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익빈 부익부 답습하는 '천민 자본주의'의 場일부 대학의 등록금 투쟁 성과에 주목

[홍대앞·신촌 ‘문화’의 위기] ‘文化’ 포기한 우리 대학
빈익빈 부익부 답습하는 '천민 자본주의'의 場
일부 대학의 등록금 투쟁 성과에 주목


이 시대, 서울 신촌은 청년 문화의 산실이라는 영광의 호칭이 버겁다. 이제 학생들은 그 거추장스런 유물일랑 벗어 버리고 찬란한 소비의 대열에 기꺼이 동참했다. 보라, ‘천민자본주의’적으로 얼마나 활기에 차고 아름다운가. 여관방은 낮에도 비디오가 뜨겁고, 야심한 밤은 고성방가와 무단방뇨가 반긴다. 어린이 놀이터 벤치에 엉겨 붙은 남녀 대학생을 노숙자들이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을 뿐. 이 동네 아이들에겐 이미 일상의 풍경이다.

- 세계 최다 술집 보유 대학가

대학가라고 해서 시대의 흐름과 무관하라는 법은 없다. 고도자본주의와 세계화의 논리에 협공 받고 있는 21세기 한국 문화의 지형도가 고스란히 재현된다는 데 문제는 도사리고 있다. 물론, 이름이 비슷한 신천에는 훨씬 많은 러브 호텔과 비디오방 등 말초적 유흥 문화가 보다 노골적으로 포진해 있다. 그러나 신천 지역만은 제 모습을 지켜주길 바라는 마음은 배반당해야 한다.

연세대, 이화여대, 홍익대, 서강대 등 한국의 대표적 대학가 밀집 지역인 신촌에는 ‘대학’이 없다. 일반 서점에는 없는 좌파적 이론서 등을 목말라 했던 학생들에게 단비 같은 존재였던 ‘오늘의 책’, ‘일산서점’등은 스러졌다. 비단 연세대 앞뿐일까. 이화여대 앞에서 사회과학 서적의 샘물 같은 존재로 기능하던 ‘이화서점’도, 서강대앞의 ‘서강서점’의 명예도 이제는 옛말이 돼 버렸다. 서점 없는 대학가라는 희한한 풍물이 드디어 이 시대에 만들어 진 것이다.

교통 중심지이기도 한 이 일대의 유동 인구는 하루 평균 30만여명. 그 가운데 7~8할은 20~30대의 차지다. 이들을 겨냥한 음식, 술, 놀이 등 소비 산업이 덩달아 각광 받으리라는 것은 불문가지. 그 같은 현상의 저변에는 사회 경제적 요인이 잠복해 있다. 신촌의 땅값이 20년전에 비해 수십배는 올랐다는 주민들의 증언은 불야성을 구가하고 있는 이 지역의 경제적 호황과 잘 맞아 떨어진다. 덕분에 연세대 앞은 ‘세계에서 단위 면적당 술집수가 가장 많은 곳’이라는 영광의 기록 하나를 갖게 됐다.


- "관련 볍규 미비탓", 비판도

대학 관계자들은 우리 대학의 환경이 이렇듯 황폐화된 것이 우선 관련 법규의 미비때문이라고 입 모은다. 현행 ‘학교 보건법’ 제 5조 1항에 의하면 학교 출입문으로부터 직선 거리로 50m까지의 지역은 절대 정화 구역으로, 학교 경계선으로부터 직선 거리 200m까지의 지역은 상대 정화 구역으로 지정된다. 특히 유흥 업소와 같이 별도의 영업 허가를 받아야 하는 업종들은 이 법이 정하는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안에서의 영업이 기본적으로 제한되거나 교육청의 심의를 거쳐 영업 허가를 받게 된다.

그러나 연대앞에 즐비한 각종 유흥업소들은 이 법이 규정하는 바의 유흥업소에 해당되지 않아, 구청에서 규제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법에서 규정하는 바 유흥음식점이란 접대부를 고용하는 음식점으로, 연대앞의 호프나 바는 일반 음식점으로 취급돼 영업신고만 하면 된다는 이유 때문이다. 여기에다 ‘문화지구나 특화된 지역에 해당하지 않는 한 구청은 사유 재산에 대한 통제권이 없다’는 제한 규정도 한몫 한다. 실제로, 한동안 이 일대를 문화의 거리로 인식케 했던 ‘신촌문화축제’도 예산 등의 이유로 폐지 상태다.

