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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대가족] 한지붕 4대 "우린 찰떡가족"
가족 구성원간 이해와 배려로 행복도 4배, 알콩달콩 사랑을 키우는 대가족

“깻잎이 좋아! 깻잎이 좋아!” 네 살 배기 유치원생 하영(4ㆍ여)이는 식사 때마다 깻잎을 찾는다. 그럴 때마다 식탁에선 웃음이 터져 나온다. 그 조그마한 입에다 깻잎으로 싼 밥을 집어넣는 모양이 어찌나 귀여운지 할머니 정숙자(62)씨는 늘 보는 모습인데도 웃느라 배를 잡았다. 하영이는 갓난 애기 때부터 할머니 할아버지 슬하에서 자란 탓에 입맛이 딱 ‘토종’이다. 할머니는 그런 하영이가 예뻐서 언제나 냉장고 가득 깻잎을 채워놓는다.

서울 송파구 문정동 광현빌딩. 1층에 금은방과 피아노 학원이 들어서있는 상가 건물에 정숙자씨 4대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산다. 정씨는 남편(김광조ㆍ63), 친정 어머니(노부례ㆍ83)와 함께 건물 3층에 살고, 바로 위층에 둘째 아들 현웅(34)과 며느리(신원정ㆍ32), 손자(하민ㆍ7), 손녀 등 모두 7명이 모여 산다.

“손주들과 지내다 보니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겠어요. 요 두 녀석이 네 명 몫을 해요. 솔직히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즐겁죠. 옛날엔 다들 이렇게 살았잖아요.”

정씨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두 아이들은 거실을 휩쓸고 다니며 장난질이다. 멀쩡한 밥상도 뒤집어 놓고, 소파에 대롱대롱 매달려 할머니를 부르기도 한다. 그런 개구쟁이 두 아이들이 호랑이보다 무서워 하는 사람은 정씨의 남편 김광조씨. 할아버지의 “그만해, 하지 마” 한 마디면 아이들은 꼼짝 못한다. 바로 순한 양이 된다.




거실에 모인 4대 가족. 행복과 사랑이 넘친다. 임재범 기자



- 아이들에겐 살아있는 인성교육

“집안에 무서운 사람이 있어야 해요. 요즘 젊은 부부들은 아이를 적게 낳다 보니 너무 애지중지 버릇없게 길러서 안타까워요.” 김씨는 “아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 품 안에서 자라며 자연스럽게 화목한 가풍을 익히는 것이 살아 있는 인성 교육”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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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의 ‘한 지붕 대가족’ 생활은 28년 전 그녀가 친정 어머니 손씨를 모시고 살면서 시작됐다. 무남독녀인 정씨는 맏며느리지만, 이해심 많은 시어머니와 시누이ㆍ시동생들 덕에 친정어머니와 함께 살게 된 것. 그러는 사이 8년 전 장성한 아들이 결혼을 해 가정을 이루고, 다시 아이들이 태어나고…. 7살짜리 하민이는 벌써부터 “이 다음에 크면 아빠랑 살겠다”고 벼른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식구가 불어난 것이지만, 4대 가족이 한솥밥을 먹으며 지내는 단란한 모습은 주변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함께 살면 목소리가 높아질 것 같지만, 정씨네 가정에는 행복한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그 비결은 의외로 간단하다.

외형은 가부장적 대가족이지만, 실상은 옛날의 대가족이 아求? 학원 강사인 며느리 신원정씨가 일을 끝내고 들어오는 시간은 빨라야 밤 10시. 자연히 7인분 식사 준비와 설거지는 정씨의 몫으로 돌아온다. 대식구를 챙겨 먹이랴, 틈틈이 청소 하고 빨래 하랴, 아이들 돌보랴 정씨는 하루종일 분주하다. 그러나 “밤 늦게까지 일하면서 아침에는 아이들 학교와 유치원 보내느라 발을 동동 구르는 며느리에게 집안 일까지 떠넘길 수 없다”는 ‘신식’ 시어머니 정씨. 바로 4대 가족의 든든한 ‘안방 마님’으로 자리를 잡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시어머니는 운동이나 취미 생활 즐기러 다니면서 맞벌이하는 며느리에겐 ‘빨래해 놔’ ‘밥 해놔’ 이러면 누가 시부모와 살려고 하겠어요? 제가 모진 시집살이를 겪지 않아서인지 며느리에게도 스트레스 주고 싶지 않아요.”

- 고부간의 절묘한 역할분담



대신 주말의 가족 식사는 며느리 원정씨가 담당한다. 그 동안 숨겨 놓은(?) 비장의 음식 솜씨를 발휘하는 것. 어른들이 좋아하시는 매운탕이나 육개장을 끓이고, 제철 나물도 다듬는다. “결혼하기 전엔 밥 짓는 법도 몰랐다”는 원정씨. 그럼에도 덥석 층층시하의 시댁에 들어간 ‘간 큰’ 며느리다. 대학 캠퍼스 커플로 만나 6년 만에 사랑의 결실을 맺었다고 한다. 주변의 걱정이 대단했지만, 선택엔 후회가 없단다. “결혼하자마자 아이를 가졌는데 어머니께서 건사해 주시니 오히려 편했어요. 처음에 ‘시집살이 힘들겠다’던 친구들도 요즘엔 다들 부러워하는 걸요.”

