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불패심리 확산, 중개업 진출 희망자 속출

[부동산 고시열풍] 공인중개사 자격증 취득 열풍
부동산 불패심리 확산, 중개업 진출 희망자 속출

5월2일 오전 8시30분. 초등 학생인 딸을 학교에 보낸 주부 임선화(41)씨는 부근의 부동산 공인 중개사 전문학원인 서울 왕십리 한국법학원으로 달려간다. 9월21일로 예정된 제14회 공인중개사 자격증 시험을 앞두고 거의 1년째 시험 준비를 해온 임씨는 벌써부터 조바심을 느낀다.

지난해 민법과 부동산학 개론 때문에 1차 시험에서 떨어진 그녀는 늘 책을 끼고 살지만 이제 4개여 월 밖에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마음을 놓지 못한다. 그녀는 이번에는 반드시 1ㆍ2차 시험에 동시에 합격하겠다는 각오다.

“시간을 갖고 공부를 해봐도 민법과 공시법이 어려운 것 같아요. 지난해에는 6개월 정도 공부하고 시험을 봐 미끄러졌지만 이젠 어떻게 공부해야 할 지 대충 감이 왔거든요. 오기로 해서라도 이번에는 꼭 통과해야죠.”

임씨는 오전 강의 4시간 외에 딸이 학원을 간 틈을 이용해 또 저녁 6시까지 책을 본다. 거의 하루에 8시간 정도 중개사 자격시험 공부에 매달린다. 또 남편이 퇴근한 뒤에도 웬만하면 다음날 강의 예습을 위해 늦은 밤까지 불을 밝힌다.

남편도 그런 모습을 보며 격려하고 주말이면 집안 일을 도와주기도 한다. 임씨는 그 정성에 보답이라도 하듯 “중개사 자격증만 따면 돈 벌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 한 것 같아요. 먼저 동부이촌동에서 한 1년간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일을 익힌 후 독립하고 싶어요. 개업하는 것이 꿈”이라고 각오를 다진다.


학원 수강생 80%가 주부

임씨와 같이 부동산 공인 중개사가 되는 꿈을 꾸는 30ㆍ40대 주부들이 크게 늘었다. 서울 종로와 노량진, 왕십리, 목동 등 주요 공인 중개사 자격준비학원의 수강생 중 80% 이상이 주부들이다. 이를 반증이라도 하듯 매년 부동산 중개업에 진출하는 주부들의 수도 기아 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전국부동산 중개업협회에 따르면 올 2월 현재 여성 부동산 중개인은 1만2,497명으로 전년 대비 35% 증가했다. 전체 중개업자 10명중 2명(21%) 이상이 주부인 셈. 중개업소를 방문하는 주 고객인 주부들이 여성 중개인에게 더 편한 느낌을 갖을 만큼 이제는 ‘여성 공인 중개인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자연스러운 분위기다.

최근 예금금리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한동안 주춤하던 부동산 가격이 재건축 열풍으로 다시 들썩이면서 “그래도 부동산 밖에 없다”는 ‘부동산 불패’에 대한 기대 심리가 커져 공인 중개사 자격증을 따려는 열기가 뜨겁다. 임씨와 같은 주부는 물론이고 40ㆍ50대 퇴직을 앞둔 직장인이나 공무원, 은퇴자들이 자격증을 노리고 학원 강의실로 몰려들고 있다.

굿모닝 증권 임원 출신의 양영수(56)씨는 퇴직 후 노후 생활을 위해 뭔가 할 일을 찾던 중 부동산 공인 중개사직에 관심을 갖고 본격적으로 자격증 시험공부를 시작했다. 이제 5개월쯤 됐지만 ‘자칫하면 또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떨칠 수는 없다.

주식 중개업과 부동산 중개업의 성격이 비슷한 관계로 학습 진도가 남들보다 빠르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제13회 시험에 응시했다 미끄러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씨는 “공인중개사 시험을 만만하게 보면 안된다”며 “일반인들에게는 사법고시에 버금가는 고등고시”라고 고개를 젖는다.

그는 “민법ㆍ공법 등 법 과목이 워낙 까다로와 지난해 응시신청자 26만5,000명(실제 응시 20만명수준) 중에서 1만8,000명이 합격해 합격률이 10%에 불과할 정도로 만만찮은 자격시험”이라고 말했다. 학원 수강 외에 도서관에서 저녁 8시까지 공부하는 양씨는 행정고시를 준비하는 법대생 막내 딸 이야기를 하며 “우리 집에는 고시(?)생이 2명”이라며 웃는다.

양씨는 자격증을 따면 서울 강남이나 경기 성남 분당 등 대단위 아파트가 몰려 있는 단지 상가내 부동산 공인 중개업소를 하나 인수해 사업할 꿈을 꾸고 있다. 물론 처음부터 개업을 하기 보다는 안정적으로 1년간 사업장소를 물색하고 현지 경험을 쌓은 후, 몫 좋은 공인 중개사 사무실을 인수한다는 것이 그의 계획이다.

이렇게 기존의 중개업소를 인수해 문을 여는 신출내기 중개사들도 크게 늘고 있어 지역에 따라서는 부동산 중개업소 사무실 권리금도 천태만상이다. 강남구 대치동과 송파구 송파동 등의 경우 권리금만도 평균 1억~1억5,000만원 선으로 임대 보증금까지 합하면 창업 비용이 2억원 가까이 드는 곳이 허다하다.


