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총선 딜레마] 盧, 4월의 혁명을 꿈꾸는가


총선의 해…측근 비리로 도덕성에 치명타, 정국 주도권 상실
창 승부수 후폭풍 등 악재 산적, 총선 통한 '정치지형 바꾸기' 난망

2004년 정치권의 최대 화두는 ‘4월 총선’이다. 노무현 대통령(열린우리당)이 취임 첫해의 국정 혼란을 극복하고 원만하게 국정을 운영할 수 있을 것인지, 한나라당이 제1당을 유지해 차기 대권싸움에서 우위에 설 수 있을지, 분당된 민주당과 ‘꼬마 정당’ 자민련이 생명력을 더욱 높여나갈 것인지 여부가 4월15일에 치러질 17대 총선에 달려 있다.

총선에 대한 노 대통령의 집착도 유별나다. 그는 대선 직후인 12월23일 민주당 연찬회에서 “다음 총선에서 우리가 이기지 못하면 ‘반통령(半統領)’이다. 정권을 잡은 것이 아니고 ‘반권(半權)’을 잡는 것이다. 꼭 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취임도 하지 않은 대통령 당선자가 1년 이상 남아 있는 총선 승리를 주문한 것은 이례적이다.

뒤집어 말하면 4월 총선은 기존의 정치 판도를 또 한번 뒤바꾸는 계기가 될 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웠다는 12월19일, 노 대통령은 ‘노사모’가 대선 승리 1주년을 맞아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주최한 ‘리멤버 1219’에 참석해 “대선은 끝나지 않았다. 아직 승복하지 않은 자들이 있다”며 총선에서의 ‘시민혁명’을 강조했다. 그는 “1급수 정치인이 없다면, 2급수를 찾아서 키워야 한다. 그러나 4급수에는 목욕도 하지 못한다”며 기존 정치권을 ‘4급수’로 몰아세운 뒤 ‘대대적인 총선 물갈이’론을 폈다.

노 대통령은 취임 초만해도 정권을 재창출한 젊은 파워를 바탕으로 4월 총선에 대해 어느 정도 자신감에 차 있었다. 청와대와 민주당에는 낙관론이, 한나라당에는 위기론이 팽배했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취임 첫해 성적표가 낙제점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정권을 재창출한 정당이 사상 처음으로 분당됐고, 대선자금 수사를 통해 한나라당을 압박하려던 전략은 거꾸로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12ㆍ19 대선 1주년을 맞아 MBC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노 대통령의 국정수행능력은 33.9%로 여전히 30%대 지지에 머물고, 총선에 나설 열린우리당 지지도는 16.1%로 민주당(19.6%), 한나라당(16.2%)에 이어 사실상 꼴찌였다. 한마디로 노 대통령의 총선 전선에 빨간 불이 켜진 것이다.


측근 비리에 발목 잡히다

4월 총선 전략과 관련, 노 대통령을 가장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노 정권의 최대 정치적 기반인 ‘도덕성’이 치명상을 입은 것이다. 노 대통령측은 도덕성의 상대적 우위를 바탕으로 대선자금 정국에서 한나라당을 ‘부패 정당’으로 낙인 찍고 총선을 승리로 이끈다는 복안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노 대통령의 측근 인사들이 잇따라 비리 혐의로 사법처리 되면서 이마저 어렵게 됐다. 노 대통령의 왼팔격인 안희정씨(열린우리당 충남창당 공동위원장)를 비롯해 오랜 후원자인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 ‘영원한 집사’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부산상고 후배인 문병욱 썬앤문 회장은 이미 구속됐고 오른팔격인 이광재 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과 오랜 친구이자 동업자인 선봉술 전 장수천 대표 등은 검찰 사정의 표적이 돼 노 대통령을 궁지로 몰고 있는 것이다.

‘리멤버 1219’ 행사에 노 대통령과 함께 참석한 청와대의 한 인사는 “(대통령이) 안희정씨가 구속된 것을 특히 안타깝게 여겼다”며 “‘개혁’이란 아젠다로 (야당을) 부패정당, 수구정당으로 몰아가면 원내 제1당도 가능하다고 봤는데 이젠 어떻게 (총선에) 대처해야 할 지 혼란스럽다”고 털어놓았다.

조만간 본격적으로 시작될 대통령 측근 비리 특검은 노 대통령이 새해에 극복해야 할 딜레마다. 노 대통령은 최도술 전 비서관 비리 문제가 불거졌을 때 ‘재신임’ 카드 (2003년 10월10일)를 꺼내 정국 반전을 이끌어낸 뒤 “모두 다 벗자”며 대선자금 수사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러나 검찰의 사정 칼날은 당초 목적인 한나라당 뿐만 아니라 노 대통령의 측근을 치는 부메랑으로 되돌아 왔고, 특검은 이제 노 대통령까지 노리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노 대통령의 대선자금 350억~400억원 발언을 빌미로 대선자금 특검까지 강력히 요구하고 나섰다.