대학문화의 1번지, 신촌 일대의 문화 양상이 하락 곡선을 내리 긋고 있는 것은 그 일대의 특수 상황이 아니다. 학생들의 소비 패턴도 기성 세대의 빈익빈부익부 현상을 닮아 가고 있다는 개탄은 여타 학원가에서 봤을 때는 어찌 보면 가증스러운, 배부른 소리일 지도 모른다. 문제는 전반적 불황으로 인해 일반 대학가에서 아예 문화가 사라지고 있다는 데 있다.


- 5만원을 둘러싼 눈물겨운 힘겨루기

요즘 대학가는 밤이 되면 시쳇말마따나 썰렁하기 그지 없다. 5월, 학교 – 학생 간의 지루한 줄다리기끝에 지난 5월, 극적으로 단행된 등록금 인상분 환불조치는 압권이었다. 그 달 초, 단국대ㆍ세종대ㆍ원광대ㆍ중앙대 등 4개 대학이 등록금 인상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주장을 수용, 1~7%에 이르는 등록금 인상분을 환불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후 이 같은 조치는 등록금 인상을 둘러싸고 갈등을 쌓아 가고 있는 여타 사립대에 암묵적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먼저 불씨를 당긴 것은 세종대학생. 올 초 학교측이 등록금 7.2% 인상안을 제시한 데 반발, 3월부터 본관을 점거하고 등록금 납부 거부 운동을 벌여 13일만에 등록금 동결 결정을 받아 내는 등 승리를 거뒀던 것. 이어 올해 8.9%의 등록금 인상안을 제시한 단국대는 학생들과의열띤 협상끝에인상률을 3%로 낮추고 그 차액을 학생들에게 돌려 주기로 결정했다. 또 원광대 학생들은 올 초 학교측의 등록금 7.2% 인상안 제시에 반발, 1달간의 본간 점거 농성 끝에 해결책을 끌어 냈다. 1학기 등록금 인상분과 이자 등을 2학기 등록금에서 제외하기로 합의한 것.

우리 시대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이렇듯 얄팍한 주머니와 씨름하며 힘겨운 젊은날을 보내고 있다. 그것은 곧 자의든 아니든 우리 시대의 아픔에 동참하는 과정이다. 이 힘든 시간속에서 그들은 결국 유의미한 무언가를 길어 올릴 것이다. 등록금 환불 투쟁속을 좀 더 따라가 보자.

환불은 학생 및 학부모 계좌로 환불금을 입금해 주거나, 다음 학기 등록금에서 인상분만큼 삭감해 주는 방식을 통해서 이뤄진다. 그러나 환불금이 학생들 계좌로 입금되는 경우, 학생들이 이 금액을 유흥비 등으로 쓰는 경우가 많아 인상분을 환불해 주는 본래의 취지가 퇴색하는 경우도 있다. 평균 5만원대의 돈이란 사실 보기에 따라서는 가벼운 액수다. 실제로 적잖은 학생들은 술을 마시거나 PC방값 등으로 ‘탕진’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문제는 학교 주변에 만연한 소비 문화탓에 눈만 높아진 학생들의 발길이 어디를 향하느냐에 있다. 해당 학교에서는 지금 환불금의 용도와 관련, 다음 학기 등록금 삭감이나 장학금 조성 등의 실제적 방안을 놓고 고민중이다.


- "기존 주민들과 이뤄 낼 새 문화에 기대"

그것은 결국 대학가에서 소비의 지형도를 새롭게 그려내리라는 전망이다. 연세대 도시문제연구소장 이은국 교수는 “특징적 문화를 소유한 인사동이나 대학로와 달리, 신촌 일대는 단일한 문화 이미지가 없고 기존 상권이 너무나 강해 어려움이 많다”며 “게임, 영화, 음반 등 첨단 문화 산업을 진흥ㆍ육성ㆍ집적시킨 공간의 설립이 대안적으로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촌 아트페스티벌 집행위원장 임정택 교수(연세대 독문과)는 “대학인과 기존 주민의 상충하는 논리를 잘 융합시켜내기 위해 생산적인 충돌이 더 필요한 시점”이라며 성급한 결론을 경계했다.

환란보다 더한 이 난국의 시대, 생활에서 면제 받는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당장 맞닥뜨리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돈의 의미’를 캐묻는 일이다. 이념 과잉이라는 시대적 부채 의식에서 벗어난 그들은 사회와 경제를 몸으로 학습하고 있다. 쾌락을 좇는 ‘선택받은’ 소수, 빈익빈부익부의 현실 등 그들을 낙담케 하는 덫은 도처에 깔려 있다. 그러나 주머니가 얇으니 그만큼 날렵하다는 두둑한 뱃짱으로, 그들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해 낼 것이다..

장병욱차장


입력시간 : 2004-06-23 11:30


장병욱차장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