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 혹은 몰락의 줄타기아버지 후광 업고 무소불위의 숨은 권력자로 군림정권 말기 각종 비리연루혐의 드러나며 나락으로 떨어져

[대통령의 아들] 소통령에서 정치적 동지까지…
영광 혹은 몰락의 줄타기
아버지 후광 업고 무소불위의 숨은 권력자로 군림
정권 말기 각종 비리연루혐의 드러나며 나락으로 떨어져


‘아버지의 이름으로’

4ㆍ15 총선에 나서는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와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장남 홍일씨의 출사표다. 현철씨는 ‘부풍(父風)’을 등에 업고자 YS의 고향인 경남 거제에 출마했다. YS 또한 현철씨를 통해 은근히 ‘정치적 부활’을 꿈꾸고 있다. 김홍일 의원은 민주당을 탈당해 홀로서기를 시도했지만 DJ의 황색바람을 재현하기 위해 10여일 만에 복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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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아들’ 가운데서도 현철씨와 김 의원은 독특한 위치에 있다. 이들은 최근 ‘비자금 파문’에 휩싸여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들은 물론 역대 대통령 아들과도 뚜렷한 차이가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들만해도 아버지의 그림자에 가려 비중 낮은 ‘조연’에 머물렀지만 현철씨와 김 의원은 아버지와 정치적 운명을 함께 한 ‘동반자’였다. YS와 DJ가 1960년 이래 40년 이상 한국정치의 대명사가 돼온 ‘3김 정치’의 주역이었다는 점도 이들의 정치적 위상을 달리 만들었다.

△ 문민정부 쥐락펴락 하던 김현철

특히 현철씨는 1992년 대선에서 적어도 아버지인 YS에게는 승리의 일등 공신으로 여겨졌다대선 이후 국정 운영에도 깊이 관여, 말 그대로 YS 다음가는 ‘소통령(小統領)’이었다. 증권회사의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던 그가 정치에 첫발을 내디딘 것은 1987년 대선에서 중앙조사연구소라는 여론조사기관을 만들어 부친의 선거 캠프에 가세하면서 부터다. 이어 92년 대선 때 사조직을 총괄하는 사령탑을 맡아 자신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 문민정부를 관통하는 ‘소통령’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현철씨는 YS의 과도한 신뢰로 균형을 잃기 시작하면서 무너졌다. YS는 공식 라인에서 올라온 보고보다 현철씨의 보고를 더 신뢰했고, 이 때문에 주요 인사 문제가 그의 손을 거쳐서 확정됐다. 훗날 현철씨에게 비수가 됐던 YTN 인사청탁 관련 비디오테이프는 상징적인 예. 사정이 그렇다 보니 사람과 돈이 현철씨에게 몰렸다. 그러나 지나치면 탈이 나는 법, 메디슨 특혜 의혹, 한보 사건 등 갖가지 비리에 연루되면서 서서히 몰락하기 시작해, 한보게이트 청문회로 자신 뿐 아니라 YS 정권까지 무너뜨렸다.

97년 말 특가법 위반 혐의로 2년의 실형을 선고 받은 현철씨는 이듬해 보석으로 풀려난 뒤 잇따라 사면, 복권 등의 조치로 피선거권을 회복, 4ㆍ15 총선에 나섰다. 지난 11일에는 YS 생가에서 “아버님의 뒤를 이어 거제를 한국 정치의 새로운 중심으로 만들겠다”며 총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YS 또한 지난해부터 수 차례 거제를 방문, 아들의 ?돛禍??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YS 부자는 총선을 눈앞에 두고 터진 ‘안풍(安風ㆍ안기부자금 선거 유용 사건)’ 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지난 6일 YS의 ‘정치적 양자’인 한나라당 강삼재 의원이 15대 총선 당시 900억원대의 안기부 자금의 출처를 YS라고 밝힘에 따라 YS는 물론, 자칫 현철씨에게까지 안풍의 유탄이 날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안풍 자금의 성격을 놓고 대선잔금, 또는 불법 기업자금이라는 주장과 안기부자금이라는 주장이 팽팽構?맞서고 있는데 만일 전자로 밝혀질 경우 YS는 형사처벌까지 받을 가능성이 있어 총선에 나선 현철씨에게 치명타가 될 수 있다. 또한 안풍 자금이 안기부자금으로 밝혀지더라도 YS가 그러한 사실을 인식했다면 ‘국고 횡령’의 공범이 돼 YS 부자를 사면초가로 몰아갈 수 있다. 증인으로 채택된 YS가 오는 3월12일 법정에서 어떤 진술을 하느냐에 관심이 모아지는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다.

