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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 무리수 말아야

한진 조양호 등 ‘기업 압박’ 오너경영 선입견인가… ‘스튜어드십 코드’ 적용 원칙 정해야
  •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
매년 3월 주총 시즌이 돌아오면 코스피ㆍ코스닥 상장 2100여개사는 주총 안건과 배당률을 정하느라 정신이 없다. 올해는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용해 한진칼, 남양유업, 현대그린푸드 등 일부 상장사에게 적극적인 주주권을 행사하겠다고 밝힌 바 있어 더욱 긴장하는 분위기다.

그런데 이들 기업에 대해 국민연금이 썩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 핵심 이유는 ‘오너경영=폐단’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비롯된다. 연금 관계자들은 오너 경영체제로 돌아가는 회사 시스템이 거의 다 △ 갑질 문화 조장 △ 독단적 의사결정 △ 합리적 견제 불가능 등의 부작용이 있다고 이유를 내세워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다.

반면 해당산업 전문가에게 CEO를 맡긴 상장사들은 오너기업에 비해 합리적인 자율 경영을 추구하는 개선된 지배구조라서 생산성이 더 높고 수익률이 올라간다는 선입견이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오너경영은 폐단이고 전문경영인 체제는 최선이라는 이분법적 평가의 근거와 논리는 무엇인가. 오너경영이든, 전문경영인 체제든 간에 양자를 비교해 경영 효율을 따지는 것은 ‘동전의 양면’처럼 적절치 않다.

경영폐해와 비효율의 ‘명’과 ‘암’은 단순한 이분법적 시각으로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한국 기업사에서 가장 먼저 전문경영인 체제를 확립했다고 평가받았던 기아차가 망하고 오너체제인 현대차에 병합된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오너냐, 전문경영인이냐의 문제보다는 해당 기업이 처해있는 업황, 글로벌 경쟁구도, 기업구성원의 총체적 역량, 정부의 정책변화, 금융권의 지원 등 훨씬 복잡한 외생 변수들이 회사에 미치는 영향력과 파괴력이 훨씬 더 크다.

그 기업이 사양산업에 속해있다면 오너든, 전문경영인이든 간에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국내 굴지의 한 해운회사의 경우 눈덩이같이 불어나는 적자를 감당 못한 오너 경영인이 사재까지 출연하면서 회사 경영권을 넘겼고, 그 분야 최고전문가로 평가받는 CEO가 이어받았지만 몇 년간 적자가 더 불어나고 있어 채권단의 시름이 깊다.

반면 업황이 좋은 일부 상장사는 호박에 줄을 그어도 수박으로 믿고 매출이 오를 정도로 글로벌 호황의 혜택을 누린다. 이런 회사에 대해 기관투자자들은 CEO가 오너냐, 전문경영인이냐 개의치 않는다.

세계적인 진보 경제학자로 꼽히는 장하준 영국 켐브리지대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씨, 정씨 집안이 삼성과 현대에서 쫓겨나면 국민이 하루 즐겁지만, 글로벌 금융자본에 먹히는 형태가 되면 국민이 20년 고생하게 된다”고 경고한 바 있다.

그런데도 연금은 ‘오너체제=비효율 경영’이라는 고정관념 하에 갑질 논란으로 국민에게 ‘밉상 기업’으로 찍혔던 회사만 골라서 주총에 참여하겠다고 밝혀 스튜어드십 코드 본래 취지인 실질적인 경영개선 보다는 다소 정치적, 상황적 접근방식이 아닌가 우려된다.

오너 가족의 일탈 행위가 문제되었던 한진그룹과 대리점주에 대한 횡포로 불매운동이 벌어졌던 남양유업이 해당 기업들이다. 하지만 갑질 논란은 그에 합당한 법적 처벌을 받으면 되는 것이다.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은 IMF 직후와 뉴욕 9ㆍ11 테러 등 초대형 악재로 항공업계가 최악이었던 시즌에 보잉, 에어버스 항공기를 절반 값에 대거 구입했다. 그러다가 2006년 이후 호황이 돌아오자 경쟁사들은 대한항공 보다 2배 이상 비싼 가격에 구입하느라 진땀을 흘린 일화가 있다. 매년 마다 단기 이익을 내서 실적을 올려야 하는 전문경영인의 ‘단견’과 오너 경영인의 느긋한 ‘안목’과 대비되는 장면이다.

남양유업 홍원식 회장은 외환위기 직후 기업들이 자금난에 허덕거리던 당시 은행 채무 180억원을 전액 상환하고 ‘무차입 경영’ 시대를 열어 재계를 깜짝 놀라게 만든 장본인이다.

이들 오너 경영인을 두둔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투명경영에 위배되거나 갑질 문화로 비난받는 부분은 당연히 질책받고 반성해야 한다. 그렇지만 해당 업계에서 50년, 60년 치열한 경쟁과 시련을 견디면서 쌓아 온 오너 경영인들의 ‘내공’을 연금같이 경영에 문외한인 기관투자자들이 가볍게 일축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는 타인 자산을 관리 운영하는 수탁자로서 책임을 충실히 이행하는 게 기본이다. 그럴려면 연금은 스튜어드십 코드 적용에 관한 논리나 원칙, 기준을 정하고 역량과 전문성부터 갖춰야 할 것이다.

국민연금은 매년 3월 주총이 돌아올 때마다 정말 신중하고, 사려깊게 주주권을 행사해야 한다. 그것이 국민연금이 지켜야 할 제일 중요한 덕목이다.

박종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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