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찾기 위한 '베팅의 시기'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자기 성찰'에 투자해야

[40대의 도전] 40대여! 튈 준비가 되었는가?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찾기 위한 '베팅의 시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자기 성찰'에 투자해야


정회승 상무(왼쪽), 임재홍 사장

40대의 도전은 자기 성찰을 위한 ‘쉼’에서 출발한다.

전반전을 뛴 축구 선수들에게만 중간 휴식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정신 없이 뛰어야 했던 20ㆍ30대를 넘어 선 40대는 인생의 나머지 절반을 어떻게 살 것인지 차분히 생각해야 할 시점이다. 전반전에 골을 집어 넣었지만, 후반전에 그 골을 지키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것은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성공이란 목표를 위해 전반전에 열심히 땀 흘렸다면 후반전은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한 새로운 여정이 돼야 한다.

직장인들은 늘 떠날 때를 생각하면서 직장 생활을 해야 한다. 올 연말에는, 아니 5년, 10년 뒤에는 과연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고, 어떤 상태에 도달해 있을 지, 그 같은 목표들을 항상 머리에 담고 있어야 한다. 자신의 역량이 무엇인지, 장점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갖고 있는 지 끊임없이 점검해야 한다. 회사는 해마다 중장기 목표를 세우고 내년도 사업 계획을 확정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개인은 단기 계획은 커녕, 중장기 계획조차 없이 하루하루 살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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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젠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다.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고, 가고 싶은 데는 어디며, 하루 하루 즐거운 마음으로 살고 있는가를. 여생을 바칠 의미를 발견하는 하프 타임이라면 고달픈 직장 생활을, 은퇴라는 것을, 나이 드는 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으리라.

    "40대엔 안정보다는 열정으로, 성취감에 베팅하라."

    ▲ 정회승 BMW파이낸셜서비스 상무

    그는 최근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자전거 페달을 밟아 심장이 터질 듯 거친 숨을 몰아 쉬며 산길을 오르는 스포츠 MTB에 푹 빠졌다. 심한 상처와 부상도 각오해야 하는 MTB를 하면서 그의 무릎은 항상 찰과상 투성이다.

    "울퉁불퉁한 산길을 자전거 페달만으로 오른 다음 정상에서 맛보는 성취감은 말 할 수 없는 희열 자체입니다. 해냈다는 자신만이 느끼는 만족감이죠." 40대 출발한 새로운 일에서도 마찬가지다. 남들이 걷지 않은 길, 아니 길조차 없어 처음부터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일에 대한 성취감이 삶의 열정으로 다가선다.

    성공과 부(富)의 상징물인 명품 BMW. TV 연속극에서 성공한 30~40대 주인공이 몰고 나오는 승용차라면 영락없이 BMW다. 자동차에 욕심 있는 30ㆍ40대라면 BMW 오너 드라이버가 되는 게 꿈일 수 있다. 정회승(42) BMW파이낸셜 서비스 코리아㈜ 상무도 그랬다. 20대 초반 우연한 기회에 BMW528e를 몰아 본 그는 스피드와 박진감에 매료돼 BMW오너의 꿈을 키워 왔던 터다. 그리고 그 꿈은 40대에 이르러 현실로 다가왔다.

    10년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외국계 은행인 씨티은행에서 정신 없이 뛰어온 그는 소비자 금융 여신 담당에서 머무르지 않고 기업 금융 분야까지 자신의 영역을 넓혔다. IMF 체제는 그의 커리어 개발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줬다. 국가 부도 위기에 몰린 국내 금융계에 외국 은행들의 입김이 커지면서 대외 업무가 늘고 전체 조직을 총괄하는 새로운 직책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던 것.

    그는 씨티은행 한국지점 대표 비서실장이란 중책을 맡아 은행 대변인으로 활동했다. 외환 위기에서 맏뭇퓔庸?외투 법인 영업 담당 수석부장을 맡은 그는 다양한 분야를 두루 돌며 금융 경영인으로의 경력을 다져 갔다. 입사 10년차를 넘어 가던 당시만 해도 자신의 인생에 새로운 길이 열릴 것이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 은행 내에서 인정을 받고 안정된 생활을 누릴리는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39세가 되던 2001년 그는 자신의 진로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우선 자기 앞에 닥쳐 있는 장애물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했다. 그 문제점이 과연 1~2년 안에 풀릴 수 있을 것인지를 고민했다. 나아가 앞으로 5년 후면 과연 어떤 문제가 다시 자신에게 닥칠 지를 생각했다. 이대로 현재 생활에 안주하며 살아 간다면 은행에서 버틸 수 있는 기간은 고작 5~6년 정도.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한다 해도 5년 안에는 자신이 목표해 온 위치에 도달하기 힘들다는 회의감에 빠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 나날이 흥분하지 못하는 순간 순간이 숨통을 옥죄며 다가 오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선택할 수 있는 현실적인 조건들이 무엇일까, 그는 곰곰 생각했다. 창업을 떠올려 보았다. 그러나 사업 아이템 선정은 일단 제쳐 두고서라도 자본 조달이 용이치 않는 상황에서, 그것은 위험천만이라는 사실을 금새 깨달았다. 그 다음으로는 지금처럼 은행에서 자신의 위치를 견고히 쌓으며 목표하는 자리에 오른다는 것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예측불가의 상황인지라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그렇다 해서 다른 은행이나 보험사 등으로 자리를 옮기는 카드 역시 시답잖았다. 무언가 획기적인 인생의 전환기를 만들고 싶었다.

