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만남, 거장의 자의식을 엿보다우리시대 이야기꾼이 풀어낸 '색채 마술사'의 주술, 그리고 그와의 내면의 대화

[色의 幻-샤갈展] 소설가 성석제의 미술관 나들이
유쾌한 만남, 거장의 자의식을 엿보다
우리시대 이야기꾼이 풀어낸 '색채 마술사'의 주술, 그리고 그와의 내면의 대화


“이 샤갈이라는 사람, 자기가 그린 그림 속의 염소와 많이 닮지 않았어요?” 소설가 성석제의 첫마디였다. 명작들 속에서 넘겨 버리고 말 법한 샤갈의 사진을 그는 꼼꼼히 뜯어 보고 있었다. 안경알 속 그의 눈이 반짝 빛난다. 그는 한 마디 덧붙였다. “사진을 처음 봤을 때는 그냥 이 양반이 웃고 있는 줄로만 알았는데, 자꾸 보니까 아닌 거 같네요.” 그리곤 더 이상 말이 없다. 그의 말은 어느새 자신의 소설 어법과 닮아 있었다.

성석제(45). 올해로 등단 19년째를 맞는 중견 작가인 그의 이름 앞에는 늘 ‘우리 시대의 이야기꾼’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감상적인 문장 몇 개를 사진과 함께 배치하고는 문학이란 이름을 붙여 ‘이미지 북’의 형태로 버젓이 등장시키는 지금, 그는 서사의 선 굵은 매력을 보여주는, 몇 안 되는 작가다. 그러나 그의 소설들이 가진 매력이 비단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솜씨에만 기대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꼬질꼬질한 현실 속에서도 찬란한 환상의 실마리를 건져 올리는 작가다. 마치 현실과 몽환의 세계를 마음대로 넘나드는 샤갈의 그림처럼.

그의 소설 ‘황금의 나날’의 한 대목 같은 7월의 마지막 주였다. ‘잘 잡아 두었다가 겨울에 얼리면 보석이나 다름 없을 것’같은 강한 햇살이 내리쬐던 날. 그 환상과 현실의 투명한 경계선을 따라 그와 함께, 샤갈을 만나러 갔다. 현실과 상상을 환상적으로 직조해 내는 특유의 입담에 천의무봉이라는 관작까지 수여(문예지 ‘작가세계’ 2002년 봄호) 받았던 작가의 렌즈를 통해 들여다 보는 샤갈.


- 환상과 현실이 상존하는 캔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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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을 처음 만난 건 미술 교과서에서였죠. 소나 닭 같은 동물 그림이 많아서 유치하다고도 생각했었는데 와서 보니까 훨씬 좋네요.” 경기도 군포의 자택에서부터 서울시립미술관까지, 한달음에 더위를 뚫고 온 까닭에 그는 연신 얼굴의 땀을 훔쳤다. 그러나 그는 곧 더위를 잊은 듯 샤갈의 그림에 집중력을 보이기 시작했다. 샤갈의 전시회는 1914년에서 1918년에 걸쳐 제작되었다는 ‘도시 위에서’라는 작품에서 시작한다. 가로 197cm, 세로 139cm의 작품 앞에서 소설가 성석제는 한참을 서 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작품 왼쪽 하단을 손으로 가리킨다. “이거 봤어요?”

짓궂은 생각을 하고 있는 소년처럼 그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이 작품은 이번 전시회의 포스터로 쓰여 더 유명해진 그림. 그러나 그 포스터에는 성석제가 가리킨 왼쪽 하단에서 쭈그리고 앉아 있는 사람이 들어가 있지 않다. 그는 천연덕스레 말을 이어 간다. “이 사람 지금 용변보고 있는 거 아닌×? 엉덩이를 까고 엉거주춤. 저기 초록색 염소도 같은 일을 하고 있는 거 같고.” 과연 성석제답다. ‘색채의 마술사’라 추앙하는 마르크 샤갈의 그림에서 그런 유쾌한 도발을 감행하다니.

샤갈전 포스터로 유명해진 작품 <도시 위에서>를 카리키며 웃고 있는 성석재씨. /사진 박철중

“하늘을 나는 연인들이 있는 반면 지상의 도시는 상당히 현실적인 면모를 갖추고 있죠. 그리고 그 도시의 한 구석에서 쭈그리고 앉아있는 사람이라…, 현실에 엄연히 존재하는 모습들을 환상과 함께 그릴 줄 안다는 건 샤갈이 생의 여러 단면들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뜻이겠죠. 샤갈은 상당히 낙천적인 사람이었던 거 같네요. ” 그건 성석제 소설의 특징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는 소설이 갖고 있어야 하는 미덕 중 ‘재미’를 첫째 조건으로 친다. 그러니 그의 소설은 늘 유쾌하고 재미나는 것 같지만 그 즐거움은 사실 인생의 여러 단면들을 통과해온 뒤 얻어낸 고갱이 같은 것. 성석제는 모두들 밝고 부드럽고 따뜻하다고 말하는 샤갈의 그림 앞에서 샤갈의 자의식을 읽어낸다.

