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당·한나라 득표율, 노무현-이회창 표차와 유사바람의 대결에 지역우위 분포도까지 총선은 "대선의 연장"

[총선 그 후] 대선 판박이 만든 40대의 힘
우리당·한나라 득표율, 노무현-이회창 표차와 유사
바람의 대결에 지역우위 분포도까지 총선은 "대선의 연장"


4ㆍ15 총선은 재작년 대선의 재판이었다. 뚜껑이 열린 총선 결과는 열린우리당이 152석으로 과반 1당으로 올라서고, 한나라당은 121석을 얻어 여당의 독주를 견제할 수 있는 야당 지위를 확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노동당은 무려 10석을 얻어 처음으로 원내진출에 성공하면서 제3세력으로 껑충 뛰었고, 제2, 제3 아당이던 민주당과 자민련은 당의 존립마저 위태롭게 됐다.

이번 총선은 외견상 16년만에 여대야소 정국이 부활하고, 민주노동당이라는 진보정당의 원내 진입, 지역정당인 민주당ㆍ자민련의 몰락이라는 특징을 드러냈지만 내부적으로는 한국의 정치지형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줬다. 그 와중에서도 총선의 다양한 구조와 정치적 메시지가 2002년 대선과 유사해 ‘대선의 재판(再版)’이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총선을 한달여 앞둔 지난 3월 초, 탄핵정국의 막이 오르기 전에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는 4ㆍ15 총선을 ‘친노(親盧) 대 반노(反盧)’구도로 몰아가자 대다수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고개를 저었다. 최 전 대표가 총선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김헌태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소장은 “탄핵과 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상관관계가 없다”며 “이번 총선은 여전히 지난 대선과 마찬가지로, ‘친노 대 반노’대결이 아닌 ‘친창(親昌) 대 반창(反昌)’세력의 대결이라는 성격을 띠고 있다”말했다. 한국 갤럽의 김덕구 상무도 “4ㆍ15 총선은 2002년 대선의 연장선에 있다”며 한나라당의 변신을 최대 변수로 꼽았다. 개혁 대 반개혁의 싸움이라는 것이다.

- 총선도 결국 친창대 반창 대결 구도

관련기사
우뚝 선 鄭, 몸 던진 盧, 게임은 이제부터
대선 판박이 만든 40대의 힘 √
총선이 끝난 곳, 또 다른 바람은 시작되고…
다윗의 승리, 가문의 영광, 운동권 동지들…

‘탄풍’(彈風, 탄핵 역풍) ‘박풍’(朴風, 박근혜 바람) ‘노풍’(老風, 노인폄하 발언 역풍) ‘추풍’(추風, 추미애 바람) 등 많은 ‘풍’들이 선거판을 이리저리 휘저었지만, 결과는 재작년 대선과 유사하게 나타났다. 투표용지에 담은 메시지도 비슷했다. 우선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득표율만 비교해 보더라도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와 이회창 후보의 득표율 격차와 닮았다. 비례대표 정당별 득표율 차이는 2.5%로 노무현-이회창 후보 간 표 차이인 2.5%와 꼭 같고, 지역구별 득표율은 4% 정도 차이가 나지만, 당선자를 낸 지역은 대선에서 두 후보가 승리를 거둔 지역과 거의 대동소이하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엔아이 코리아의 이흥철 대표는 “지난 대선에서 227개 선거구 중 이회창 후보가 승리한 곳은 98개인데, 이들 지역에서 한나라당 당선자가 많이 나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구조적인 측면에서도 '바람과 시간'의 전쟁도 판박이였다. 지난 대선에서 '노풍'(盧風, 노무현 바람)이 대선 구도를 결정했다면 이번 총선에서는 '탄풍'에 '박풍' '노풍' 등이 휘몰아쳤다. 바람이 휘몰아친 '시간'의 상징성도 유사하다. 대선 당시인 2002년 3월, 광주에서 발흥한 '노풍'은 기세 등등하다 6월 월드컵 이후 '정풍'(鄭風, 정몽준 바람)에 밀려 사라지는 듯하더니 그 해 11월 말 '후보단일화'로 재점화, 대선 승리로 이어졌다. '탄풍' 또한 3월 내내 광풍을 이루다 4월 들어 '박풍'과 '노풍'에 추동력이 떨어지면서 하향곡선을 그리다 막판 '정풍'(鄭風, 정동영 바람)덕에 살아났다. '노풍'이 '대통령 노무현'을 탄생시켰다면, '탄풍'은 노 대통령의 보호막 역할을 했다. 두 바람의 중심에 노 대통령이 있었다.

‘바람’이 전하는 메시지는 더 주목할만하다. 지난 대선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지역주의의 균열과 세대교체, 보혁 구도의 조짐은 이번 총선에서 더욱 뚜렷해졌다. 동서대결 지역주의 대립구도는 거의 변하지 않았지만, 내용적으로는 지역주의 완화현상이 두드러졌다. 영남에서 열린우리당 후보의 득표율이 30%를 넘고, 호남에 기반한 민주당이 광주와 전북에서 단 한 석을 얻지 못한 것이나, 자민련이 텃밭인 충청권에서 겨우 4석만을 건진 것은 의미심장하다.

- 영남권서 우리당 30% 득표는 고두적

특히 한나라당의 철옹성으로 여겨진 영남권에서 당선자(조경태-부산 사하을, 김맹곤-김해갑, 최철국-김해을)를 배출, 정치적 교두보를 마련한 것은 노 대통령에겐 고무적이다. 민병두 열린우리당 총선기획단장은 “이번 총선은 악마의 주술같은 지역주의의 족쇄를 극복하고 전국정당화의 첫발을 내디딘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대선 때 불기 시작한 ‘세대교체’ 바람도 여전했다. 오히려 광풍으로 변했다. 대선 당시 20~30대는 지역과 출신지를 탈피해 노 후보를 지지하는 ‘세대효과(cohort effect)’를 나타냈다. 이번 총선에서도 젊은 층의 적극적인 투표 참여로 박빙 승부가 펼쳐진 수도권에서 열린우리당 후보가 승리, 전체적으로 과반 확보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대선 때 세대간 대결에서 ‘지렛대’ 역할로 노 대통령의 승리에 일조했던 40대는 이번 총선에서도 열린우리당의 승리에 견인차 역할을 했다. 한국갤럽이 투표 당일인 15일 조사한 ‘17대 총선 정당별 득표율 예측’에 따르면 40대의 40.8%가 열린우리당에 투표, 한나라당(33.3%)보다 7.5%포인트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세대교체’ 흐름은 유권자에서 뿐만 아니라 당선자들에서도 나타나 30대 24명, 40대 102명, 50대 124명 등 50대 이하가 전체의 83.6%인 250명에 달했다.

지역구도 붕괴와 함께 나타난 노선 대결에는 민주노동당이 단번에 제3당으로 원내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뤄 향후 정국이 보혁구도의 이념과 정책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김 소장은 “지난 대선은 불완전한 권력교체였다”고 전체, “17대 총선을 통해 의회권력까지 교체됨으로써 ‘불완전한 대선’이 완성된 형태로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김 소장은 그러나 “총선 결과가 동서구도로 나뉘어 지역주의의 한계가 존재하고, 거대 여야인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아 이념과 노선에 따른 정책 정당의 완성이 아직 과제로 남아 있다”고 분석했다.

국민은 이번 총선에서 여당의 독주를 견제하면서 지역에 기대려는 보수정당에 매서운 채찍을 가했다. 총선에 나타난 민의를 17대 국회가 어떻게 수용할 지 국민은 냉정하게 지켜보고 있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4-04-21 16:23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