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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의 힘] 강제규 감독, 충무로 키드를 만나다
"한국영화 르네상스는 국민적 사랑이 만든 쾌거"
'태극기 휘날리며'는 세계시장 진출의 돌파구


한국 영화 ' 르네상스' 시대. 2월 5일 개봉한 ' 태극기 휘날리며' 는 국내 영화 부흥의 정점에 힘찬 깃발을 꽂을 태세다. '실미도'의 감흥이 사라지기도 전에 ' 태극기…'가 진정한 스펙터클 전쟁 영화로 한국 영화 팬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 넣고 있다. 개봉 첫날 32만 4,000여명의 관객을 불러 모으며, 연일 신기록으로 한국 영화사를 새롭게 쓰고 있는 '태극기…'의 강제규(42)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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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태극기…’의 440개 개봉관 중 하나인 서울 삼성동 ‘ 메가박스’ 근처의 한 카페에서 2월 7일 한국 영화의 열혈 팬인 충무로 키드들과 만나 영화 속에서 못다 한 얘기 꽃을 피웠다. 이날 만남의 주인공들은 이휘현(29), 김기훈(24), 최상희(28)씨. 이씨는 영화 감독 인물론인 ‘상상력과의 전쟁’(인물과 사상 펴냄)이란 책을 펴낸 영화 비평가이고, 김씨는 영화 ‘국화꽃 향기’(이정우 감독)의 연출부 막내로 1년간 현장 활동한 경험이 있는 영화 감독 지망생. 또 최씨는 비디오전문점 ‘영화마을’ 창신점을 운영하면서 인터넷상의 다음 까페에서 ‘영화처럼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www.daum.net/cinetown75)를 이끌어가는 영화 마니아다. 이들은 “ 강 감독과의 만남은 영광”이라면서 긴장했지만, ‘ 충무로 키드’를 향한 강 감독의 다정다감한 배려 덕에 낯을 익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강 감독이 “우리 영화 팬들에게 정말 고맙다”는 말로 먼저 대화의 포문을 열었다.

    ★ 재미있는 영화로 관객 외면 극복





    △ 강 감독: 공 들여 만든 영화에 성원을 보내 주는 관객들에게 정말 감사 드립니다. 감독이 관객을 믿는 마음과 관객들의 신뢰가 하나로 만났다는 점이 무엇보다 기쁩니다. ‘ 관객이 얼마가 들었다’는 식의 기록 갱신 여부는 그 다음의 문제이고요.

    △ 이휘현: 특히 흥행면에 신경을 많이 쓰신 것 같은데요?

    △ 강 감독: 그건 저의 영화 출발점과 관련이 깊습니다. 대학교 4년이었던 1984년도 였습니다. ‘ 좋은 영화’에 대한 꿈을 안고 나왔는데 현실은 너무도 달랐습니다. 당시 한국 영화는 ‘ 예술’도 아니고 ‘ 오락’도 아닌 작품들 일색이었습니다. 관객들의 외면은 당연한 것이었죠. 그래서 전 다른 걸 제쳐두고 ‘ 흥미진진한’ 영화를 만드는 데 전념하기로 작정했습니다. 정말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어 관객들의 철저한 외면을 극복해 보고 싶었습니다.

    △ 김기훈: ‘ 태극기…’를 보면서 장대한 스케일과 엄청난 인력 동원 등에 놀랐습니다. 이처럼 사상 최고의 블록버스터를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 강 감독: 초창기 주변에서 “ 왜 그렇게 무리수를 두냐”는 지적을 많이 받았습니다. “ 대한민국 배우 중에 강 감독이 제의하는데 ‘ NO’라고 할 사람이 누가 있냐? 제작비도 한 40~50억 수준이면 적당한데…”라며 뜯어 말리는 분위기였죠. 사실 저 또한 부담이 상당했습니다. 촬영이 제대로 안 나온 날은 ‘ 내가 괜히 너무 거창하게 시작한 거 아닌가’ 하고 수없이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한국 영화가 아시아 및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는 ‘ 돌파구’ 기능을 하고 싶었습니다.

    △ 이휘현: ‘ 실미도’와 비교하는 얘기도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 강 감독: 그건 자연스럽다고 봅니다. 두 영화는 공통점이 많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나왔고, 두 영화에 모두 군인들이 등장하고, 우리의 역사를 다뤘고, 대작이라는 점 등이 말입니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을 쫓아간 ‘ 실미도’와는 달리, ‘ 태극기…’는 6.25라는 배경이 있지만 ‘ 픽션’이고 전쟁 영화입니다.

    △ 김기훈: ‘ 태극기 휘날리며’란 제목에선 민족주의적 냄새가 강합니다.

