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시장 '10·13쇼크'로 급매물 속출, "거품붕괴 촉발" 우려의 목소리도

[부동산 버블 '연착륙이냐 붕괴냐"] 최후의 카드, 토지공개념 제도
부동산 시장 '10·13쇼크'로 급매물 속출, "거품붕괴 촉발" 우려의 목소리도

“정부가 현재 준비하고 있는 종합적인 부동산 대책으로도 부족할 때는 강력한 토지공개념 제도의 도입도 검토하겠다.” ‘9ㆍ4 부동산 대책’ ‘5ㆍ23 부동산 대책’ 등 숱한 종합 대책이 쏟아졌을 때도 시장은 “해 볼 테면 해 보라지”라는 거만한 반응이었다.

심지어 정부 대책이 발표되는 즉시 부동산을 사는 ‘역(逆)투자’를 하면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돌았다. 헌데 이번엔 대책도 아닌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시장이 출렁거렸다. 서울 강남 재건축을 추진 중인 아파트를 중심으로 불과 하룻새 호가가 2,000만~3,000만원 떨어진 급매물이 쏟아졌다. 부동산 시장 관계자들은 ‘10ㆍ13 쇼크’라고 표현했다.

정부의 마지막 승부수는 바로 토지공개념이었다. 거품 붕괴 경고가 잇따르는 상황에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위기감의 발로였다.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언급한 토지공개념의 수위가 어느 정도인지, 도입을 할 수는 있는 것인지, 또 한다면 언제부터 하게 될 것인지 아무 것도 확실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이 벌써부터 크게 요동친 것은 토지공개념의 파괴력이 얼마나 클 것인지를 암시하는 대목. 일각에선 토지공개념 도입 자체가 거품 붕괴를 촉발할 것이라는 강한 우려를 내놓기도 한다. 과연 정부의 마지막 카드는 위기를 극적으로 타개할 수 있는 ‘스트레이트 플러쉬 패’가 될 것인가.


부동산은 공공재다

노 대통령은 10월13일 시정 연설에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정부의 부동산 대책을 믿지 않고 있으며 공공연히 ‘강남 불패’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부동산 가격은 반드시 안정시키겠다”며 토지공개념 도입을 공식 언급했다. 이런 발언의 근저에는 ‘부동산=공공재’라는 대통령의 철학이 깔려 있다.

“토지는 국민 생활과 기업 경영의 필수적인 요소인데 반해 확대재생산이 불가능하다. 일반 상품과 달리 취급해야 한다”는 언급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엔 이정우 대통령 정책실장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 이 실장은 경북대 교수 재직 시절 교수 10여명과 토지사유제 철폐를 주장한 미국 헨리 조지의 토지개혁사상을 이어받은 ‘헨리조지학회’ 활동을 하면서 토지공개념에 대한 인식을 강하게 확립한 것으로 전해진다.

토지공개념이란 토지가 제한된 공공재 성격을 띠는 만큼 토지의 개인적 소유권 자체는 인정하되 공공 복리에 맞게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소유와 처분을 제한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78년 당시 건설부장관이 토지공개념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토지의 공공적 성격에 관한 논쟁이 본격화했다.

이후 80년대 후반 전국이 부동산 투기 열풍에 휩싸이자 정부는 89년 ▦택지소유에 관한 법률(택지소유상한제) ▦토지초과이득세(토초세)법 ▦개발이익 환수에 관한 법률(개발부담금제) 등 토지공개념 3개 법안을 도입했으나 이후 위헌 및 헌법 불합치 결정 등으로 대부분 자취를 감췄다.

