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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대연봉주부] 2003 자동차 판매왕 박은화씨
강행군의 과실 사장보다 많은 연봉
즐기지 않으면 버텨내지 못하는 고된 영업
고객·가족의 신뢰와 지원이 가장 큰 재산


“ 저 놀러 가는 길입니다. 일을 일로 생각하면 이 일 절대로 못합니다. 일을 즐겨야 능률도 오르고 안 지치죠. 영업을 하면서 백인백색의 고객들을 만나고 얘기하면서 사람 사는 법도 배우고 그럽니다. 장시간 핸들을 잡는데, 드라이브를 즐긴다고 생각하면 이 운전도 즐겁죠.”

일을 즐겨라. 성공적인 비즈니스맨의 금언처럼 상징화된 격언이지만, 실천하는 이는 드문 원칙이다. 2003년 자동차 판매왕 박은화(43ㆍ대우 상용 강북 지점 차장)씨는 이를 철칙으로 고수해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트럭을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판매한 여자사원이 됐다. 사흘에 한 대꼴로, 2003년 한해 모두 121대(100억원에 상당)를 팔아 남자 사원들을 제치고 이 분야의 정상에 올랐다.


- 하루 이동거리 300km 이상





6월 2일 오전 8시. 일반 직장인이라면 출근 준비로 한창일 시간. 박 차장은 고객들과의 약속을 위해 떠날 채비를 한다. 차량 뒷좌석에는 고객들에게 전달할 타월과 차량용 커튼 뭉치 등 서비스 용품들이 그득히 실렸다. 9시 10분 신월동, 11시 40분 양재동, 3시 경기 남양주, 5시 반 경기 양주, 8시반 경기 수원. 오늘 하루 5건의 약속이 있지만, 그 지점이 제멋대로다. 사무실에 앉아서가 아니라, 직접 발품을 팔아야 하기에 결코 적지 않은 업무량이다. 이날 이동 거리만도 줄잡아 300Km. 웬만한 택시 기사들의 하루치 노동이다.

올 해 연봉은 1억 6,000만원. 대우 자동차 판매의 이동호 사장(1억 3,000만원)보다 많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 보면 하루 하루가 강행군의 연속이다. 새벽 5시 기상. 아이들과 남편의 아침 준비로 시작된 그의 하루는 그로부터 3시간이 지난 8시가 돼서야 비로소 바깥일로 전환된다. 원래부터 그는 ‘아침형 인간’이었던 셈. 빨래, 밥짓기, 청소, 남편 출근 등에 필요한 시간을 달게 받아 넘긴다.

집을 나선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98년식 누비라. 하루종일 박 차장과 함께 하며 여기저기를 휘젓고 다닐 동지다. 억대 연봉자라면 좀 더 고급한 자동차를 굴릴 법도 하지만, 정색한다. “ 화물차 운전 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힘들게 사시는 분들인데요. 식사 제때 못 하죠 잠 제대로 못 자죠. 돈 생기면 할부금 넣기 바쁘죠. 이분들을 봐서라도 제가 더 좋은 차를 탈 수 없습니다.”

의자를 앞으로 바짝 당기고는 허리를 곧추세워 핸들을 끌어 안은 폼이 영락없는 초보 운전 아줌마 자세. 저 어정쩡한 자세로 원정 영업을 하겠다니 왠지 불안하다. 그러나 어지간한 길은 지도 도움 없이 찾아갈 정도의 길눈에다 노련한 운전 실력까지 갖췄다. 뿐만 아니다. 전화번호도 100개 정도는 머리 속에 넣고 다닐 정도로 숫자에도 밝다. 최근 1달동안 견적 상담과 계약 건으로 연락을 주고 받은 고객들은 다 입력돼 있다.

“ 집에 있다 보니 남들보다 뒤쳐지는 것 같고, 가족들이 ‘ 살림밖에 못하는 사람’으로 보는 게 못 마땅했죠.” 박 차장이 일을 시작한 동기. 기왕에 할 바라면 남들이 하지 않는 일, 힘든 일을 하기로 하고 시작한 일이다. 그 속에서 성공할 확률이 더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예상은 적중했다. “숱한 판매원들이 다녀간 업체에서도 다른 사람은 다 묻혀버리는데 저만큼은 기억하고 연락을 하더라구요.” 게다가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까지 주었을 테니, 첫 인상에서 절반은 해치운 셈. ‘어! 여자가 트럭을 팔아?’