    △ 강 감독: ‘ 전쟁 영화’를 한다는 것에도 반대가 심했는데, 제목을 정할 때는 특히 극심했습니다. 98%가 너무 우익적이라고 염려했는데 제 의지대로 밀고 나갔습니다. ‘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국가주의적인 제목은 역설입니다. 마치 한 병사가 고지를 점령하고 태극기를 꽂는, ‘ 의도된 선정성’의 이미지를 강조한 것입니다. 이데올로기가 뭔지도 모르고 전쟁터에 내몰린 우리에겐 곱씹을 만 한 여운을 남긴다고 봅니다.

    △ 이휘현: 앞으로 ‘태극기…’ 를 신호로, 관객의 눈높이가 상당히 올라갈 것 같습니다.

    ★ 새로운 가치창조는 영화인의 의무

    한국영화 열혈팬들과 만난 강제규 감독.
    왼쪽부터 이휘현, 강감독, 김기훈,
    최상희씨. /사진=한승진 기자



    △ 강 감독: 얼마 전 대작을 만들고 있는 한 동료 감독으로부터 그런 비슷한 얘길 들었습니다. “ 우린 어떡하라고 그렇게 눈높이를 올려 놓냐”고 농담을 하더군요. 그러나 시대가 바뀔수록 새로운 가치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게 창작을 하는 사람들의 임무이자 숙명이라고 생각합니다.

    △ 김기훈: 최근 관객의 취향도 많이 바뀐 것 같습니다. 어둡고 딱딱한 ‘ 실미도’나 ‘ 태극기…’에 관객들이 몰리는 것이나, ‘올드보이’의 잔혹성에 솟아 오르는 환호를 보면 말이죠.

    △ 강 감독: 중요한 지적입니다. 문화는 관객이나 아티스트, 어느 한쪽의 노력만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함께 호흡하며 노력해야 비로소 괄목할 발전을 이뤄낼 것입니다. 이제 우리 관객은 좋은 영화라면 장르에 관계없이 얼마든지 보러 갈 준비가 돼 있습니다.

    △ 최상희: 한국 영화계가 르네상스를 맞았다는 말씀인가요?

    △ 강 감독: 네, 그렇습니다. 20년 동안 한국 영화계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르네상스가 분명하다고 봅니다. 근래 관객 점유율이나 스크린 수 등에서 괄목할 성장을 보이는 것은 고무적입니다. 60년대 전성기가 있었지만, 그 당시는 영화 외에 다른 오락거리가 없던 시절이라 요즘과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장르와의 치열한 경쟁 속에 이뤄낸 성과라 더 값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 영화계에 우수한 인력이 대거 투입됐고, ‘우리 것’에 대한 국민적 사랑이 어우러져 빚어낸 결과로 봅니다.

    △ 최상희: 르네상스의 ‘ 거품’ 혹은 흥행작을 중심으로 해 한 쪽으로 쏠리는 경향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습니다.

    △ 강 감독: 앞으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자기 개성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 쉬리’ 이후엔 폐단이 많았습니다. 너도 나도 ‘ 대작’을 만들려다 큰 실패를 맛 봤습니다. 남이 잘 된다고 덩달아서 치열한 고민 없이 뛰어드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반대로 이정향 감독의 ‘ 집으로’의 경우는 좋은 성공 사례를 남겼습니다. 스타가 나오지 않고 예산이 적었음에도 갈채를 받았잖아요. 흥행 흐름에 쏠려 가지 않고, 중심을 잡는다면 틀림없이 관객의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 김기훈: ‘ 쉬리’ 이후 오랜 만에 작품을 선보였는데, 다음 작품 계획이 궁금합니다.

    △ 강 감독: ‘ 태극기…’는 ‘ 쉬리’ 이후 5년 만에 다시 메가폰을 잡은 작품입니다. 그간 감독과 제작 일을 병행해 와 열정이 분산됐습니다. 최근 명필름과 기업 결합한 것도 감독 일에만 주력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미 ‘ 태극기…’ 시나리오를 쓰기 전에 준비해 둔 작품이 두 편 있습니다. 이전 작품들과는 색다른 장르와 소재입니다. 준비된 작품이 있는 만큼, 빠른 시간 안에 다시 새 작품으로 관객들과 만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개봉 후, 문화ㆍ사회ㆍ정치계 등을 불문하고 범사회적으로 몰려 드는 관심에 강 감독은 사실 제대로 숨 돌릴 틈도 없다. 그 같은 상황을 쪼개 1시간여 동안 펼쳐 졌던 인터뷰 직후, 그는 대담자들마다 사인을 해 주며 못다 한 말을 대신했다.



    배현정기자 hjbae@hk.co.kr


    입력시간 : 2004-02-10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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