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감에 휩싸인 광주·전남국정운영에 불만 고조, 신당 출범엔 허탈감마저

[지방 민심은 지금] "앗쌀하니 盧랑 갈라져야제"
배신감에 휩싸인 광주·전남
국정운영에 불만 고조, 신당 출범엔 허탈감마저


“뭐땀시 그런다요. 그만큼 밀어줬으면 은혜를 알아야제” “당을 짜개고 뭔 지랄이여”. 9월23일 광주민주화의 상징인 금남로에서 만난 광주 시민들은 야속한 듯 한마디씩 툭툭 던지고 지나갔다.

내년 17대 총선을 7개월여 앞두고 정치권이 ‘신(新) 4당 체제’로 재편되면서 주목받는 호남 민심은 한마디로 야 원망 허탈….


"누구땜시 대통령 됐는디"

전남도청 인근에서 구두수선을 하며 여론을 주워 듣는다는 정모(52)씨는 “신당땜시 광주 인심이 더 사나워졌당께. 화이트 칼라층은 4(신당)대 6(민주당) 정도일지 모르지만 민심은 바닥이라 전체적으로 내년 총선엔 2대8이나 3대7이 될껀게”라고 전망했다. 곁에서 듣고 있던 허모(62ㆍ자영업)씨는 “대통령 잘못 뽑았어. 나라도 저 지경이고. 지역화합하라고 영남사람 밀어줬더니 즈그들 사람만 챙기는 거 아녀”라며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불만을 드러냈다.

실제로 가장 최근(9월22일)에 실시된 문화일보-TN소프레스 여론조사 결과 이 지역 민심은 민주당 지지율이 40.2%로 통합신당 18.3% 보다 무려 22% 포인트나 높았다. 전체적으로 민주당이 14.2%, 통합신당이 13.4%로 근접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광주ㆍ전라 지역의 민심은 민주당 분당에 대해서는 거의 분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여성들은 어떨까? 금남로 지하상가에서 화장품 가게를 하는 김모(42ㆍ여)씨는 “정치요, 말도 마쇼. 밥 먹고 살기도 힘든디 뭔 놈의 정치여”라며 손을 내젖더니 신당에 대해서는 “허구헌날 싸움박질만 하다 뭐땀시 당을 또 만드는 거요”라며 반문했다.

경제사정이 IMF 위기 때보다 더 어려워진 사정을 반영하듯 줏대없이 흔들리는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불만을 토해냈다. “차라리 전두환 때가 낫다.대통령이 소신을 갖고 일관성 있게 나가야지, 이쪽저쪽 눈치만 보니 나라꼴이 되겠냐”(박모씨ㆍ53ㆍ옷가게 운영) “재래시장 경기는 완전히 죽었다. 나라 가난은 나랏님도 못 구한다고 하지만 노 대통령 하는 걸 보면 희망이 없다.”(최모씨ㆍ42ㆍ 양동시장에서 가구점 운영) “경제 어려운 게 대통령 책임만은 아니지만 문제는 노 대통령이 국민에게 신뢰와 희망을 주지 못한다는 데 있다.”(유모씨ㆍ36ㆍ보험사 직원)

양동시장에서 멀지 않은 광주공원의 노인들은 경제보다 정치에 더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양모씨(71)는 “대통령 만들어줬더니 왜 당을 짜게는 거여”라며 노 대통령을 ‘배신자’라고 혹평했다. 주변의 김모(74)씨, 홍모(72)씨도 맞장구를 치며 “광주에서 신당은 발을 못 붙일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20-30대 젊은 층은 조금 달랐다. ‘분당 반대’, ‘노무현 배신자’ 라는 등식이 성립되지 않았다. 금남로에서 만난 김모씨(26ㆍ조선대 수학과)는 “일부 문제만 갖고 노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비판하는 것은 기존의 고정관념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노 대통령을 변호했고, 김초희씨(20ㆍ여ㆍ광주대 언론광고학과 1년)는 “개혁을 지향하는 노 대통령과 신당을 지지한다”며 “단, 미국에 대해 당당하지 못한 게 불만”이라고 했다.

