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사 새로 쓰며 원내 제3당으로 부상거대 여야 '민노당 배우기'에 나서
[민노당 쇼크] 정치권 개혁경쟁의 기폭제, 17대 국회 '태풍의 눈' 헌정사 새로 쓰며 원내 제3당으로 부상 거대 여야 '민노당 배우기'에 나서
- 기존 정치시스템과 관행에 도전장 민주노동당과 유사한 독일 녹색당의 경우 1983년 5.4%의 의석으로 원내에 진출했을 때 사회민주당을 포함한 기존 정당들은 독일 의회의 문화, 의정 활동의 방식, 새로운 의제의 등장이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도전을 받아야만 했고, 결국 의회 문화와 정당 시스템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왔다. 민주노동당은 ‘ 의원 특권 폐지 운동’ 등 이미 거대 여야에 녹색당식 도전장을 냈다. 의정 활동 방식과 새로운 의제와 관련해서도 선점 역량과 적극성을 보여 줘 기존 정당의 고착화된 정치 시스템을 흔들어 놓았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 민주노동당 배우기’에 나선 것은 그러한 방증들이다.
열린우리당 내에서 벌어진 당 정체성 논란과 봇물처럼 쏟아진 각종 정책ㆍ개혁입법들도 같은 맥락이다. 열린우리당은 지난 4월26~28일까지 강원도에서 가진 당선자 워크숍에서 진보 정당의 원내 진입에 따라 당 정체성을 놓고 소장ㆍ개혁파와 당권파ㆍ중진들 간에 격론을 벌였다. 그 결과 ‘ 개혁적 실용주의’ 노선이 채택됐지만 상당수 당선자들은 ‘ 이념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며 불만을 털어 놨다. 정가 일각에서는 열린우리당이 ‘ 잡탕 정당’ 이라 불릴 만큼 당선자들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다양해 총선전에 불거졌던 ‘분당론’이 재발할 경우 노선 투쟁이 격화되고 상황에 따라 분당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은 “ 민주노동당은 좌파정당으로, 지지기반 확충이나 정책을 놓고 열린우리당의 일정 세력에게 노선 투쟁의 동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 정체성 논쟁에 불 당겨
개혁입법과 관련, 열린우리당은 정당법, 친일반민족청산법, 의원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 법률 제한, 국회 복수상임위제 추진, 공무원 노조허용 등을 내놓은 상태다. 한나라당 역시 민주노동당의 진보적 이념과 정책정당화에 영향을 받고 있다. 한 핵심 당직자는 “ 한나라당은 ‘ 수적 우위’도 없고 ‘ 정권도 없는 야당’으로 ‘ 정책정당화’만이 살길”이라며 “ 민주노동당이 국회에 입성한 이상 당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소장파 핵심인 원희룡 의원은 “ 민노당의 국회 진출은 한나라당이 수구보수로 몰릴 수 있는 위기인 동시에 중도보수로 나설 기회도 된다”며 “ 과거의 대결 구도가 아닌 정책 정당으로 국민들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당내 보수 세력은 “ 왼쪽으로 가는 것은 우리당의 포퓰리즘을 따르는 행태”(송영선 당선자), “안보와 이념에서 열린우리당보다 우측에 있어야 지지도 받을 수 있다”(김용갑 의원) 등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결국 한나라당은 당선자 연찬회를 통해 북한에 유연한 태도를 보이는 등 ‘개혁적 중도보수’로 노선을 정했지만, 내부적 입장차는 여전하고 정책에 대한 시각차도 상당하다. 정치권에 ‘개혁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도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이 자극제가 됐다. 열린우리당은 ‘국회개혁추진단’을 비롯한 4개 분과를 거느린 ‘일하는 국회 준비위원회’를 구성해 집권여당으로서 ‘국가적 과제’들을 추진할 밑그림을 그리고 있고, 신설된 ‘새정치실천위원회’(위원장 신기남 의원)에서는 17대 국회에서 처리할 정치개혁 방안 전반을 다룰 예정이다. 한나라당은 정책위 산하에 ‘정책개발특별위원회와 공약점검단’을 구성하고 17대 국회를 정책국회, 민생 국회로 이끌어나가기 위한 정책 아젠다 발굴에 전념하고 있다. 또한 당의 3대 정책목표로 △경제살리기 △국민고통 최소화 △국민의 먹고 사는 문제 해결로 설정하고, 여의도연구소에 국고보조금의 30~40%를 투입해 정책 기능을 크게 높이기로 했다. - 정치적 이슈 선점으로 거대여야 압박 민주노동당도 양당의 움직임에 대응해 제 2의 ‘ 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를 구성, 정치자금법, 선거법, 정당법 등 정치관계 3법을 전면적으로 손질해 17대 국회 초반에 입법을 추진하고 정치개혁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 또한 총선 이후 ᇫ국회의원 특권 폐지 ᇫ이라크 파병 철회 ᇫ비정규직 노동자 차별 해소 등을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설정, 여야를 압박하는 등 정치적 이슈를 선점해 거대 여야의 틈바구니에서 당의 정치적 위상을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어떤 형태로든 민주노동당의 주장에 대해 입장을 밝혀야 할 처지인 만큼 여론에 따른 부담을 의식, 난감해 하고 있다. 진보정당의 원내 진출로 기존 정당 시스템에 변화가 불가피하지만 민주노동당에도 고민은 있다. 현실적으로 정치의 주도권이 거대 여야에 있는데다 10석의 소수 정당으로 양당의 협조 없이는 법률안 하나도 통과시키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1번으로 첫 금배지를 단 심상정 당선자와 85년 창립된 서울노동운동연합에서 함께 활동했던 한나라당 김문수 의원은 “ 민주노동당이 제도권으로 들어온 이상 좌파적 투쟁으로는 당의 정책이나 법안을 현실화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 현실 정치와의 접목여부 등 시험대에 민주노동당은 내부적으로 노동자, 농민, 서민 등 다양한 계층의 주체가 혼재, 이들을 통합ㆍ대변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독일 녹색당이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는 근본주의자와 기존 정당과의 공조를 강조한 현실주의자 간의 갈등으로 91년 총선에서 단 한석도 얻지 못한 경험은 민주노동당에게 타산지석이 될 수 있다. 열린우리당의 유시민 의원이 “ 민주노동당을 ‘ 진보’만으로 묶기엔 복잡한 부분이 있다”며 “ ‘정체성’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것도 잠재적 갈등을 적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4ㆍ15 총선은 진보정당이 43년만에 원내에 진출하는 신기원을 이뤘다. 민주노동당이 ‘ 장밋빛 미래’의 꿈을 이룰 지 아니면 ‘ 잿빛 추락’으로 사라질 지, 17대 국회는 냉정한 시험의 무대가 될 것이다.
입력시간 : 2004-05-04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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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