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을 뒤집는 통쾌함·익명의 자유로움에 막강 정보력까지'그들만의 놀이터'에서 파급력 엄청난 문화주체로

[디시인사이드] 사이버 권력, 파격의 문화유희에 열광
상식을 뒤집는 통쾌함·익명의 자유로움에 막강 정보력까지
'그들만의 놀이터'에서 파급력 엄청난 문화주체로


거대한 놀이터다. 매일 50만명의 놀이꾼들이 찾아 든다. 하루 10시간도 좋고, 20시간도 좋다. 밥 먹는 시간조차 아까워 하루 세 끼를 모두 라면으로 때우고 놀이에 매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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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낯선 사람 앞이라고 서먹해 하거나 체면을 차릴 이유는 없다. 얼굴의 가면을 들춰낼 이도 없고, 통성명을 요구하는 이도 없으니까. ‘슈퍼맨’으로, 또 ‘홍길동’으로 종횡무진 외피를 바꿔가며 맘껏 욕망을 발산하면 그 뿐이다.

    때론 그 자유분방한 욕망의 발산이 새로운 놀이의 규칙으로 자리를 잡으며 하나의 문화로 발전해 가기도 한다. 어차피 익명의 공간이니 누가 처음 이를 생산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놀이터 밖의 세계처럼 ‘원조’를 운운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단지 이에 흠뻑 심취하고, 또 중독될 뿐이다.

    그 놀이터는 2년여전부터 사이버 문화의 권력으로 부상한 인터넷 사이트 디시인사이드(www.dcinside.comㆍ이하 디시). ‘그들만의 놀이터’로 냉소해 버리기엔 그 파급력이 범상치 않아 보인다.

    디시인사이드의 태동

    디지털 카메라 정보 교환을 목적으로 한 디시 사이트 개설 초기인 2001년 7월, 갤러리에 지극히 평범한 사진 하나가 올라 왔다. 누군가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먹다 만 쿠키’ 사진이었다. 헌데 제목이 재미있다. ‘오늘 산 중저가형 모델 싸게 팝니다’라니. 벼룩시장의 중고품 판매 광고를 우스꽝스럽게 패러디한 것이었다. 부연 설명은 더욱 걸작이다. “정품이구요. 110(원) 좀 넘게 샀는데 100(원) 정도 받고 팔고 싶습니다. 오늘 산 거구 정말 아껴 사용했기 때문에 비싼 가격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진에 보시는 것처럼 물건은 깨끗하고요. (모서리에 약간의 흠집이 있는데 사용엔 별 지장 없습니다.) 필요 하시다면 두 번 밖에 사용 안 한 종이컵(시가 50 상당)도 같이 드립니다.”

    이용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한달 묵은 새우깡 100g이랑 교환 안되나?” “남대문에서 새 것도 90(원)이면 삽니다. 더 내리셔야 할 듯.” “카드 결재 되나요?” “직접 가서 제품 확인하고 구입하고 싶은데, 교통비 빼 주실 수 있나요?”

    1줄, 기껏해야 2줄 정도의 짧은 리플(댓글)이 순식간에 1만건을 돌파했고 조회수는 10만건을 넘어섰다. 이들이 즐기고 있는 것은 사진 그 자체라기 보다는 분명 언어 유희였다. 덕분에 먹다 만 쿠키는 최고의 히트 상품이 됐다.

    디시가 그들만의 놀이 공간이 아니라 문화적 파급력을 가진 주체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이듬해 월드컵 열기가 전국을 휩쓸던 무렵이었다. 아

    . 한 이용자가 사진의 댓글에 쓴 이 용어는 ‘먹다 만 쿠기’의 위력을 능가하며 급속히 확산됐다. 좋아도 아
    , 싫어도 아
    , 또 웃길 때도 아
    …. 때론 형용사가 되기도 하고, 어느 때는 의성어나 감탄사가 되기도 하는 이 용어를 이들은 열광적으로 사용했다. 디시 뿐 아니라 인터넷 공간은 온통 아
    천지였다. 기?세대들은 국적 불명의 아
    의 의미를 분석하려는 ‘아
    담론’까지 들먹였지만 지금까지도 정답은 도출되지 못한 듯하다. 그저 이를 사용하는 이들끼리는 선문답을 하듯 이심전심으로 상대방이 사용한 의미를 이해하고 있다는 것 뿐.

