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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 여론 조사가 세상을 움직인다
생활속에 파고든 여론조사
조사결과 맹신으로 정치·경제적 손실 입기도


전화를 아예 꺼 놓고 싶다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상품이나 투자에 대한 텔레마케팅 전화는 간단 없이 걸려 오는데, 야릇하고 자극적인 스팸 문자가 가세한다. 게다가 무턱대고 끊어버리기는 찜찜한 여론조사 전화까지, 전화기를 켜놓고는 한시도 편할 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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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중소 광고업체에 근무하는 김인준(41)씨는 업무상 전화를 꺼놓을 수 없는 노릇이라, 더욱 짜증스럽다. 지난 주말(21일)에는 모처럼 편안한 시간을 보내다 4ㆍ15 총선 후보에 관한 여론조사 전화를 받고 조사원과 말다툼까지 벌였다고 한다. 김씨는 “나도 마케팅 여론 조사를 하니까 이해를 해주고 싶지만, 주말 프라이버시까지 침해하는 통에 도저히 참기 어려웠다”고 했다.





반면에 가정 주부 이미옥(서울 상계동)씨는 지난해 11월 한 여론조사 기관의 전화 설문조사를 받은 뒤 여론조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 전화 면접원으로부터 수돗물 값에 대한 질문을 받고 무심코 ‘싸다’고 답변했는데, 나중에 건설교통부가 수돗물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를 수돗물 값 산정의 기초 자료로 삼는다는 기사를 보고는 “아차!”싶었다고 했다. 괜히 수돗물 값 인상의 빌미를 제공한 것이 아닌가 해서 말이다.

여론 조사에 대한 기억은 좋든 싫든 이제 누구에게나 한가지씩은 있다. 그만큼 여론 조사는 우리 생활에 밀접해 있다. 주위만 둘러 봐도 선거 관련 여론 조사, 인물 인기도 조사, 제품 선호도 조사, 시청률 조사 등 각종 여론 조사가 넘쳐 난다. 그야말로 여론 조사 홍수 시대다.

- 70%에 육박하는 피조사 경험

여론 조사 기관인 한국갤럽이 1989년 이래 4년마다 한번씩 조사하는 ‘여론 조사에 대한 여론 조사’ 결과는 여론 조사와 국민간의 달라진 관계를 엿볼 수 있다. 89년만 해도 여론조사 경험은 가구 방문 면접조사가 15.5%로 가장 높았고, 1회 이상 피조사 경험률은 29.7%에 그쳤다. 10년후인 2000년에는 여론 조사 경험률이 무려 67.8%에 이르렀고, 그 중 전화를 통한 여론 조사(전화 조사) 경험률이 56.1%로 가장 높았다. 정치적 문제(선거ㆍ투표)가 가장 많았고, 소비재ㆍ상품에 대한 조사가 그 뒤를 이었다. 정치적 문제에 관한 여론 조사는 89년에 27.7%였던 것이 2000년 4월에는 85.1%로 급격히 증가했다.

한국갤럽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까지 피조사 경험률이 70%를 상회한 것으로 나타났고, 전화 조사 경험률이 아직 높지만 모바?휴대폰)과 인터넷을 통한 경험률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얼짱’이나 ‘몸짱’ 등도 인터넷 시대에 여론 조사가 만들어 낸 신조어이자 문화현상이라는 지적이다. 여론 조사의 생활 밀착도가 빠른 속도로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 정치판서 막강 영향력 과시

이제 여론 조사의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일개인의 의견을 넘어선 지 오래다. 노무현 대통령도 따지고 보면 여론 조사가 만들어낸 대통령이나 다름없다.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는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 과정중의 여론 조사에서 승리함으로써 단일 후보가 됐고, 대세론을 구가하던 이회창 후보를 따돌렸다. 대선 막판까지 이회창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노무현 후보에 뒤지자 “이 후보에게는 숨어 있는 2%가 있다”는 유행어가 나돌았으나 투표 결과는 2%설을 보기 좋게 무력화시켰다. 여론 조사에 대한 국민 감정은 이미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50여일 앞으로 다가 온 4ㆍ15 총선에서도 여론 조사는 막강한 힘을 발휘할 전망이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등은 공천신청 후보가 팽팽히 대립할 경우, 여론 조사 결과도 경선 과정에 도입시킨다는 원칙을 세워두고 있기 때문이다. 여론 조사가 후보의 공천 생명을 좌우하는 것이다.

현재 최대 관심사로 떠오른 기업들의 불법 대선자금도 뒤집어 보면 여론 조사의 후유증이라는 시각이 유력하다. 기업들은 각 후보에 대선 자금을 제공한 근거는 여론 조사에서 나타난 이회창 후보의 대세론과, 이 후보와 민주당 노무현 후보 간의 지지율 변화 추이라는 사실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후보 단일화 이후 미디어리서치, 코리아리서치 등 유력한 여론 조사 전문기관들은 노 후보의 승리를 예상했지만, 일부 기관은 여전히 이 후보의 승리를 점쳤고, 기업들은 여론 조사 결과에 따라 소위 ‘정치 보험금’을 들었다. 최근 검찰의 사정 칼날에 만신창이가 된 기업들은 여론 조사를 맹종했거나, 반대로 무시祁?따른 심판을 받고 있는 셈이라는 원죄론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실정이다.

이쯤 되면 여론 조사는 국가 정책이나 기업의 경영 전략을 짜는 데 필요한 기초 자료를 제공한다는 교과서적 존재의의를 넘어선 지 이미 오래다. ‘약’ 아니면 ‘독’으로서 아예 국가의 장래를 좌지우지하는, 또 하나의 실체적 진실이 돼 버렸다.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


입력시간 : 2004-02-24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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