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역사의 뒤안길서 '은둔의 세월' 보내

[정권의 황태자] '권불오년' 역대정권의 황태자
대부분 역사의 뒤안길서 '은둔의 세월' 보내

그들은 현재 대부분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드는 '저문 태양' 신세다. 한순간 활짝피었다가 시들어 버리는 벚꽃이거나 6~7년을 기다린 끝에 10여일간 화려한 여름을 노래하다 끝나는 매미와 같다고나 할까. 황태자 군단의 부침만 놓고 보면 '권불오년(權不五年)이요, 화무오년홍(花無五年紅)'이 아닐수 없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역대 정권의 황태자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과거의 명성에 걸맞은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을까. 아니면 초야에서 무념의 은둔생활을 하고 있을까.

약속이나 한듯이 그들은 현재 대부분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드는 ‘저물어 버린 태양’의 신세다. 한순간 활짝 피었다가 바로 시들어 버리는 벚꽃이거나 6~7년을 기다린 끝에 10여일간 화려한 여름을 노래하다 끝나는 매미와 같다고나 할까. 부활을 꿈꾸며 한 두번 재기를 시도하지만 주변 여건은 그리 녹록지 않다. 고토 회복은 힘겨워 보인다.


“추억을 먹고 산다?”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 장세동 전 안기부장, 박철언 전 의원, 금진호 전 상공부 장관, 김현철…. 이름만 나열해도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엿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만큼 황태자 군단의 영향력은 정권의 운명을 좌우할 정도로 막강했다.

국가재건최고회의 공보실장을 시작으로 청와대 비서실장과 중앙정보부장 등을 지낸 이후락씨는 북한을 극비 방문하는 등 3공화국의 강력한 실세로 위세를 부렸지만 ‘궁정동 총소리’와 함께 정치적 나래를 접었다.

79세 고령의 이씨는 외부와의 접촉을 끊은 채 경기 하남시 자택에서 기거하며 인근의 광주군 초월면 도평리의 ‘도평요’ 등지에서 도자기를 빚으며 소일하고 있다. DJ 정권의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서울대 최종길 교수의 의문사와 관련, 출두요구서를 보냈으나 치매 증세를 이유로 출두를 거부한 게 공식적으로는 가장 최근 일이다.

5공 출범과 함께 청와대 경호실장과 안기부장을 역임한 장세동씨는 ‘권력은 짧고 역사는 길다’는 속설을 몸으로 입증시킨 장본인. 5공화국 내내 전두환 전 대통령의 그림자 보좌를 해 왔지만 6공화국와 YS의 문민정부에서 세 차례 옥고를 치르는 비운을 맛봤다.

지난 12ㆍ19 대선에서 무소속 출마를 했다가 투표 전날 사퇴했으며 올해 초 광주 5ㆍ18 묘역에 다녀온 게 공식 행보이다. 유학 중인 아들을 보러 가끔 미국을 다녀오고 있으며 전두환 전 대통령 측근들과 매주 산행을 즐기고 있다.

새마을운동본부 중앙회장을 지낸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경환씨는 5공 당시‘영제님’으로 불릴 정도로 대통령의 친ㆍ인척 중 가장 영향력이 컸다. 6공 출범과 함께 구속돼 죄값을 치른 뒤 대구에서 수차례 무소속으로 총선 출마를 노렸지만 형의 만류로 칼을 꺼내지도 못했다. 공식 활동은 일체 안하고 있으며 ‘5공 모임’에도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또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랫동서인 금진호 전 상공부장관은 1989년 창설된 국제무역경영연구원 회장을 맡아 무역한국의 입지를 넓히는데 조용히 기여하고 있으며,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야당 총재시절 ‘우형우’로 불린 최형우 전 의원은 15대 국회이후 와병 치료에 전념하면서 경주 최씨 대종회장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패밀리 3인방 중 하나인 김복동 전 의원과 YS 상도동계의 ‘좌동영’인 김동영 전 의원 등은 화려한 영화를 뒤로 한 채 이미 고인이 됐다.


현역 활동은 JP 유일, 박철언ㆍ김현철씨 재기 의욕

역대 정권의 황태자 군단중 계속되는 권력의 부침 속에서도 끈질기게 살아 남아 현역으로 활동 중인 이는 김종필 자민련 총재가 유일하다. 박철언 전 의원도 YS정권에서 영어의 몸이 된 이후 15대 총선에서 자민련 공천으로 다시 ‘배지’를 달았지만 16대 총선 때 낙선했다.

아직도 정치적 정년을 맞기에는 조금 이른 나이(61세)여서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대구시장 출마설이 도는 등 고토 회복을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현재 사단법인 대구경북발전포럼 이사장 직을 맡고 있는데 언제든지 명예 회복을 위해 나설 태세다.

‘소통령(小統領)’이란 신조어를 만들어낸 김현철씨는 이미 공개적으로 내년 총선 출마를 밝힌 바 있다. 고향인 경남 거제가 유력시되고 있으나 한나라당 공천으로 나설 경우 현 의원들과의 교통정리가 관건이고 무소속 출마시에는 당선을 담보할 수 없어 아버지인 김영삼 전 대통령의 고민거리로 남아 있다.

5월28일 경남 거제에서 ‘거제미래발전연구소’ 개소식을 갖고 연구소장에 공식 취임했다. 현철씨가 대외직함을 가진 것은 92년 대선 직후 그만둔 민주사회연구소장 이후 11년만이다.

동교동계의 맏형 권노갑 전 의원도 내년 총선 출마를 기정 사실화 한 뒤 서울 등지에서 재기의 꿈을 다지고 있으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 김홍일 의원도 내년 출마의지를 밝히면서 의정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홍업씨(수감중)와 홍걸씨는 법원의 확정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

DJ정권의 ‘대통령(代統領)’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특검 소환을 앞두고 있어 ‘황태자는 청와대에서 교도소로 간다’는 속설을 비껴가지 못할 전망이다. 황태자 군단의 부침만 놓고 보면 ‘권불오년(權不五年)이요, 화무오년홍(花無五年紅)’이 아닐 수 없다.

염영남 기자


입력시간 : 2003-10-02 14:51


염영남 기자 libert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