    디시가 창조해 낸 문화 상품들

    디시에 스스로를 ‘폐인’ 혹은 ‘

    자’로 자처하는 마니아들이 급증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디시에 열광하는 폐인을 넘어 ‘득
    (득도)’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 ‘수
    (수행)’을 하는 이들을 일컫는다는 표현이 ‘
    자’였다.

    그들의 언어는 갈수록 난해해졌다. 과장이 극대화한 것이지만, 이를 위해 라면선식(하루 세끼 라면으로만 끼니를 때움)을 하고 주침야활(아침에 자고 밤에 활동)을 한다고 했다. 조선시대를 연상시키는 하오체는 이들만의 문법이었고, ‘방법하다’(혼내주다) ‘쌔우다’(하다) 등의 신조어는 이제 젊은이들의 일상 생활 속에서도 적잖이 접할 수 있는 용어가 됐다.

    ‘폐인’이나 ‘

    자’들이 생산해내는 디시의 히트 상품은 하나 하나가 곧 사이버 공간 전체의 문화가 됐다. 벽 사이를 뚫고 고개를 내밀고 있는 강아지 ‘개벽이’와 대나무를 부여 잡고 매달려 있는 강아지 ‘개죽이’는 네티즌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생명력을 갖고 수많은 합성 사진의 주인공이 됐다. 또 양손에 딸기를 부여 잡고 야릇한 표정을 짓고 있는 ‘딸녀’를 비롯해 ‘광녀’ ‘핥녀’ ‘소피티아’ 등은 뭇 남성 네티즌들을 열광시켰다. “니들이 게 맛을 알아”로 젊은층을 사로잡은 탤런트 신구, 영화 취화선의 장승업은 각종 합성 패러디를 통해 그들의 영웅으로 거듭났다. 서러움을 달래는 이전 솔로들과 달리 커플들을 ‘방법(방해)’하기 위한 새로운 의미의 ‘솔로부대’를 시작으로 ‘커플부대’ ‘직각부대’ 등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곳에서는 댓글 위주의 말 또한 원래의 문법적 의미를 벗어나 하나의 부호가 됐다. ‘방법하다’ ‘쌔우다’ ‘자방하다’ 등 신조어 뿐 아니라 “고구마 장사가 힘들어요” “100원만 주세요” 등 문법적으로 맞는 말조차도 그 자체의 의미가 아닌 하나의 부호처럼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앞선 글이나 사진들이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는 의미로 통용되는 이런 표현들은 해석을 시도한다는 것조차 의미가 없어 보일 정도다. 그래서 계몽주의적 잣대를 들이 대면 이들의 이미지 혹은 부호의 유희는 무의미할 뿐 아니라 몹시 불쾌하고, 심지어 짜증스럽기까지 하다.

    사회에 퍼붓는 독설

    그렇다고 이들이 항상 가벼움만을 추구하고, 무의미한 유희에만 몰두하는 것은 아니다. 디지털 카메라 등 하드웨어에 대한 정보나 사진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는 등 사이트 본래의 목적을 따르는 데도 타의 추씬?불허한다. 한 이용자의 평가처럼 “유희적인 요소는 부가적인 것일 뿐 막강한 정보력이 디시가 갖고 있는 힘의 근원”일 수 있는 셈이다.

    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디시는 다른 어느 사이트보다 막강한 힘을 과시한다. 반미 리본 시위와 촛불 시위를 이끈 네티즌 공론의 장이 디시였고,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의 반칙왕 안톤 오노에 대해 무차별 폭격을 가한 진원지 역시 디시였다. 그리고 2004년, 디시 폐인과

    자들은 준이치로 고이즈미 총리의 독도 망언과 맞물려 한국을 비하한 일본의 ‘K국의 방식’이라는 사이트와 전면전을 벌이며 이른바 ‘사이버 임진왜란’을 주도했다. 시사 갤러리 등에는 단순한 유희를 넘어 총선을 앞두고 정치나 사회 문제를 따끔하게 풍자하는 패러디들이 줄을 잇고 있다. “단 1주일만 ‘디시질’(디시 활동)을 하지 않으면 금세 소외되고 만다” “어떤 사안이 터졌을 때 여론의 동향을 알기 위해서는 디시를 찾아야 한다” 는 등의 평가에는 조금의 과장도 없는 듯하다.

