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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 '왜곡'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오류 줄어드는 대신 의도된 '여론 형성' 위험성 상존

지난해 말 서울의 모 구청장은 총선 노이로제에 시달렸다. 민선 3기 구청장으로 마지막 임기인 데다 당선 가능성이 있다는 주위의 권유에 고민을 한 것이다. 그가 구민과의 약속과 금배지에 대한 도전을 놓고 고민하는 사이 한 측근이 은밀히 여론조사를 해봤다. 그 결과 인물에 대한 평가에서는 해당 지역구의 의원보다 앞선 것으로 나타났지만 총선에서는 당의 간판이 당락의 결정적인 요인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후보 경선을 하면 박빙, 또는 승산이 있다는 결과도 나왔지만 구민들이 남은 임기를 마쳐줄 것을 바란다는 것을 알고 출마를 접었다. 이 구청장은 3기 연임을 해오면서 주요 현안이 있을 때마다 여론조사를 통해 구민들의 뜻을 구정에 반영, 높은 인기를 누렸다. 2002년 지방선거 때는 지역구의 현역의원이 자신의 측근을 밀었으나 3선에 성공했다. ‘여론조사’에 근거한 구정 운영이 선거 승리에 큰 역할을 했다고 자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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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입안에 앞선 여론조사, 관행으로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지방자치 초기에는 자치단체장들이 주먹구구식으로 예산을 운영했지만 2기 지자체 때부터는 여론조사에 근거하는 경향이 높아졌다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미디어리서치 김지연 본부장은 “서울 수도권 뿐만 아니라 지방 지자체장들도 여론조사를 문의해 오는 경우가 많고, 정부 부처에서는 정책 입안에 앞서 여론조사를 하는 것이 관행처럼 돼있다”고 말했다. 지자체의 경우 차기 선거를 염두에 둔 민심 때문에, 정부 부처는 참여정부 들어 부쩍 비중에 높아진 고과 평가 때문에 여론조사에 의지하는 비중이 높아졌다고 그는 분석했다.



미디어리서치 전화여론조사 모습.
사진은 특정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최규성 차장



4ㆍ15 총선을 앞둔 요즈음 여론조사는 한나라 민주 열린우리당의 후보 공천이나 선거 운동에 ‘전가의 보도’처럼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중이다. 여론조사가 공천 혁명의 잣대로 선거판의 ‘살생부’역할을 맡다 보니 과거와 같은 낙점이나 로비에 의한 공천은 발을 붙이기 어려운 상황이다.

여론조사는 또 기업의 제품 생산과 리스크 최소화에도 ‘1등 공신’ 역할을 하고 있다. CJ의 제품담당 J이사는 “제품 출시에 앞서 리스크를 줄이는 차원에서 마케팅 여론조사를 하는 것은 필수”라면서 “경우에 따라서는 제품 자체가 킬(kill)되는 경우도 있다”고 조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여론조사의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전문가들은 ‘과학적 엄밀성’을 그 배경으로 든다. 코리아리서치의 김정혜 이사는 “여론조사는 과학”이라며 “민심을 뜻하는 추상적인 여론이 과학적인 절차를 거쳐 검증된 것이 ‘여론조사’”라고 정의했다. 여론조사의 ‘정확성(신뢰성, 객관성)’이 힘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여론조사의 정확성을 어느 정도 담보할 수 있느냐에 여론조사기관의 경쟁력과 생명력이 달려 있다. 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잘 나가던 리터러리 다이제스트 잡지가 선거예측을 잘못해 문을 닫고, 갤럽이 거꾸로 명성을 얻은 사실은 여론조사와 관련, 유명한 역사로 남아 있다. 갤럽도 그후 1948년 대통령 선거에서 예측이 빗나가 곤욕을 치렀다.

국내에서는 96년 15대 총선 때 3대 공중파 방송사가 공동으로 실시한 투표자 여론조사결과, 253개 선거구 중 무려 39군데에서 당락이 뒤바뀌고, 비록 당선자를 맞히기는 했지만 많은 선거구에서 표본 오차를 벗어나 세계 언론으로부터 ‘한 편의 코미디’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 같은 실패는 2000년 16대 총선에서 반복돼 세계적인 망신을 사고 말았다. 당시 여론조사는 제1당조차 맞히지 못했다.

이에 대해 코리아리서치 김 이사는 “여론조사의 핵심인 표본 추출(투표구 추출, 투표자 선정방식)과 조사 진행에서 오류를 범한 것이 치명적이었다”고 분석했다. 유권자 구성의 특성과 여론조사 방식의 엄정성을 간과한 것도 실수였다고 한다.

- 의도된 여론조사 위험성도

그러나 이제는 여론조사 경험 축적과 조사 기법의 발달로 ‘오류’를 범할 가능성은 상당히 줄어들었다. 오히려 여론조사용 설문서 작성시 특정한 결과가 나타나도록 유도하는 ‘의도된 여론’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미디어리서치의 김 본부장은 “표본 추출과 조사 방식에서 처음부터 주관(이해)이 개입된 여론조사는 여론을 왜곡할 가능성이 있다”며 “대선이나 이라크 파병과 같은 중요한 국론 결정에 있어 여론 왜곡으로 한쪽에 표가 쏠리는 ‘밴드웨건’(bandwagon) 효과가 나립?경우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 본부장은 4ㆍ15 총선의 여론조사에 대해서도 “총선을 앞두고 쏟아지는 각종 여론조사가 판세 분석에만 치중해 정당 또는 후보들의 정책이나 이슈 중심의 여론조사보다 ‘현재 어느 후보가 얼마나 앞서 있고, 후보들간의 격차는 어느 정도인가’ 하는 식의 경마식 형태로 전달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럴 경우 선거가 유권자들에게 이성적인 선택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마치 흥미 있는 게임이나 오락으로 인식시킬 위험이 높다고 그는 경고했다.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


입력시간 : 2004-02-24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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