△ ‘3홍 게이트’로 법적ㆍ도덕적 심판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세 아들은 부자지간이면서도 정치적 동지로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장남 김홍일 의원은 80년 신군부 시절 DJ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아버지와 함께 갖은 고통을 당해왔고, 민주연합청년동지회(연청)를 결성해 아버지를 돕는 등 DJ가 대통령이 되도록 하는데 나름대로 일조를 한 동지이기도 하다. 차남 홍업씨 역시 일찍부터 아버지의 구속과 연금으로 만신창이가 된 집안을 형인 김홍일 의원과 잘 이끌어 왔고, 아버지의 수행비서로 정치에 입문하면서부터는 아버지의 의중을 가장 잘 아는 사람 중 한 사람으로 늘 DJ를 보좌해왔다. 97년 대선 때는 그가 설립한 ‘밝은 세상’을 주축으로 홍보를 맡아 아버지의 당선에 큰 공을 세웠다. 막내인 홍걸씨는 대선 전까지 미국 LA 인근에 거주하면서 7년 여 동안 유학생 신분으로 ‘조용히’ 지냈다. 97년 대선에서 승리, 아버지가 최고 권좌에 오르면서 세 아들의 운명도 달라졌다.

DJ는 97년 대선에서 당선된 직후 일산 자택에서, 그리고 대통령 취임을 사흘 앞둔 98년 2월22일 삼청동 임시공관으로 세 아들의 가족들까지 불러들여 YS 정권에서의 현철씨를 반면교사로 삼아 ‘조신한 처신’을 강조했다. 그러나 DJ의 세 아들들은 임기 2년 여를 남겨두고 각종 권력형 비리 사건에 연루되면서 아버지의 기대를 져버렸다. 세 아들이 DJ 정권 말 3대 게이트인 정현준ㆍ진승현ㆍ이용호 게이트에 연루되면서 이른바 ‘3홍 게이트’의 주인공으로 등장, 법적ㆍ도덕적 심판을 받은 것이다.

김홍일 의원은 ‘진승현 게이트’와 관련, 진씨 및 정성홍 전 국정원 경제과장으로부터 거액의 선거자금을 제공받은 의혹을 받았고, ‘이용호 게이트’와 관련해서는 핵심인물 중 한 사람으로 알려진 여운환과 접촉한 것이 문제가 됐다. 세 아들 중 유일하게 사법처리를 면한 김 의원은 최근 민주당에 복당한 뒤 지역구는 신인에게 물려주고 전국구로 나서 호남에서 ‘황색(DJ)바람’을 일으켜달라는 당의 ‘특명’을 받고 임시국회가 끝나는 3월 초부터 휠체어를 타고 호남 순회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홍업씨는 정현준ㆍ진승현ㆍ이용호 게이트에 모두 연루됐는데 기업체로부터 청탁 명목 등으로 금품을 받고 증여세를 포탈한 혐의 등으로 지난해 5월 징역 2년이 확정됐으나 그 해 9월 우울증 등의 증세로 형집행정지 결정으로 석방됐다. 막내인 홍걸씨는 ‘최규선 게이트’와 관련해 체육복표 사업자 선정 청탁 등의 대가로 기업에서 금품을 받은 혐의로 지난해 8월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미국의 집과 동교동 DJ 집을 오가고 있다.

△ 불행한 삶 산 2세 많아

그밖에 역대 대통령의 아들 중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수양 아들인 강석씨는 4ㆍ19혁명 직후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 윤보선ㆍ최규하 전 대통령의 아들은 ‘일반인’으로 평범한 삶을 택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인 지만씨는 한때 중소기업 경영인으로 자리를 잡았으나 여전히 마약 문제로 고생하고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인 재헌씨는 정치에 뜻을 갖고 총선 출마도 준비했지만 아버지가 비자금 문제로 투옥된 뒤 정치에서 손을 떼고 현재는 특별한 활동 없이 조용히 지내고 있다.

박종진기자


입력시간 : 2004-02-17 14:09


박종진기자 jjpark@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