- “영업은 사람장사예요”

박은화씨는 남자 영업사원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트럭판매부분에서 아줌마의 힘을 떨치며 판매왕에 올랐다. 임재범 기자

“ 영업은 사람 장사예요.” 또 하나의 금언을 소개한다. 11년 전 자신이 판매한 1호차 차주가 2호차 자주를 소개 시켜줬고, 또 그 차주가 3호차 차주를 소개 시켜준 사실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 제가 직접 한 사람 한 사람 만나서 영업을 한다 쳐 보죠. 한 달에 2~3 대 팔면 정말 많이 파는 겁니다. 영업 사원 혼자서 뛰어 다니며 상담하고 판매하는 데에는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는 겁니다.”

“저는 그냥 제 고객들에게 그냥 최선을 다 한 것 뿐인데, 그분들이 차를 또 팔아 주시더라구요.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이런 방법이 아니었더라면, 한 달에 열 건 이상의 계약을 성사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는 걸 깨달았죠.” 그는 “고객이 저를 대신해서 영업을 하는 것”이라며 “그래서 그 사람한테 최선을 다하는 수 밖에 없다”고 풀어 준다. 새차를 몬 지 얼마 안 돼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어떻게, 어디서, 얼마에 뺏는가?”이다. 바로 자신을 통해 차를 구매한 고객이 이런 질문들에 답해 주는 것이 곧 자신을 대신한 영업 활동이라는 독특한 논리고 뱃심이다.

그래서 자신의 고객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다는 박 차장이지만, 고객의 휴대 전화에 문자 또는 음성 메시지를 절대로 남기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술 접대를 비롯한 저녁 회식도 일절 하지 않는다는 게 또 다른 업무 원칙이다. 판매 업무란 게 예측불가한 상황에 맞닥뜨려야 하는 ‘ 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여자의 몸이라고 해서 한 수 접히고 들어가지는 말자는 다짐이 그래서 더 자신을 다잡는다. “ 동료의 차에 발길질을 하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육두문자도 예사로 내뱉는 아저씨들이 바로 저의 고객들이예요. 그래서 원칙을 세웠죠. 밤에 고객을 만난다든가, 음성 메시지를 남긴다든가 해서 오해를 살만한 일은 아예 하지 않기로 말이죠,” 속은 착하기 그지 없다는 걸 알지만 겉보기에는 우락부락한 아저씨들을 주요 고객으로 대하다 보면, 그런 원칙이 자연스레 서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사정을 눈치 채고 있는 남편의 지청구도 받아 줘야 한다. “ 창피하게 무슨 영업이야. 집에서 애들이나 키울 일이지. 내가 밥을 굶겨? 왜 그런 고생을 사서해? 도대체 뭐가 불만이야?” 12년 동안 들어 온 소리. 상대하는 고객, 덩치 큰 상품, 하루 몇 백Km를 뛰어 다녀야 하는 노동 강도를 돌아 본다면 가끔씩 불거지는 성화가 유별나다고 볼 수도 없다. 남자 판매원들로 버티지 못하고 내빼는 마당에.

“ 형제헌티 잘 허고 부모한테꺼정 잘 항께 넘들보기에도 안 이뻐 보이겄소. 젊은 사람이 열심히 살라꼬 하는디, 또 보기도 안 좋겄소? 그래도 항시 들락날락 바뿌게 댕기는 며눌아기가 지쳐 있는 걸 보고 있을라믄 짠하지라.”(시부모). “열심히 일하는 엄마를 보고 정말 많은 걸 배워요. 친구들이 우리 엄마를 얼마나 부러워 하는데요.”(고1 딸 )

‘ 2003년 전국 판매왕’간판을 가능케 한 가족들의 믿음과 지지다. “ 집안에서 인정 받고있기 때문에 밖에서도 자신있게, 더 당당하게 일할 수 있는 거 아니겠어요? 결국 그 자신감이 오늘의 저를 만든 거죠.” 6월 2일 오전 ‘5월의 판매왕’ 타이틀로 보상 받은 당당함이다. “박은화씨, 지난 달 판매왕 또 먹었네!”



정민승 인턴기자 prufrock@empal.com


입력시간 : 2004-06-08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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