    “That’s my job!(바로 내가 할 일이다).” 듣는 순간 전율을 느꼈다. 문은 두드리는 사람에게만 열리는 법이다. 행운은 또 고민하는 사람에게만 찾아 오는 손님이다.

    40세가 되던 어느 봄날, 외국계 자동차 회사인 BMW가 서울에 금융법인을 설립할 계획이라는 소문을 듣게 됐다. 자동차에 대해, 그것도 꿈에 그리던 BMW에 대한 자신의 열정과 꿈, 여기에 그 동안 은행에서 갈고 닦은 금융사업의 노하우를 연계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최고의 조합이 될 것이라는 자신감과 함께. 그러나 국내에서는 처음 도입된 자동차 산업 전문 금융기관 BMW파이낸셜서비스로 직장을 옮기겠다는 결단을 내렸을 때, 주변의 만류는 만만치 않았다. 국내에서 아직 생소한 분야인 데다, 처음부터 모든 일을 새롭게 만들어 가야 하는 고된 길을 왜 가려 하느냐는 염려가 빗발쳤다.

    그는 마흔의 새로운 도전쪽을 택했다. 잘 짜여진 조직의 일원으로 남기를 거부했다. 조직 구성부터 상품 개발과 고객 창출까지, 새롭게 시작하는 일에 뛰어 들고 싶었다. 처음 만난 고객에게 자신이 만든 상품을 설명하고 그 고객이 자신의 제안에 만족해 주변 사람들까지 BMW의 고객으로 끌어들였을 때, 그는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자동차와 관련된 금융 서비스 상품을 개발하고, BMW를 선택한 고객에 적합한 맞춤 금융 상품을 제안하는 일이 그의 주된 업무. 한 번 맺어진 고객을 계속 관리하면서 그 고객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는 금융 설계를 대행해 주는 것이다. 정 상무가 창출해낸 금융 상품을 통해 BMW를 구입한 고객과 현금으로 구입한 고객의 비율은 BMW 국내 총판매(5320대)의 약 8대 2에 달한다. 서울 강남을 돌아 다니는 BMW 10대 중 7대 이상이 금융 서비스를 받아 이뤄진 거래다. 자동차는 개인의 라이프 스타일에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진 도구인 만큼, 앞으로의 생활은 자동차와 즐기는 시간이 더 늘어날 것이 분명했다.

    정 상무는 “중고차까지 금융 서비스를 받아 믿고 거래할 수 있는 자동차 종합금융 서비스 체제가 5년안이면 정상 궤도에 오를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것이 그의 성취감이다. 안정된 직장이 아니라 매일 매일 스스로를 열정으로 몰아가는 새로움에 대한 도전이 그에게는 인생의 새로운 목표인 셈이다.

    "40대엔 정말로 좋아하는 것에 푹 빠져야 한다. 그래야 경쟁력도 최대한 끌어 올릴 수 있다."

    ▲ 서울 강남에 재즈 붐을 일으킨 클럽 '원스 인 어 블루문'의 임재홍 사장.

    2000년 대우건설 홍보부장을 끝으로 19년간의 샐러리맨 생활을 접고 창업, 숨은 '끼'를 발산하고 있다. "40대에 접어 들면 자신이 해야 하는 일보다는, 자신이 진짜로 좋아하는 일을 찾아 인생의 승부를 걸어야 한다"며. 창업 철학은 하나다.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이 가장 경쟁력 있는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있도록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그만큼 운도 따라야 한다.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재즈 밴드를 만들어 세계로 진출할 수 있게 하는 프로모터의 꿈을 키우고 있다.

