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르네상스는 국민적 사랑이 만든 쾌거"'태극기 휘날리며'는 세계시장 진출의 돌파구
[한국영화의 힘] 강제규 감독, 충무로 키드를 만나다 "한국영화 르네상스는 국민적 사랑이 만든 쾌거" '태극기 휘날리며'는 세계시장 진출의 돌파구
★ 재미있는 영화로 관객 외면 극복
△ 강 감독: 공 들여 만든 영화에 성원을 보내 주는 관객들에게 정말 감사 드립니다. 감독이 관객을 믿는 마음과 관객들의 신뢰가 하나로 만났다는 점이 무엇보다 기쁩니다. ‘ 관객이 얼마가 들었다’는 식의 기록 갱신 여부는 그 다음의 문제이고요. △ 이휘현: 특히 흥행면에 신경을 많이 쓰신 것 같은데요? △ 강 감독: 그건 저의 영화 출발점과 관련이 깊습니다. 대학교 4년이었던 1984년도 였습니다. ‘ 좋은 영화’에 대한 꿈을 안고 나왔는데 현실은 너무도 달랐습니다. 당시 한국 영화는 ‘ 예술’도 아니고 ‘ 오락’도 아닌 작품들 일색이었습니다. 관객들의 외면은 당연한 것이었죠. 그래서 전 다른 걸 제쳐두고 ‘ 흥미진진한’ 영화를 만드는 데 전념하기로 작정했습니다. 정말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어 관객들의 철저한 외면을 극복해 보고 싶었습니다. △ 김기훈: ‘ 태극기…’를 보면서 장대한 스케일과 엄청난 인력 동원 등에 놀랐습니다. 이처럼 사상 최고의 블록버스터를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 강 감독: 초창기 주변에서 “ 왜 그렇게 무리수를 두냐”는 지적을 많이 받았습니다. “ 대한민국 배우 중에 강 감독이 제의하는데 ‘ NO’라고 할 사람이 누가 있냐? 제작비도 한 40~50억 수준이면 적당한데…”라며 뜯어 말리는 분위기였죠. 사실 저 또한 부담이 상당했습니다. 촬영이 제대로 안 나온 날은 ‘ 내가 괜히 너무 거창하게 시작한 거 아닌가’ 하고 수없이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한국 영화가 아시아 및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는 ‘ 돌파구’ 기능을 하고 싶었습니다. △ 이휘현: ‘ 실미도’와 비교하는 얘기도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 강 감독: 그건 자연스럽다고 봅니다. 두 영화는 공통점이 많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나왔고, 두 영화에 모두 군인들이 등장하고, 우리의 역사를 다뤘고, 대작이라는 점 등이 말입니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을 쫓아간 ‘ 실미도’와는 달리, ‘ 태극기…’는 6.25라는 배경이 있지만 ‘ 픽션’이고 전쟁 영화입니다. △ 김기훈: ‘ 태극기 휘날리며’란 제목에선 민족주의적 냄새가 강합니다. △ 강 감독: ‘ 전쟁 영화’를 한다는 것에도 반대가 심했는데, 제목을 정할 때는 특히 극심했습니다. 98%가 너무 우익적이라고 염려했는데 제 의지대로 밀고 나갔습니다. ‘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국가주의적인 제목은 역설입니다. 마치 한 병사가 고지를 점령하고 태극기를 꽂는, ‘ 의도된 선정성’의 이미지를 강조한 것입니다. 이데올로기가 뭔지도 모르고 전쟁터에 내몰린 우리에겐 곱씹을 만 한 여운을 남긴다고 봅니다. △ 이휘현: 앞으로 ‘태극기…’ 를 신호로, 관객의 눈높이가 상당히 올라갈 것 같습니다. ★ 새로운 가치창조는 영화인의 의무
△ 강 감독: 얼마 전 대작을 만들고 있는 한 동료 감독으로부터 그런 비슷한 얘길 들었습니다. “ 우린 어떡하라고 그렇게 눈높이를 올려 놓냐”고 농담을 하더군요. 그러나 시대가 바뀔수록 새로운 가치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게 창작을 하는 사람들의 임무이자 숙명이라고 생각합니다. △ 김기훈: 최근 관객의 취향도 많이 바뀐 것 같습니다. 어둡고 딱딱한 ‘ 실미도’나 ‘ 태극기…’에 관객들이 몰리는 것이나, ‘올드보이’의 잔혹성에 솟아 오르는 환호를 보면 말이죠. △ 강 감독: 중요한 지적입니다. 문화는 관객이나 아티스트, 어느 한쪽의 노력만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함께 호흡하며 노력해야 비로소 괄목할 발전을 이뤄낼 것입니다. 이제 우리 관객은 좋은 영화라면 장르에 관계없이 얼마든지 보러 갈 준비가 돼 있습니다. △ 최상희: 한국 영화계가 르네상스를 맞았다는 말씀인가요? △ 강 감독: 네, 그렇습니다. 20년 동안 한국 영화계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르네상스가 분명하다고 봅니다. 근래 관객 점유율이나 스크린 수 등에서 괄목할 성장을 보이는 것은 고무적입니다. 60년대 전성기가 있었지만, 그 당시는 영화 외에 다른 오락거리가 없던 시절이라 요즘과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장르와의 치열한 경쟁 속에 이뤄낸 성과라 더 값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 영화계에 우수한 인력이 대거 투입됐고, ‘우리 것’에 대한 국민적 사랑이 어우러져 빚어낸 결과로 봅니다. △ 최상희: 르네상스의 ‘ 거품’ 혹은 흥행작을 중심으로 해 한 쪽으로 쏠리는 경향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습니다. △ 강 감독: 앞으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자기 개성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 쉬리’ 이후엔 폐단이 많았습니다. 너도 나도 ‘ 대작’을 만들려다 큰 실패를 맛 봤습니다. 남이 잘 된다고 덩달아서 치열한 고민 없이 뛰어드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반대로 이정향 감독의 ‘ 집으로’의 경우는 좋은 성공 사례를 남겼습니다. 스타가 나오지 않고 예산이 적었음에도 갈채를 받았잖아요. 흥행 흐름에 쏠려 가지 않고, 중심을 잡는다면 틀림없이 관객의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 김기훈: ‘ 쉬리’ 이후 오랜 만에 작품을 선보였는데, 다음 작품 계획이 궁금합니다. △ 강 감독: ‘ 태극기…’는 ‘ 쉬리’ 이후 5년 만에 다시 메가폰을 잡은 작품입니다. 그간 감독과 제작 일을 병행해 와 열정이 분산됐습니다. 최근 명필름과 기업 결합한 것도 감독 일에만 주력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미 ‘ 태극기…’ 시나리오를 쓰기 전에 준비해 둔 작품이 두 편 있습니다. 이전 작품들과는 색다른 장르와 소재입니다. 준비된 작품이 있는 만큼, 빠른 시간 안에 다시 새 작품으로 관객들과 만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개봉 후, 문화ㆍ사회ㆍ정치계 등을 불문하고 범사회적으로 몰려 드는 관심에 강 감독은 사실 제대로 숨 돌릴 틈도 없다. 그 같은 상황을 쪼개 1시간여 동안 펼쳐 졌던 인터뷰 직후, 그는 대담자들마다 사인을 해 주며 못다 한 말을 대신했다.
입력시간 : 2004-02-10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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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현정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