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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앞·신촌 ‘문화’의 위기] 비비고 굽는 거리, ‘홍대앞’
대학생, 직장인의 댄스 특구…언더그라운드는 옛말
디제잉 등 독특한 클럽 문화의 문화상품화 노력 절실


발을 디딘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판이었다. 번쩍이는 조명 아래 강렬한 비트의 음악이 쏟아지고, 혈기 넘치는 몸과 몸은 이리저리 출렁댔다. 50평 남짓한 홀 안에는 300명도 넘는 젊은이들이 뿜어내는 열기로 후끈 달아 올랐다.

6월 18일 밤 10시. 서울 홍익대 앞 클럽 거리의 금요일 밤은 여름 방학을 맞은 대학생, 주말을 맞은 직장인으로 넘쳐 나고 있었다. 거기서 힙합 클럽 ‘ 엔비(nb)’를 모르면 인간이 아니다. 이 일대에 늘어 선 30여 클럽 중에서 가장 문전성시를 이루는 곳 아닌가. 또 5월 20일에는 ‘ 일반 음식점으로 허가를 받아 놓고는 음악 틀고 춤을 춘다’는 이유로 경찰의 단속을 받아, 논란이 인 덕분에 뜻밖의 홍보 효과를 받은 곳이기도 하다.


- 미군 행패 사라진 곳에 노골적 상업문화가





“ 춤은 일종의 자생적 문화에요.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우리가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드는 것뿐인데 이를 왜 단속하려 하죠? 성추행이 빈발하고 살인이 난다면 모르겠지만.”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놀러 온 대학생 문두열(26)씨는 경찰의 단속이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며 분통을 터트린다. “ 3~4년 전 클럽의 문제는 미군들의 행패때문이었죠. 지금은 아예 그런 사람들의 출입이 안 돼잖아요.”이 같은 태도는 홍대앞 클럽연합체인 클럽문화협회와 문화환경운동 시민단체인 공간문화센터 등이 지난달 28일부터 20여 개 클럽 앞에 ‘ 클럽을 지켜주세요’라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펼쳤던 서명 운동의 연장선상에 있다. 행정 소송은 물론, 17대 국회 문화관광위를 대상으로 클럽의 제도화를 추진할 방침이다.

같은 날 오후 12시 30분, 음악 수준이 높은 테크노 클럽으로 알려진 ‘조커레드’를 찾았다. 현란한 기계음에 맞춰 군데군데 6~7명의 사람들이 반복되는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고 있다. 클럽의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어야 할 시간이지만, 요즘 인기몰이를 하는 힙합 클럽들과 달리 내부는 여유롭다 못해 한산한 기운이 감돈다.

“약간 음악이 어려운 편이에요. 그래도 자꾸 듣다 보면 필이 꽂혀 빠지게 되는 그런 음악인데…. 그래서 음악적 전문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 중심이 되죠.”이 클럽을 자주 찾는 클러버(클럽문화 마니아)이었다가 매니저를 맡게 됐다는 박은희(32)씨는 “ 주로 외국에서 살았거나 관련된 일에 종사하는 음악 마니아들 위주이고, 20대에서 30대 후반, 40대 넥타이 부대가 더러 있다”며 “ 과거에는 이들처럼 클럽의 실험적 음악을 진지하게 듣고 느끼려는 마니아들이 많았으나, 클럽이 많아지고 음악적 안목이 적은 일반인들이 많이 흘러 들면서 대중 취향의 클럽들이 각광을 받는 것 같다”고 아쉬워 했다.


