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 괴담] 찍힌(?) 기업 줄줄이 '서초동 행'


“소문이 무섭다”. 요즘 정계와 재계에 휘몰아치고 있는 ‘검풍(檢風)’을 보면서 이 말을 곱씹어야 한다는 사람들이 많다. 과거에는 ‘괴담’ 혹은 ‘소문’으로 떠돌고 있던 내용이 하나씩 현실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선을 전후해 정ㆍ재계 주변에서는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 SK와 LG가 검찰 수사의 제1 타깃이 될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SK의 경우 대선 막바지에 민주당에서 선거자금과 관련해 ‘SOS’를 쳤는데, 몇 차례 거부하다 마지못해 응한 것이 ‘괘씸죄’에 걸렸다는, 소위 ‘SK괴담’이 떠돌았다.

또 SK그룹은 총수부터 전경련 원로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있어 새 정권이 정치개혁의 본보기로 재벌 ‘손보기’에 나설 때 첫 희생자가 될 것이라는 ‘설’도 나돌았다.

그로부터 얼마 뒤, 노무현 정부가 채 출범하기도 전에 SK는 검찰수사 대상에 올라 괴소문이 현실로 눈앞에 나타났다. SK그룹 최태원 회장은 검찰 수사결과 불법 분식회계 혐의로 사법처리됐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손길승 회장마저 불법 정치자금를 정치권에 건넨 혐의로 수사선상에 올라 SK그룹 자체가 최대 위기를 맞은 것이다.


SKㆍLG 등 대선때 친 한나라 행보

LG도 괴소문에 시달린 케이스의 하나다. 대선 전 정ㆍ재계에서는 LG의 지나친 ‘친창’(親昌ㆍ친 이회창) 행보를 두고 말들이 많았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LG그룹내에서도 노골적인 한나라당 편들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고 한다.

LG그룹의 구본무 회장과 한나라당 핵심 인사인 H씨가 학교 동문으로 평소부터 가깝게 지냈고, 그것이 LG가 한나라당에 기운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그럴싸한 분석까지 겯들여졌다.

불행하게도 이 소문은 검찰이 구본무 회장을 비자금 조성과 관련, 출국금지 조치한 가운데 지난 18일 LG홈쇼핑에 대해 전격적으로 압수수색을 실시하면서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날 리 없다’는 진리를 새삼 확인시켜주고 있다.

중견기업 H도 곧 소문의 희생자가 될 전망이다. H기업은 오너가 이회창 후보와 동문으로 2000년 총선 때부터 한나라당의 유력한 자금줄이라는 소문이 적지 않았다. H기업은 대선 때 이 후보의 최대 외곽조직인 부국팀에 자금을 제공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아 노무현 후보가 당선될 경우 기업이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는 얘기가 끊임없이 나돌았다.

H기업은 얼마전 검찰측에 회계장부를 입수당했고, 조만간 사정 대상에 오를 것이라는 얘기가 검찰주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측근 비리, 일부 사실로 드러나

노 대통령 측근들에 대한 소문도 예외는 아니다. 대선 직후 부산지역에서는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에 대한 괴소문이 끊이질 않았다. 노 대통령 측근으로 ‘실세’임을 과시하며 지역 기업을 중심으로 거액을 거뒀고, 기업들이 청와대에 항의를 했다는 게 소문의 내용이다.

최씨에 대한 소문은 그가 SK로부터 11억원을 받은 사실이 확인되고, 최근엔 부산 지역의 기업들을 최씨에게 소개한 김성철 부산상공회의소 회장을 검찰이 사법처리를 할 것으로 알려져 ‘소문이 무섭다’는 사실을 실증시키고 있다.

이 뿐만 아니다. 노 대통령의 또다른 측근인 이광재 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과 썬앤문 문모 대표와의 ‘부적절한 관계’, 청주 키스나이트클럽 소유주 이원호씨와 노 대통령에 대한 소문도 이미 일부는 사실로 확인됐고 최근 특검법의 대상에 오르면서 수사 결과가 주목되고 있다.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은 노 대통령의 막후 후원자로 소문만 무성했는데, 최근 최씨와 노 대통령 운전기사였던 선봉술(전 장수천 대표)씨와의 자금 거래가 수사 선상에 오르면서 노 대통령과의 긴밀한 관계가 수면위로 드러나기도 했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3-11-25 17:52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