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와 커뮤니티의 적절한 균형유지에 신경캐주얼 슬롯게임 개발중, 올 하반기쯤 코스닥 등록 계획도

'대장' 김유식, "난 사이버 권력의 조정자"
놀이터와 커뮤니티의 적절한 균형유지에 신경
캐주얼 슬롯게임 개발중, 올 하반기쯤 코스닥 등록 계획도


김유식(33)씨는 ㈜디지탈인사이드 대표의 직함을 갖고 있는 야심찬 사업가다. 디시인사이드를 운영하는 디지탈인사이드는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하는 이들에게 아무런 대가도 없이 방대한 정보를 무료로 제공해주는 동시에 공동 구매나 광고 등을 통해 수익을 올리는 영리 법인이기도 하다. 1999년 문을 열어 4년째인 2002년 6,000만원의 흑자로 전환한 뒤 지난해에는 3억원으로 흑자 폭을 키웠다. 올 하반기, 늦어도 내년에는 회사를 코스닥 시장에 등록하겠다고 벼르는 등 본격적으로 사업 확장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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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들은 그를 '유식 대장'이라고 부른다. 디시가 거대한 놀이터이고 보니 사장이라는 직함보다는 대장이라는 애칭이 훨씬 어울리는 듯하다. 털털한 옷차림이나 말투, 그리고 생김새에서도 동네 골목대장의 이미지가 더 강하게 느껴진다. "대장이요? 맞아요. 모두들 절 대장이라고 부르죠." 껄껄 웃으며 맞장구를 치는 것을 보니 그도 그런 애칭에 꽤 흡족한 모양이다. 단순히 기분 좋음을 넘어서 거기엔 나름의 철학도 깔려있는 듯하다. 아마도 그것이 다른 인터넷 업체 사장들과 그를 차별화하는 요소인가 싶다.

    유머 작가에서 장사꾼까지

    김 사장은 ‘PC통신 1세대’로 케텔(하이텔의 옛 이름)의 유머 작가 출신. PC통신이 급부상하던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은 통신 유머가 각광을 받던 무렵이었다. “대학(전산과)에 다니던 89년부터 유머를 게재하기 시작했는데 반응이 폭발적이더군요. 제 자랑 같지만 당시 통신 유머계를 평정했죠. 하지만 지금과 다른 것은 인터넷 공간에서는 한 사이트에서 인기를 끌면 외부로도 급속히 전파를 타지만 PC통신 시절에는 그렇지 못했다는 겁니다.” 통신에 게재했던 글들을 모아 책으로도 여러 번 출간했지만 번번이 쓴 맛을 봐야 했다. “유머 작가 생활을 청산하고 장사를 해서 돈을 벌어야 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의 장사 수완은 대단했다. 용산전자상가에서 컴퓨터나 주변기기 등의 물건을 떼 PC통신을 통해 파는 일이었다. PC통신 광고를 통해 ‘가격 파괴’라는 조어를 자신이 처음 만들어 냈다는 게 김 사장의 주장(?). 자본금 한 푼 들이지 않고 40% 가량의 마진을 올렸으니 가만히 앉아 있으면 돈이 쌓이는 수준이었다. 1년 조금 넘는 기간에 벌어들인 돈은 5,000만원을 넘었다.

    93년에는 일본에 국제경영학을 공부하러 유학을 갔지만 거기서도 공부는 뒷전이었고 장사꾼의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번에는 일본의 컴퓨터 관련 제품들을 국내에 파는 일이었다. 밀려드는 주문에 하루에 2시간씩 두 번을 쪼개 자면서 일에 매달린 결과 1년에 1억원 이상의 순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거칠 것이 없는 자유분방한 성격이다 보니 필화(筆禍)도 여러 차례 겪었다. 일본에서 돌아와 다시 하이텔 횡설수설 동호회 활동을 하던 96년 여름. 북한의 잠수함 침투 사건에 대해 “조작 냄새가 난다”는 글을 올렸다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잠시 구속되기도 했고, 그 해 11월에는 조사를 받을 당시 옥인동 대공분실에서 겪은 이야기를 8편에 걸쳐 연재를 했다가 안기부원들의 집요한 미행을 견디다 못해 결국 영국으로 도피를 해야 했다.