반면 박성진씨(22ㆍ광주대 전자공학과 3년)는 “지금의 노 대통령은 취임 초와 달라 실망하고 있다”며 “신당과 민주당 간에 차이가 뭐냐”고 반문했다.

이렇듯 광주의 민심은 세대별로 차이를 보였다. 20-30대와 화이트칼라 계층이 노 대통령의 개혁 노선 쇠퇴에 불만을 나타낸다면 40대 이상에서는 호남 차별화에 따른 피해 의식이 휩쓸린 듯한 인상이다. 그러나 신당 부분에서는 정권을 재창출한 민주당이 분열한 것과 신당이 민주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매부분 비판적이었다.


"신당 얘긴 꺼내지도 못해"

광주광역시 경계선을 벗어나면 노 대통령과 신당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 곡선이 더욱 높아진다. 나주 농협에 근무하는 이모(36)씨는 “보통 때도 노 대통령에 대해 불만이 많은데 수해로 농작물까지 피해를 봐 얘기 꺼내기가 무섭다”고 했다. 신당에 대해선 아예 말조차 붙이지 말라는 분위기.

이낙연 의원의 신당 합류가 주목된 함평의 분위기도 마찬가지였다. 기산초교 김모(40)교사는 “농촌지역 특성상 민주당 지지가 대부분”이라며 “수해에 WTO 문제까지 겹쳐 신당은 물론 노 대통령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라고 했다. 민주당의 역사와 정통성의 맥이 신당으로 인해 끊어진 것에 대해 대의원과 지역민들이 공분하고 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2번 국도를 타고 전주시 경계에 들어서면서 달라진 분위기를 기대했지만 “경제가 엉망인디 뭔놈의 정치여”, “그 밥에 그 나물 아닌감”이란 쓴소리에 한숨부터 나온다. 전주역 앞에서 만난 택시기사 황모(61)씨는 “젊은 노 대통령이 집권해 무언가 달라질 것을 기대했는데 경제와 정치가 모두 낙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당에도 기대할 게 없다”며 깊은 정치 불신을 드러냈다.

점심을 먹기 위해 들른 한식 전문점.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이 한식집주인 김모(47ㆍ여)씨는 “손님이 절반 가량 줄었다. 간단한 비빔밥을 주문하는 경우가 많다”고 장사얘기부터 꺼냈다. 손님 정모(45ㆍ정읍시 안경점 경영)씨는 “정치를 잘 해야 경제도 산다”며 “개혁의 본류는 민주당인데 신당은 명분이 없다. 노 대통령이 지역감정을 해소해주길 기대했는데 지금의 신당은 지역감정을 더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여기에 새만금과 부안 원전센터 건립 문제가 겹쳐 노 정권을 압박하고 있는 양상이다.

전주 완산구청의 공무원 이모(30)씨는 “경제가 어려운 데다 국가 주요 정책이 갈피를 못 잡고 흔들리니까 ‘불만’이 노 대통령에게 쏠린다”고 분석했지만 말투에서 광주와는 다른 분위기가 감지된다. 무엇보다 신당에 대해 관망하는 성향이 강했다.


"이젠 인물보고 찍어야제"

조모(39ㆍ증권사 근무)씨는 “무조건적인 민주당 지지가 호남의 낙후를 가져온 측면이 있다”며 “이제 인물을 보고 선택할 시대가 됐다”고 강조했고 전북대 도서관 앞에서 만난 권모(30)씨는 “민주당과 신당 간에 별 차이를 못 느낀다”며 “인물이 괜찮은 쪽을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주를 제외한 농촌 지역은 민주당이 유리하지만 ‘바꿔야’한다는 여론도 높아 신당이나 무소속 인사가 돌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느낌이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3-10-07 11:24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