    하지만 권력이 부여되면 늘 남용의 위험이 뒤따르는 법. 특히 회원 가입 절차 없이 누구나 활동할 수 있는 디시의 성격상 숱한 부작용이 노출되기도 했다. 초상권 침해 사건이 끊이지 않았고, 각종 악성 리플이 난무했다. 감정이 앞서면서 별다른 이유도 없이 타 사이트를 봉쇄하는 공격성도 보였다. 초기엔 20~30대 전문가 집단이 주류를 이뤘던 것과 달리 점점 10대들의 가세가 늘어난 것도 권력 남용의 한 원인이었다.

    디시 문화 권력의 근원은?

    그렇다면 디시의 이같은 문화 생산 능력, 그리고 문화 주도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글보다 더욱 강력한 기록 매체로서의 디지털 카메라의 힘에 주목한다. 일상 생활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들을 순간적으로 기록해 언제든 인터넷 상에 올릴 수 있고, 포토샵 프로그램을 몇 번만 돌리면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합성 사진이 탄생한다. 게다가 디카는 패러디를 생산해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매체다.

    문화평론가 김동식씨는 이를 두고 “먀샬 맥루한이 명명했던 ‘구텐베르크 갤럭시(은하계)’에 ‘이미지 스피어(영역)’가 급속히 파고들면서 장난을 치고 있는 양상”이라고 평한다. 문자 중심의 시대(구텐베르크 갤럭시)에서 벗어나 이미지로서 글쓰기가 가능해진 시대가 오면서 네티즌들이 이미지의 유희성을 마음껏 즐기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유희의 본질이 무언가 새롭게 창출하는데 있기 때문에 문화 생성 주체로서 작용할 수 있었다는 해석이다.

    ‘하이텔 등 PC통신 → 딴지일보 → 디시인사이드'로 연결되는 사이버 문화 권력의 이동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문화평론가 김종휘씨의 해석은 이렇다. “PC통신의 문화를 주도한 것이 이른바 사이버 논객과 디지털 매니아 두 계층이었다. 이후 인터넷의 확산으로 사이버 논객들은 딴지일보 등에 흡수됐지만 디지털 매니아는 결집할 곳을 잃고 뿔뿔이 흩어졌다. 결국 디시인사이드는 디지털 매니아의 계승임과 동시에 딴지일보 등 여러 담론 커뮤니티에서 이탈한 논객들이 결합한 커뮤니티가 된 것이다.” 그 파급력이 처음에는 단순히 많은 이용자들이 모일 수 잇는 동력으로, 이후에는 하나의 문화 권력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놀이 규칙과 자정 능력에도 해답이 있을 듯 싶다. 댓글 순위 놀이, 복사 하기 등 무가치한 놀이 방식도 적지 않기는 하지만, 기호로서 거의 모든 것을 표현하는 리플 달기, 글이나 사진에 대한 평가 하기와 따라 하기 등은 누군가 생성해 낸 콘텐츠를 급속히 확산시키는데 일조를 했다. 디시 손민수 과장은 “좋으면 좋다고 감정 표현을 하고 싫은 것은 분명히 싫다고 하는 것이 디시 폐인이나

    자들의 속성”이라며 “무언가 마음에 드는 글이나 사진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따라 하면서 문화 생성의 주체가 된 것 같다”고 해석했다. 여전히 권력 남용의 우려가 걷힌 것은 아니지만 조금씩 자정 능력도 생겨나고 있다. 초상권 침해가 문제된 사진이 갤러리에 올라오면
    자들이 “버럭” 등의 댓글을 달며 더 이상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알듯말듯한 질서를 바탕으로 디시는 폐인들의 놀이터인 동시에 사이버 공간을 주도하는 문화 권력체로서 지금 이 순간에도 갈수록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이영태기자


    입력시간 : 2004-01-27 15:35


    이영태기자 yt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