끔하다. 숟가락을 들 힘도 없을 정도로 기운이 없는 환자는 보약으로 기운을 올리지 않으면 치료기간만 길어지고 눈에 띄게 좋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이 때 투약하는 보약은 보약이지만 치료의 연장선이므로 치료약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치료 목적으로 녹용이 든 보약을 처방할라치면 녹용이 든 한약을 먹으면 생애 마지막 날 숨이 끊어질 때 엄청 고생한다고 해서 못 먹겠다고 한다. 아이들 보약의 경우도 녹용 때문에 아이가 저능아가 될 수 있어서 못 먹이겠다고 하거나 입맛을 돌게 해서 아이가 비만하게 된다고 거부한다. 아가씨들은 보약을 지을 때 꼭 살 안 찌게 해달라고 당부한다. 필자는 어김없이 “한약에 고기가 든 것도 아니고 풀뿌리로만 된 한약이 무에 그리 칼로리가 높다고 살찐다고 하느냐?”고 반문한다. 생지황을 구증구폭(九蒸九曝)해서 숙지황을 만드는 과정이 복잡하고 더군다나 수치가 끝나면 양(量)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까닭에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다.

대개의 보약에 숙지황이 많이 들어가는 관계로 숙지황이 들어간 한약을 먹으면서 무를 먹으면 머리가 백발이 된다고 믿고 보약을 저어하는 환자도 있다. 이 사실은 ‘뇌공포자론(雷公?炙論)’의 숙지황 금기부위에 숙지황이 쇠에 닿으면 머리를 희게 만든다는 것에서 출발된 것 같다. 본초품휘정요(本草品彙精要)에는 무, 파, 부추, 염교의 흰 부분을 피해야 한다고 더 넓게 해석하고 있다. 필자는 환자로부터 숙지황으로 흰머리가 낫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하늘꽃한의원 원장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