    비오는 날이면 더욱 가슴을 파고 드는 선율, 재즈. 고독과 애수를 담고 자신 특유의 내면 세계를 만들어 가는 재즈에 푹 빠진 나머지 가산마저 다 날려도 여한이 없다는 것이 재즈의 마력일까. 서울 강남의 명소로 자리 잡은 재즈 클럽 ‘원스 인 어 블루문’의 임재홍(46) 사장. 올백으로 손질해 빗어 넘긴 머리에 언제나 깔끔한 모습의 그는 40대에 자신의 꿈을 찾아 전직에 성공한, ‘끼’ 넘치는 엔터테인먼트 사업가다.

    연세대 건축학과 재학 시절 학교 브라스밴드의 색소폰 주자로 활약한 그는 1982년 대우건설에 입사해 19년간을 기술 현장과 영업, 홍보 담당자로 활동한 ‘영원한 대우맨’ 이었다. 고교 시절, 재즈에 매료됐던 그는 이브 몽탕의 ‘고엽’과 사라 본의 ‘미스티’ 등을 애창곡으로 연주하며 자신의 재즈 세계를 키워갔다. 대우에 근무하면서도 그는 한국재즈모임(KJC)의 회원으로 각종 재즈 공연을 관람하며, 자신의 재즈 클럽을 운영하자는 평생의 꿈을 가져왔다.

    IMF환란기, 꿈은 재지(jazzy)한 음색의 전율로 다가왔다. 재즈라는 음악이 국내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던 1997년 겨울, 영업난에 허덕이는 한 재즈 클럽이 새 주인을 찾고 있었다. 그가 재즈에 푹 빠져 있다는 사실을 잘 알던 터라, 어느 날 인수 의사를 타진해 온 것이었다. 불혹의 나이로 막 접어든 임 사장으론 결코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그는 평생 꿈 꿔온 재즈 클럽 운영을 누구보다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이미 준비된 마음 자세로 살아 왔기 때문이었다.

    외국을 나갈 때마다 그 지역의 명소인 재즈 클럽들을 섭렵하다시피 했던 그로서는 자신이 클럽을 직접 운영하면 어떻게 꾸려갈지를 내심 하나부터 열까지 세밀히 손꼽아 놓고 있었다. “사실 갑작스러운 제안이었지만 어느날 갑자기 ‘그래 해 보자’고 결정한 것은 아닙니다. 학창 시절부터 가져온 꿈이 이제 현실로 다가왔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더라구요.” 샐러리맨 17년 동안 해야 할 일 만하고 살았는데 이젠 스스로가 하고픈 일을 할 때가 왔다는 느낌을 억누를 수 없었다.

    때마침 외환 위기를 맞아 경기는 최악이었다. 주변에서는 “재즈 클럽이라는 생소한 아이템을 가지고 과연 유지비라도 챙길 정도로 장사가 되겠냐”는 우려의 목소리만 높았다. 하지만 임 사장은 오히려 ‘어려울 때 투자하라’는 말처럼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IMF체제로 사회 패러다임을 바꿨다.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화두가 유행처럼 번지는 시점에 외국인들이 편하게 찾을 수 있는 국내를 대표하는 재즈 클럽을 만들겠다는 의욕으로 넘쳐 났다. 살고 있던 아파트를 팔고 부모님을 설득해 사업 자금을 마련한 그는 클럽 운영 자체가 강남 한 복판 청담동에 위치한, 까다로운 ‘물장사’라는 점을 감안했다. 재즈를 좋아하는 30ㆍ40대 변호사와 의사 등 전문직과 외국 기업 종사자들을 목표로 최고의 VIP마케팅을 펼쳤다.

    국내 호텔들의 구조 조정 덕(?)에 뛰어난 요리사와 웨이터 등 특급 호텔 인력을 강남의 재즈 클럽으로 몰고 와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했다. 국내의 재즈붐을 일으키기 위해 각종 재즈 이벤트를 개최하는 한편 마케팅 요원을 3명이나 고용했다. 각종 외국기업 관련 행사에는 클럽 홍보를 위하여 재즈 밴드의 공연 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했다. 마켓 리더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첫해의 손익 계산서는 당연히 마이너스였다. 하지만 해를 넘기면서 투자의 성과는 눈에 보이게 달라졌다. 매상이 급증하면서 1999년 10월, 월 매출 1억원을 찍었고 명성이 높아 지면서 국내 재즈를 대표하는 곳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당시 서울시 거주 외국인이 선정한 관광명소 30선에 클럽의 이름이 오를 정도였다.

    “인생 전체를 볼 때 돈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 옳은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40대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시작하면서 인생을 새롭게 살아가는 눈을 뜰 수 있었고, ??사회ㆍ문화적으로 풍부한 인맥을 다질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값진 수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40대의 도전은 값진 것입니다.” 임 사장의 중간 결산이다.

    장학만기자


    입력시간 : 2004-01-13 17:12


    장학만기자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