현재 정부가 구상중인 토지공개념은 과거와 발상 자체는 유사하되 위헌 시비를 피하기 위해 변형된 형태를 띨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이 언급은 ‘토지공개념’이라고 했지만 사실상은 ‘주택공개념’을 염두에 뒀다는 해석이 많다. 최근 부동산 가격 급등은 토지 문제가 아니라 아파트 등 주택에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개념 도입, 거품 붕괴 촉발할 수도"

이런 측면에서 현재 거론되는 가장 유력한 방안은 주택거래허가제다. 이미 시행되고 있는 토지거래허가제를 적절히 변형해서 활용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탓이다. 토지거래허가제는 건교부장관 등이 토지거래허가구역이나 신고 구역으로 지정하면 토지 용도 별로 일정 면적을 넘는 토지를 사고 팔 때 시ㆍ군ㆍ구청장의 사전 허가를 받거나 신고하도록 하는 제도.

아예 주택거래에 대해서도 허가제를 신설하거나 아파트에도 토지 지분이 있는 만큼 토지거래허가제의 적용 면적 기준을 대폭 낮추면 사실상 주택거래허가제의 성격도 갖추게 된다는 얘기다.

내년부터 폐지 예정인 개발부담금제 시한을 연장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특히 부담금을 대폭 늘리는 방식을 도입한다면 이미 시행중인 제도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부작용을 대폭 완화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또 다주택 보유를 아예 금지하거나 감내하기 힘든 정도의 중과세를 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상태를 심각한 거품 상황이라고 진단하는 학자들조차도 토지공개념 도입에 대해서는 부정적이거나 상당히 신중한 입장을 보인다. 이미 앞선 2개 법률이 위헌 등의 판정을 받은 데서도 알 수 있듯 사유재산권과 조세법률주의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토지 공개념을 기술적으로 구현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자칫 무리한 공개념 도입은 시장을 크게 위축시켜 거품 붕괴라는 최악의 상황으로 몰고 갈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권주안 주택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의 거품에 대한 정확한 진단 없이 초헌법적 조치인 공개념을 도입하는 것은 가뜩이나 침체된 경제에 화를 부를 수 있다”며 “굳이 최후의 수단을 도입해야 겠다면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개발부담금제의 연장 정도 선에서 마무리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주현 건국대 교수도 “생산이 제한된 1차 상품인 토지와 달리 주택은 얼마든지 추가 생산이 가능한 2차 상품인 만큼 공개념을 도입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 있다”며 “게다가 주택에 대한 공개념 도입은 토지와 달리 헌법이 보장하는 주거 이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등 수많은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일각에서 주장하는 국지적인 제도 도입 역시 공개념을 몇몇 특정 계층에만 적용한다는 점에서 자기 모순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10월 종합대책이 관건이다

물론 정부도 이같은 문제점을 전혀 인식하고 있지 못할 리는 없다. 대통령이 토지공개념을 언급한 것이 시장을 향한 경고일 가능성도 있고, 10월말 종합부동산 대책 마련을 앞두고 선제 공격을 한 것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관건은 10월말 발표될 대책이 얼마나 약효를 발휘할 것이냐에 달려 있다. 종합 대책이 강력한 효과를 내며 부동산 시장이 연착륙한다면 큰 부작용 없이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지만, 이전 대책과 마찬가지로 시장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을 경우 결국은 최후의 카드를 꺼내 드는 상황까지 내몰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가 검토중인 대책은 강남 등지 시가 6억원 이상 고가 주택 재산세를 대폭 인상하는 방안, 투기지역 내 주택구입자금에 대한 주택담보대출 비율을 현행 50%에서 40%로 낮추는 방안, 판교ㆍ김포ㆍ파주 등 3대 신도시 입주 시기를 최대한 앞당기는 방안, 신도시와 강북지역 곳곳에 특목고와 자립형 사립고 등을 증설하는 방안 등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이번 대책마저 또 다시 땜질식 처방으로 그칠 경우 벼랑 끝까지 몰릴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 탓에 이 정도 수준을 훨씬 능가하는 강력한 대책이 나올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과연 정부가 강력한 부동산 종합대책으로 거품 논쟁을 일순간에 잠재울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공개념이라는 극단적 카드를 꺼내야 하는 비상 상황까지 내몰릴지 지금 시장은 숨을 죽인 채 지켜보고 있다.

이영태 기자


입력시간 : 2003-10-23 10:11


이영태 기자 yt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