만약 ‘노무현 캠프’에 대한 검찰 수사나 특검에서 새로운 불법자금이나 대선자금 규모가 드러나 노 대통령이 상처를 입을 경우 여권의 총선 승리는 물건너 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빛 바랜 장밋빛 전망

이와 관련, 청와대의 한 386 관계자는 “나라종금 사건(처리)을 보면서 검찰이 우리편인 줄 알았다. 굿모닝시티 사건 때도 그래서 전면수사를 해도 불리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렇게 되면 부패정당에 등을 돌린 범 개혁세력표가 집결하고, 민주당과의 관계는 (우리당으로)표쏠림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봐 총선을 낙관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 사정이 대통령 측근들에게 미치면서 ‘장밋빛 전망’은 막을 내렸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했다. “특검에서 더 이상의 새로운 것이 나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는 대목에서 청와대의 고민을 엿볼 수 있다.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의 깜짝 승부수도 새해 들어 노 대통령에게 운신의 폭을 죄는 복병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 전 총재는 대선 불법자금과 관련,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뒤 검찰에 자진출두함으로써 노 대통령을 진흙탕 싸움으로 끌고 갔다.

이 전 총재의 기자회견 전후에 노 대통령이 쏟아낸 ‘10분의 1이 넘으면 정계은퇴’, ‘실제로 그렇게 되면 책임을 지겠다’. ‘(합법 불법) 다 해서 350억~400억’ 등의 발언들은 총선 전쟁의 막이 오르면 여권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이 전 총재의 승부수는 영남권을 비롯한 한나라당표를 결집시켜 노 대통령의 총선 전략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열린우리당 후보로 부산에서 총선을 준비 중인 한 친노 인사는 “대선에서 두번이나 패배한 이 전 총재를 비난하던 사람들도 그가 ‘감옥에 가겠다’고 나서자 ‘다시 한번 한나라당을 밀자’는 얘기를 한다”며 난감해 했다.

대구에서 출마하는 한나라당의 한 전국구 의원도 “이 전 총재의 행동은 TK 민심을 흔들었다”며 “노무현 당이 발 붙이기는 힘들 것”이라고 자신했다.

또 검찰이 이 전 총재를 사법처리할 경우 ‘공정성’ 문제가 부각되고, 그 후폭풍은 ‘살아있는 권력’에게까지 미칠 수밖에 없다. 노 정권이 넘어야 할 또 하나의 산이다.


노풍 재점화냐? 역풍이냐?

총선 제1당 확보의 전진기지로 삼은 영남권에서 ‘남동풍(PK에서 선전→ TK→수도권에 영향을 미친다는 전략)’이 주춤한 것도 총선 승리를 위해 노 대통령이 풀어야 할 과제다. PK지역은 노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인 부산 인맥의 산실일 뿐만 아니라 한나라당의 아성이기도 해 PK에서의 승리가 갖는 상징적인 의미는 크다.

때문에 ‘노풍’ 재연을 위해 PK지역을 총괄하던 조성래 변호사(열린우리당 부산시 창당준비위원장)를 김정길 전 행자부 장관으로 교체하고 경쟁력이 떨어지는 386 인물 대신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 신상우 민주평통부의장 등 중진들의 출마를 독려하는가 하면, 이해성 전 청와대 홍보수석, 박재호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을 차출하는 등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에는 야당과 여론의 비난을 무릅쓰면서까지 김혁규 경남지사를 열린우리당에 입당시켰다.

그러나 노 대통령 측근들이 잇따라 구속되면서 ‘노풍’이 재연할 조짐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게다가 특검 정국이 총선 직전까지 진행되면 ‘노풍’은커녕 역풍이 몰아칠 우려도 없지 않다.

등을 돌린 ‘호남 민심’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 하는 것도 노 대통령의 총선 전략에서 중요한 대목이다. 호남 민심은 호남지역뿐 만 아니라 총선 승패를 좌우할 수도권의 향배를 결정할 주요 변수여서 노 대통령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열린우리당은 총선에 임박해 호남표가 우리당쪽으로 ‘표쏠림’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낙관하고 있지만 아직 그런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민주당이 조순형 대표체제 출범과 함께 DJ를 비롯해 호남 표심 단속에 나서면서 호남 민심을 잡는데 성공한 듯하다. 여권 일각에서 민주당과의 합당 내지 총선 공조를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여권과 민주당에서 아직 힘을 얻지 못하고 있어 호남표가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으로 양분될 경우 한나라당만 어부지리를 얻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여권 일각에서는 선거 막판까지 ‘표쏠림’ 현상이 나타나지 않을 경우 한쪽 당에 표를 몰아주는 DJP식 공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4개월여의 시간이 남아 있어 일단 호남 민심을 잡는데 주력할 전망이다.

물론 노 대통령측에서는 총선에서 제1당이 여의치 않을 경우 제2당이 된 뒤 정계개편을 통해 다수당이 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 대통령의 원만한 국정 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인위적인 정계개편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열린우리당이 제1당이 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제1당 가능성은 앞으로 남은 4개월여 동안 노 정권의 도덕적 차별화와 동남풍 전략, 호남민심 잡기에 성공할 경우다. 그러나 선거 전문가들은 노 대통령이 총선 딜레마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기는 극히 어려울 것으로 전망한다. 그래서 제1당에 근접한 제2당이 유력한 시나리오로 꼽히고 있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3-12-23 16:14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