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억달러 설, 외압 몸통, 돈 쓰임새 등 의혹해소 여부에 관심집중

[대북송금 특검] 북송 달러 누가, 왜 얼마를 밝혀질까
8억달러 설, 외압 몸통, 돈 쓰임새 등 의혹해소 여부에 관심집중

4월 17일 공식 출범한 송두환 특검은 기대이상의 초반 피치를 올리면서, 중요한 단서 두 가지를 확보했다. 2000년 6월 현대상선 대출실무를 담당했던 산업은행 이모 팀장으로부터 “위법인줄 알았지만, 상부 지시로 어쩔 수 없었다”는 진술을 확보, 대출 외압의 흔적을 찾아냈다.

또 외환은행에 수표 26장(2,235억원ㆍ2억달러)을 입금하면서 배서했던 신원불상의 6명이 국정원과 관련된 인물이라는 점도 일부 확인, 대북송금 과정에서의 국정원 개입사실도 포착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이미 정답이 정해진 것들이었다. 외압이 아니고서는 산은이 기본적인 대출절차도 무시한 채 거금 4,000억원을 대출해줬을 리 없다. 또 임동원 전 국정원장이 지난 2월 “송금과정에 환전편의를 제공했다”는 발표는 곧 ‘국정원 직원들이 외환은행의 국정원 계좌로 해외송금했다’는 사실의 완곡한 표현이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국민들이 알고자 하는 것은 그 동안 언론보도의 사실여부 확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의 누가, 어떤 의도로 국책은행에 예치된 국민세금을 국민 몰래 빼내 북한에 줬는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밝힌대로 북한에 준 돈이 5억달러뿐인지를 속시원히 알려줘야 한다.


산은 대출, 외압의 몸통은?

박상배 당시 산은 부총재로 하여금 동일인 대출한도 규정을 초과하면서까지 현대상선 4,000억원 대출을 전결로 처리하게 한 장본인은 과연 누구일까. 일단 엄낙용 전 총재는 ‘한광옥-이근영’ 라인이라고 지목하고 나섰다.

엄 전 총재는 “2000년 8월 총재 취임 후 전임 총재였던 이근영 금감위원장에게 물어봤더니, 한광옥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시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답변을 들었다”는 지난해 국감에서의 발언을 이번 특감에서 되풀이 했다. 정철조 당시 부총재(현 대우증권 회장)도 “한광옥 실장과 이근영 총재가 자주 통화했던 사이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진술해, 엄 전 총재의 말을 뒷받침했다.

대출과정에 정통한 산은 관계자는 “대출을 주도한 몸통은 박상배 부총재가 아니다. 아무리 박부총재가 이기호 당시 경제수석과 가까웠더라도, 정부 고위층에서 다이렉트로 박부총재에게 압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박부총재와 이 수석은 고교(광주일고), 대학(서울 상대) 동기로 절친한 사이다.

결국 ‘임동원ㆍ박지원→이기호→박상배’ 라인보다는 ‘임동원ㆍ박지원→한광옥(또는 이기호)→이근영→박상배‘의 고리가 더 설득력이 있다는 얘기다.


정상회담용? 현대 대북사업용?

그러면 정부 고위층이 왜 당시 현대상선의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도 모르게 산은 대출을 알선했냐는 문제가 대두된다. 이에 대한 수사는 5억 달러 대북송금의 목적이 현대의 대북사업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정상회담용이었는지 확인하는 작업이다.

그러나 이는 특검이 밝혀내기가 여간 힘든 문제가 아니다. 임동원 전 원장이든, 박지원 전 실장이든, 이기호 전 수석이든, 정몽헌 회장이든 특검에 나와 “5억달러는 현대의 7대 대북사업 권리금이며, 이 돈이 결과적으로 정상회담에 도움이 됐을 수는 있었을 것” 정도 이상의 진술을 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목해야 할 대목이 대북 송금과정에서의 국정원의 역할이다. 수표 26장(2억달러)을 외환은행에 입금, 송금의뢰를 한 사람들이 국정원 직원들이었음은 특검에서 일부 확인했다. 여기에다 김충식 전 현대상선 사장은 측근에게 “청와대와 국정원의 강요로 어쩔 수 없이 (대출) 계좌를 빌려줬다. 내가 버텼지만, 그 쪽에서는 계좌만 쓰는 건데 왜 그러느냐고 하더라”고 밝힌 바 있다.

또 국정원의 한 중간 간부가 김충식 사장방에 직접 찾아가 수표 26장을 건네 받은 뒤 부하직원에게 환전ㆍ송금을 지시했다는 얘기도 들리고 있다. 송금계좌와 관련, 금융계 핵심 관계자는 “임동원 전 원장이 환전편의를 제공했다고 하는데, 달러로 바꿔 송금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외화송금시 실수요증명 등의 절차를 쉽게 통과할 수 있는 국정원 계좌가 이용됐을 가능성이 확실하다”고 전했다.

5억 달러가 현대의 대북사업 몫이었다면 국정원이 김충식 사장에게 “계좌 좀 빌리자”고 압력을 넣었을 리 없고, 국정원 중간간부가 26장을 직접 받아가 국정원 계좌로 송금한 사실도 설명하기 힘들어진다.

이 경우 (대북송금액이 총 5억불이라면) 최소한 2억 달러는 청와대ㆍ국정원이 책임지고 조달ㆍ송금하기로 한 정상회담 대가이고, 3억 달러는 현대의 대북사업 권리금이라는 추론도 가능해진다. 더욱이 현대측이 밝힌 대북 7대사업이라는 게 북한의 휴대폰 사업 전반, 인터넷 사업 전반 등으로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대북송금 총액은 도대체 얼마?

사실 5억 달러라는 것은 임동원 전 국정원장과 정몽헌 회장의 주장일 뿐이지, 실제 대북송금이 얼마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5억 달러라는 계산은 ▦ 산은대출 중 2,235억원(2억달러) ▦ 현대전자(현재 하이닉스반도체)의 해외반도체 공장 매각대금 1억달러를 포함한 1억5,000만달러 ▦ 현대건설이 자체 조달한 1억5,000만달러 등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현대상선 미주본사 등을 통한 송금액을 포함하면, 8억 달러라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특검이 종료되더라도 대북송금 총액에 대한 의혹은 여전히 남을 가능성이 높다. 특검은 현대전자 1억5,000만달러와 현대건설 1억5,000만달러에 대해서도 수사를 한다는 계획이지만 현대그룹 해외법인들이 동원됐을 경우, 계좌추적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역사의 평가로?

이 같은 세가지 의혹을 규명하더라도, 전체 퍼즐에 비하면 일부에 불과하다. 만일 ‘대북송금 통한 정상회담→노벨 평화상 수상’ 이라는 DJ정권 핵심부의 ‘그랜드 플랜’이 있었다면, 이를 밝히는 것은 특검의 영역 밖이다.

또 북한에 송금된 돈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뒷주머니로 갔는지 아니면 식량 조달에 쓰였는지, 무기 구입에 쓰였는지, 이 과정에 배달사고는 없었는지에 대한 문제도 처음부터 특검의 수사대상이 아니었다. 이들 문제는 먼 훗날 사가(史家)들에 의해 밝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확인된 사실만을 발표할 특검의 수사결과는 기대에 못미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범죄 사실을 밝히는 수사를 통해, 통치권 차원의 고도의 정책적 판단을 사법처리하는 게 바람직한 지도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유병률기자


입력시간 : 2003-10-01 16:36


유병률기자 bryu@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