    커뮤니티 왕국을 꿈꿨다

    디카 정보 사이트 사장쯤 되면 사진 기술이 어지간한 전문가를 뺨 치는 수준은 될 거라고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대단한 오산이다. 그의 말에 따르자면 “1년에 3~4번 사진기를 잡으면 많은 정도”일 뿐이다. 이는 왜 디시가 디카 정보 사이트로 출발해 사이버 문화 생산의 주체로까지 성장할 수 있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단서이기도 하다.

    ㈜디지탈인사이드라는 회사를 차린 것은 99년 7월. 당초 자신의 전문성을 한껏 살릴 수 있는 노트북컴퓨터 정보 사이트만을 차릴 작정이었지만 구색을 맞추기 위해 또 하나 생각해낸 것이 바로 디지털카메라였다. “디카가 목적이 아니었고 사이트 운영을 위해 디카를 선택한 것 뿐이죠. 일본 유학 등의 경험을 통해 디카를 미리 접해 본 경험이 있어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기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습니다.” 노트북인사이드(www.nbinside.com)와 함께 디시인사이드는 그렇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주목한 것은 디카와 노트북을 매개로 한 커뮤니티였다. 다른 사이트들과 달리 로그인이나 개인 신상 정보 입력 없이 바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문턱을 아예 없앤 것도 김 사장의 전략이었다. “우리가 백화점에 가서 물건을 구경할 때 신분을 밝히는 것은 아니잖아요. 물건을 구입할 때는 신용카드 등을 통해 신상 정보를 요구할 수 있더라도 단순히 구경을 할 때는 익명성이 보장돼야 한다고 판단한 겁니다.” 김 사장은 그렇게 네티즌들이 자유롭게 의사 소통을 하고 놀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을 만들어 줬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커뮤니티가 자생력을 갖고 디시의 힘을 배가시킬 것이라는 것도 철저히 계산된 것이었다.

    김유식 신화는 시작됐다

    탄탄대로만은 아니었다. 문턱을 없앤 것이 방문자 수를 급속히 늘리기는 했지만 숱한 악성 리플과 맹목적인 공격성 탓에 따가운 비난의 시선이 김 사장에게 쏠리기도 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한 이용자가 이름은 ‘한미모’인데 실제로는 뚱뚱하고 못 생긴 사람이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는 내용의 글을 올리자 다른 이용자들이 너도나도 ‘방법하자(혼내주자)’며 들고 일어나 그 사이트를 마비시키더군요. 비난을 받을 만도 하지요. 그래도 지금은 자정 능력이 많이 생긴 것 같아 참 다행입니다.”

    김 사장은 그에게 주어진 책임을 잘 알고 있다. 이제는 사장조차도 감당하기 힘든 권력이 돼 버린 탓에 자칫 방향이 잘못됐을 경우 사회적으로도 미치는 파장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직접 개입하면서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자유로운 분위기를 중시하는 공간에서 누가 나서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고 지시한다고 해서 이를 따르지는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탓이다. 방향성이 옳다고 생각되는 글이나 사진이 있으면 기분 좋은 리플을 달아주고, 가장 보기 좋은 게시판이나 갤러리에 올려줘 간접적으로 의중을 전달하는 게 전부다. 독도 논쟁, 이라크 파병 등 민감한 사회 이슈에 대해서 김 사장은 늘 이렇게 방향을 잡아 왔다. “너무 놀이터로서의 역할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지적에 충분히 공감하고 있어요. 그래서 항상 놀이터와 또 유익한 커뮤니티로서의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총선을 앞두고 요즘 그에게는 ‘러브콜’이 쏟아진다. 얼마 전 민주당에서 독도 우표 붙이기 운동을 함께 하자는 제의가 들어왔고, 미디어다음에서는 총선 관련 합성물을 공동 게재하자고 요청해 왔다. 디시의 힘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다.

    그는 여기서 멈출 태세가 아니다. 3~4월께 캐주얼 슬롯 게임을 자체 개발해 디시 등을 통해 선을 보일 예정이고, 인터넷 트렌드를 소개하는 오프라인 주간지 출간도 준비 중이다. 또 폐인들과

    자들이 자유롭게 들릴 수 있는 오프라인 카페도 연내에 개설할 계획이란다. 어쩌면 한 줄 한 줄 ‘김유식 신화’를 써나가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이영태 기자


    입력시간 : 2004-01-27 15:14


    이영태 기자 yt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