합격률 10%의 ‘부동산 고시’

중개사 자격증 시험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양씨는 “중개사 시험은 충분한 기간을 잡고 공부해야 한다”며 “자격증 시험이라고 해서 운전면허 시험처럼 생각해서는 큰 코 다친다”고 말했다. 미리 학원에 등록하고 계획을 세워 최소한 1년간 꾸준히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동산 중개사 시험이 어려워졌다는 소문에 직장인들이 노후를 대비해 미리미리 자격증을 따 두려는 열기도 대단하다. 우리은행은 사이버 동영상 교육기관을 통해 이뤄지는 부동산 중개사 준비 시험 대비 연수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데, 수강중인 직원만도 1,600여명에 달한다.

우리은행의 한오현 (32ㆍ홍보팀) 대리는 지난해 13회 시험을 봐서 1차에 합격하고 현재 공법과 공시세법 등이 포함된 2차 시험을 준비 중이다. “은행업무상 부동산 금융과 관련이 많아 스스로 자기개발을 위해 공부하고 있다”는 한 대리는 매일 1시간 이상씩 집에서 PC를 통해 학과 공부를 동영상으로 공부하고 있다. 우리은행에서는 지난해 1,550명이 부동산 중개사 시험에 응시해 133명이 합격했다.

성동구청 취수과에 근무하는 김평구(40ㆍ8급)씨 역시 부동산 중개사 시험 응시생이다. 토목직에 종사하다보니 도시관련법 등 각종 부동산 관련법을 접하게 돼 이를 마스터하기 위해 퇴근 후 부근의 부동산 중개사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저녁 7시부터 시작하는 강의는 저녁 10시30분까지 이어진다. 직장인 특별반에 수강하고 있는 김씨는 올해 1차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저녁시간을 고스란히 학원에 바치고 있다.

중개사 공부를 시작한지 6개월 정도 된 남혜경(32ㆍ여)씨는 현재 대기업에서 일반사무직에 종사하고 있지만 부동산 중개업으로 전직을 꿈꾸며 시험준비를 하는 케이스다. 남씨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고 자기 시간도 많이 가질 수 있어 부동산 중개인이 되길 원한다”고 말했다.

자영업을 하는 이재춘(45)씨는 지난해 11월부터 노후대비 차원에서 중개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원에 등록해 공부를 하고 있다. 최근 공시ㆍ지적법과 관련한 모의고사에서 최고점수를 받아 고무된 이씨는 민법 부분이 취약점.

이씨는 “민법은 같은 문제라도 한번 꼬아서 나오면 어려울 때가 많다”며 “함께 공부를 시작한 친구들이 시험이 어렵다며 포기하는 것을 볼 때마다 마음을 다잡고 올해 1ㆍ2 시험 합격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개업소 난립으로 이어져

합격률이 10%대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매년 1만8,000여명씩 공인 중개사가 배출되고 있는 현실을 놓고 지나치게 합격자가 많다는 볼멘 목소리도 중개업계에서는 터져 나오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중장년층 실업 해소를 위해 대선공약으로 공인 중개사 시험을 연 2회 실시할 것을 내놓았지만 중개업계의 압력에 밀려 공약(空約)이 되고 말았다.

건설교통부는 연간 1회 실시되는 중개사 시험을 2회로 늘리기 위해서는 법령 개정 등 절차에만 6개월 이상 소요되고 합격자가 이미 과다 배출되고 있다며 난색을 표명, 2회 실시가 현실적으로 어려워졌다.

김부원 공인 중개사 협회장은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 규모를 감안할 때 적정한 부동산 중개업소 숫자는 2만개 정도 인데 이미 6만개가 넘는 중개업소가 개업해 집값 급등을 조장하는 폐해가 속출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중개사 시험을 연간 2회씩 치러 합격자를 매년 4만명씩 양산하자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부동산 중개업이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것도 아닌, 자격시험에 불과한데, 마치 ‘고시’ 시험보듯 하는 현재의 시험제도에도 문제가 있다는 반론도 없지 않다.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시험 합격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소문에 부동산에 투기하듯 부동산 중개자격증에 가수요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이 같은 현상은 최근 시험 합격 연령층이 급격히 낮아지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 사회에 ‘부동산 불패’에 대한 기대심리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부동산 중개사 시험의 ‘고시화’는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한 해 26만여명 응시, 불황때 많아져
   

부옐?시장의 최일선에서 뛰는 공인중개사 시험 응시자는 지난해 국가 기술자격 검정시험 사상 단일 종목으로는 가장 많은 26만1,604명에 이르렀다. 85년 제1회 공인 중개사 시험은 자격증 제도를 정착하기 위해 15만 명이 응시해 6만명이라는 비교적 많은 합격자를 배출했으나 이듬해 2회 공인중개사 시험부터는 2만~5만명 정도가 응시해 1,000명~5,000명 안팎이 합격했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불어 닥친 실업위기와 부동산 경기 활성화로 97년 12만명이 응시한 이후 시험 때 마다 10만명이 넘게 응시해 매년 1만5,000명 정도의 합격자가 탄생해 부동산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부동산 중개업소는 모두 5만8,920개소로 2001년 4만9,680개소에 비해 9,240개소(18.5%)가 늘어났다. 지역별로는 경기 3,921개소, 서울 2,406개소, 인천 637개소 등 부동산 가격 상승폭이 컸던 서울 및 수도권에서 75.3%가 늘었다.

형태별로는 2001년 656개소에 달하던 중개법인은 584개소로 줄어든 반면 공인 중개사가 운영하는 중개업소(4만1,663개소)는 전년(3만1,458개소)에 비해 1만205개소가 늘어 개인화하는 특성을 보였다.

 

장학만 기자


입력시간 : 2003-10-01 17:26


장학만 기자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