아이를 키우는 방법부터가 어른들은 다르다는 걸 절감한다. 길거리에서 파는 불량식품 근처엔 얼씬도 못하게 하고, 아침 등교 복장도 날씨에 맞게 챙겨주니 아이들이 잔병 치레도 없이 자란다.

그렇다고 대식구가 북적대며 살아가는데 소소한 말썽이 없을 수는 없다. 얼마 전에는 오후 1첩?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하민이가 4시가 넘도록 돌아오지 않아 집안이 발칵 뒤집어졌다. 여느 때와 달리 특별활동으로 ‘레고’(장난감) 조립 시간이 있던 날이었다. 이를 알고 있던 원정씨가 깜박 잊고, 집에서 기다리는 정씨에게 알리지 않은 것이 문제의 발단. 정씨가 며느리에게 “미리 얘기 좀 해줬더라면 그토록 속 끓이지 않았을 텐데” 하는 서운함을 가진 건 당연했다. 그러나 “죄송하다”며 바로 잘못을 구하는 원정씨를 보는 순간, 정씨는 언짢았던 마음이 어느새 눈 녹듯이 사라졌다고 했다. “며느리 입장에서도 일일이 보고하며 다닌다는 게 얼마나 불편하겠어요. 가족 간에는 한 발짝만 물러서면 이해 못할 게 없는 것 같아요.”

대가족으로 사는 것은 아이들에게 살아있는 인성교육이다. 임재범 기자



이렇게 서로를 이해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겐 고부 갈등 같은 건 끼어들 틈이 없어 보인다. 아들 현웅씨는 “쇼핑을 가도 어머니와 아내가 찰떡궁합이 돼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른다”며 자신은 늘 찬밥 신세라고 투덜거린다. 정씨도 맞장구를 친다. “정말 거리를 지나다가도 예쁜 물건을 보면 먼저 며느리 생각이 나지, 아들 생각이 나진 않네요.”

- “가족간 갈등은 우리집엔 없어요”

물론 모녀지간 같은 고부지간의 가장 큰 덕을 보는 사람은 현웅씨다. “부모님이 나가라고 해도 절대 못 나가요. 아버지 어머니가 며칠 여행만 가셔도 집안이 텅 빈 듯 허전하니까요.” 그는 10년 전 뇌출혈로 쓰러진 탓에 다소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 김씨의 충직한 운전기사도 자처한다. 60대 노부부와 30대 젊은 부부의 환상적인 하모니. 그것이 가능했던 건 서로의 부족함을 메워주는 이해와 배려, 그리고 사랑이다. 정씨는 “친구들 모임에 가면, 시어머니가 집에 있어 돌아가기 싫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며 “많은 사람들이 도리를 잊고 사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요즈음 정씨네 대가족은 단체로 찜질방에 가는데 재미를 붙였다고 한다. 60대의 노부부를 비롯해 아들 부부, 4살ㆍ7살 손자 손녀까지 함께 출동하는 것. “시어머니와 벌거벗고 욕탕 속에 들어가는 것이 쑥스러웠던 건 딱 첫날 뿐이었어요. 어머니가 등을 밀어 주실 때 느껴지는 따뜻한 손길이 좋아요.” 원정씨의 말이다. 오래 묵은 장맛 같이, 깊은 가족 사랑이 우러나오는 풍경이다.

정씨네 가족이 화목하게 사는 비결
  
- 나름의 생활방식을 존중한다

정숙자 씨는 대가족이 화목하게 지내려면 각자의 생활 방식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씨네 부부와 아들 현웅씨네 부부는 아래 위층에 살고 있지만, 각기 고유한 공간을 보장해 준다. 가족 모임은 정씨네 부부와 친정어머니 노부례씨가 함께 거주하는 3층에서만 이루어진다.

때문에 젊은 부부의 독립된 공간에, 노부부가 불쑥 들어가는 일은 없다고 한다.

- 합의된 규칙이 필요하다

대가족이 원활한 생활을 유지하려면 반드시 나름의 합의된 규칙이 있어야 질서가 유지된다. 정씨네 4대 가족은 식사는 함께 하지만, 나머지 집안 일(빨래와 청소 등)은 각자 세대가 알아서 처리한다. 외출은 자유롭지만, 아침ㆍ저녁(출퇴근 때)으로 웃어른께 문안 인사를 드린다.

- 취미·여가 생활을 함께 한다

주말이면 가족 여행을 가거나 찜질방에 함께 놀러 가면서 돈독한 정을 쌓는다. 단, 아들 부부가 오붓한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매 주말마다 같이 있어야 한다는 등의 무리한 요구는 하지 않는다.

- 대가족의 이름으로 가족 구성원의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다.

원정씨는 지난 8년간의 대가족 생활에서 첫 아이를 낳고 쉬었던 3개월이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놓는다. 산후조리 기간이었음에도, 층층시하의 대가족에 들어온 직후 아이를 낳고 집에 있으니 눈물이 날 정도로 많이 우울했다고 한다. 이후 다시 직장을 구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야 쳐진 기분을 떨쳐 버릴 수 있었다고 말한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


입력시간 : 2004-05-11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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