“‘마을의 생활’. 1982년 작이군요. 그러면 90이 넘어서도 창작 활동을 했다는 건데, 그림이 많이 변했죠. 전에는 명확한 선으로 대상과 풍경 사이에 경계를 지워 놓은 반면, 만년에 들어서는 그 경계를 가는 선으로 여러 번 덧칠 하는군요. 그 엷어진 경계만큼 생각이 많아진 것일 수도 있고…. 너그러워진 건지도 모르고.”


- "샤갈은 자신을 지켜낸 사람"

성석제는 샤갈이 그 당시 사회의 마이너리티, 즉 유대인 출신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고집하다 절대주의를 신봉하던 말레비치에 밀려 비테프스크의 미술학교 교장직을 사임하게 된 것 역시 출생상의 한계 때문이었다. 고향인 러시아를 떠나게 된 결정적인 계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샤갈은 자신만의 세계를 끝까지 밀고 나간다. 피카소가 “암소와 닭 좀 그만 그렸으면 좋겠다”며 빈정댔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그에 대해 성석제는 “자기 자신을 최선을 다해 지켜내려고 했던 사람”이라고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라는 존재와 싸워가며 혹은 지키려 애쓰며 살기 마련. 특히 오로지 자신을 삶의 원천으로 해서 살아가는 예술가들에게 ‘자아’란 영원한 화두인지도 모른다. 샤갈이 그림 곳곳에 동물들 혹은 동물의 얼굴을 한 사람들을 배치하며 자신을 심어놓았듯 작가는 작품을 통해 말한다. 그러면서도 작품을 이끌어가는 화자와 작품을 쓰고 있는 자신과의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긴장을 풀지 않는다. 좀더 본격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소설가 성석제와 그의 소설 속 화자들은 어떤 관계이며 그들이 처한 상황들은 성석제의 어떤 상황들인지. 성석제는 현실을 어떻게 환상적으로 변주해 내는지.

“내가 만들어내는 환상이란 원래 갖고 있던 기억에 무언가를 덧칠해 가는 방식으로 형성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덜어낸다면 덜어낼까…, 환상이라는 건 곰팡이나 효모군 같은 거예요. 무언가가 원본 속에서 부풀어오르죠. 성질, 혹은 형질이 변화하고 냄새도 변하고 하면서. 샤갈의 그림 구석 구석에 배치되어 있는 여러 장치들, 히브리어 문자 같은 기호, 러시아 정교회의 돔, 울고 있는 듯한 사람들의 표정, 그리고 꽃들. 이런 건 작가가 그리면서도 모르고 그렸을 수도 있어요. 의식적으로 배치하는 것도 있지만 무의식의 심연에서 흘러나오는 게 훨씬 많아요. 소설의 화자는 나와 완전히 다른 독립적인 존재거든요. 샤갈의 환상도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

그러면서 그는 샤갈의 1953년 작 ‘노트르담의 유령’ 앞에 오래 서 있었다. 다양한 농도의 푸른색으로 가득하다. 하늘에 한 쌍의 연인이 떠 있는 한편 반달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으며, 현명한 얼굴을 한 닭이 연인을 바라보고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입을 벌리고 있다. 그리고 염소의 얼굴을 가진 사람이 흘러가는 강물을 관조하고 있다. “이 그림 참 좋네요” 라고 말하는 소설가의 뒷모습에서는 그 자신만이 아는 어떤 영기가 번져 나오는 듯했다. 기자가 하늘을 떠다니는 연인의 이미즈는 샤갈의 그림에서 거듭 나타난다는 점을 말하자 그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하늘을 떠다니는 연인들… 그리고 암소, 염소, 수탉 이런 건 그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계속 쫓아 다니죠, 자기 자신을. 그렇죠, 마치 그림자처럼.”


- 소설가의 내면을 사로잡다

샤갈의 전시회는 이제 시작이다. 10월15일까지는 서울의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그 후 11월10일부터 내년 1월15일까지는 부산시립미술관에서 계속될 예정이다. 샤갈의 마을에만 눈이 내리는 게 아니라 우리네 마을에도 눈이 내릴 무렵, 샤갈은 프랑스로 돌아간단다. 성석제는 그가 튼튼히 뿌리내리고 있는 우리 땅에서 그만이 쓸 수 있는 소설을 계속 써나갈 것이다. 요새 그는 고문(古文)을 자주 읽는다고 한다. 조금 더 새로운 소설을 쓰려 노력한다고도 말했다. 그를 따라 다니는 그림자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것처럼. 그 모습들을 지켜보는 건 우리들의 몫이다.

성석제와 함께 서울시립미술관을 나서다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 샤갈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소설 ‘황금의 나날’중 또 다른 한 대목이 떠올랐다. ‘…내가 그토록 그리워하다 마침내 잊어버린 냄새가 거기에 있어, 나를 사로잡았네.’

박소현 인턴기자


입력시간 : 2004-08-05 15:55


박소현 인턴기자 pest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