- '물' 좋은 곳만 찾는 대학생 의식이 한술더 떠



겉보기에 홍대앞 클럽은 번창하고 있지만, 진정한 대안 문화의 핵심인 언더그라운드 음악에 대한 갈증은 오히려 줄고 있다는 설명이다. 10년 DJ 경력으로 클럽 ‘SAAB’를 운영하는 손동월 씨는 “ 요즘 힙합이 인기를 끌면서 20대 초반 젊은이들 취향에 맞춰 음악을 틀고 있다”며 “ 귀에 익숙한 음악만 쫓는 풍토가 아쉽다. 다소 낯선 실험적 음악이라도 DJ를 믿고 따라오는 사람들이 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진정한 클럽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는 창조적인 젊은이들은 다름 아닌 클럽에서 축출되는 형국이다. 대신, 인물이 좋은 20대들이 많이 찾는 소위 ‘물’ 좋은 곳을 찾아 떠도는 ‘모래알 손님’이 늘고 있다고 자조적 한탄이 흘러 나온다.

급속한 상업화의 물결을 타고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는 곳은 비단 클럽만이 아니다. 동교동에서 당인리 발전소로 이어지는 ‘ 주차장 골목’은 2002년 서울시에서 홍대앞의 유일한 ‘ 걷고 싶은 거리’로 지정되며, 1~2년 사이 평당 최고 1,000만 원 정도 땅값이 뛰어 올랐다. 때문에 급상승한 건물세를 감당 못하는 공연장은 하나 둘씩 자취를 감추고, 거리 전체가 삼겹살과 갈비 등으로 간판으로 뒤덮이게 됐다. ‘(사람이) 걷고 싶은 거리’가 사라진 자리, ‘(고기를) 굽고 싶은 거리’가 대체했다.

‘비주류’ 문화는 홍대 앞의 가장 고유한 밑천이다. 그래서 홍대앞을 아끼는 문화인들은 자유분방한 문화를 행정의 시각으로 재단하려는 작금의 세태를 염려한다. 그러나 식품위생법 등과 같은 막연한 잣대가 이 지역의 예술적ㆍ상업적 흐름과 불화하는 상황이라면 독창적 대안문화는 질식할 것이라는 점은 명백해 보인다.

■ 인터뷰 - 클럽문화협회 최정한 대표
  
"규제가 없어져야 클럽을 지킬 수 있다"



“과잉 행정 규제가 없어지면, 대안문화의 산실인 클럽을 지켜나갈 수 있습니다.” 클럽문화협회 최정한(47) 대표의 클럽 육성론은 그 같은 당위에서 출발한다.

‘공간 문화 센터’의 대표이기도 한 시민운동가 최 씨는 “홍대앞 클럽은 월드컵 기간에 서울시와 함께 ‘월드 클럽 데이’ 행사를 열기도 한 독특한 실험문화 공간”이라며 “클럽에서 DJ가 틀어주는 음악을 일종의 문화상품으로 인정하고 육성하는 구조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4월부터는 매달 둘째주 금요일에 ‘사운드 데이’ 행사를 신설, 평소 접하기 힘든 일렉트로닉 장르의 음악이나 크로스오버 공연을 펼치는 등 경계를 허문 음악축제를 새롭게 시도하고 있다. 최 대표는 “ 최근 클럽의 질이 저하되고 상업화되는 후유증이 나타나고 있지만, 이는 클럽이 성장하는 하는 한 과정으로 봐 달라”고 호소했다. 홍대앞은 자정 능력이 있는 한, 여전히 문화생산자로서의 다양한 노력을 펼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

홍대앞 14개 클럽의 연합체인 클럽문화협회는 홍대앞 문화예술인의 희망으로 통한다. 벌써 37회째 ‘ 문화 뷔페’란 부제로 ‘클럽 데이’(1만5,000원짜리 티켓 한 장으로 클럽들을 옮겨 다니며 즐길 수 있는 행사, 매달 마지막주 금요일)를 개최하는 등 대안 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또한 클럽을 중심으로 소품집과 옷집, 음식점 등 일종의 클럽경제권이 형성됨에 따라 이들을 연계한 지역화폐 도입을 검토 중이고, 소외된 이웃과 음식을 나누는 푸드뱅크 사업 등 지역운동도 펼치고 있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


입력시간 : 2004-06-23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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