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직장인의 댄스 특구…언더그라운드는 옛말디제잉 등 독특한 클럽 문화의 문화상품화 노력 절실
[홍대앞·신촌 ‘문화’의 위기] 비비고 굽는 거리, ‘홍대앞’ 대학생, 직장인의 댄스 특구…언더그라운드는 옛말 디제잉 등 독특한 클럽 문화의 문화상품화 노력 절실
- 미군 행패 사라진 곳에 노골적 상업문화가
“ 춤은 일종의 자생적 문화에요.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우리가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드는 것뿐인데 이를 왜 단속하려 하죠? 성추행이 빈발하고 살인이 난다면 모르겠지만.”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놀러 온 대학생 문두열(26)씨는 경찰의 단속이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며 분통을 터트린다. “ 3~4년 전 클럽의 문제는 미군들의 행패때문이었죠. 지금은 아예 그런 사람들의 출입이 안 돼잖아요.”이 같은 태도는 홍대앞 클럽연합체인 클럽문화협회와 문화환경운동 시민단체인 공간문화센터 등이 지난달 28일부터 20여 개 클럽 앞에 ‘ 클럽을 지켜주세요’라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펼쳤던 서명 운동의 연장선상에 있다. 행정 소송은 물론, 17대 국회 문화관광위를 대상으로 클럽의 제도화를 추진할 방침이다. 같은 날 오후 12시 30분, 음악 수준이 높은 테크노 클럽으로 알려진 ‘조커레드’를 찾았다. 현란한 기계음에 맞춰 군데군데 6~7명의 사람들이 반복되는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고 있다. 클럽의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어야 할 시간이지만, 요즘 인기몰이를 하는 힙합 클럽들과 달리 내부는 여유롭다 못해 한산한 기운이 감돈다. “약간 음악이 어려운 편이에요. 그래도 자꾸 듣다 보면 필이 꽂혀 빠지게 되는 그런 음악인데…. 그래서 음악적 전문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 중심이 되죠.”이 클럽을 자주 찾는 클러버(클럽문화 마니아)이었다가 매니저를 맡게 됐다는 박은희(32)씨는 “ 주로 외국에서 살았거나 관련된 일에 종사하는 음악 마니아들 위주이고, 20대에서 30대 후반, 40대 넥타이 부대가 더러 있다”며 “ 과거에는 이들처럼 클럽의 실험적 음악을 진지하게 듣고 느끼려는 마니아들이 많았으나, 클럽이 많아지고 음악적 안목이 적은 일반인들이 많이 흘러 들면서 대중 취향의 클럽들이 각광을 받는 것 같다”고 아쉬워 했다.
겉보기에 홍대앞 클럽은 번창하고 있지만, 진정한 대안 문화의 핵심인 언더그라운드 음악에 대한 갈증은 오히려 줄고 있다는 설명이다. 10년 DJ 경력으로 클럽 ‘SAAB’를 운영하는 손동월 씨는 “ 요즘 힙합이 인기를 끌면서 20대 초반 젊은이들 취향에 맞춰 음악을 틀고 있다”며 “ 귀에 익숙한 음악만 쫓는 풍토가 아쉽다. 다소 낯선 실험적 음악이라도 DJ를 믿고 따라오는 사람들이 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진정한 클럽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는 창조적인 젊은이들은 다름 아닌 클럽에서 축출되는 형국이다. 대신, 인물이 좋은 20대들이 많이 찾는 소위 ‘물’ 좋은 곳을 찾아 떠도는 ‘모래알 손님’이 늘고 있다고 자조적 한탄이 흘러 나온다. 급속한 상업화의 물결을 타고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는 곳은 비단 클럽만이 아니다. 동교동에서 당인리 발전소로 이어지는 ‘ 주차장 골목’은 2002년 서울시에서 홍대앞의 유일한 ‘ 걷고 싶은 거리’로 지정되며, 1~2년 사이 평당 최고 1,000만 원 정도 땅값이 뛰어 올랐다. 때문에 급상승한 건물세를 감당 못하는 공연장은 하나 둘씩 자취를 감추고, 거리 전체가 삼겹살과 갈비 등으로 간판으로 뒤덮이게 됐다. ‘(사람이) 걷고 싶은 거리’가 사라진 자리, ‘(고기를) 굽고 싶은 거리’가 대체했다. ‘비주류’ 문화는 홍대 앞의 가장 고유한 밑천이다. 그래서 홍대앞을 아끼는 문화인들은 자유분방한 문화를 행정의 시각으로 재단하려는 작금의 세태를 염려한다. 그러나 식품위생법 등과 같은 막연한 잣대가 이 지역의 예술적ㆍ상업적 흐름과 불화하는 상황이라면 독창적 대안문화는 질식할 것이라는 점은 명백해 보인다.
입력시간 : 2004-06-23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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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