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공방 3년여 만에 문건 첫 열람 등 우여곡절 겪으며 '공개' 결실

[도전받는 '담배의 제국'] 담배유해성 연구자료 공개 '알권리'의 개가
법정공방 3년여 만에 문건 첫 열람 등 우여곡절 겪으며 '공개' 결실

제1회 금영관련 사진공모전에 출품된 작품을 청소년들이 관심있게 보고 있다. / 김지곤 기자

거대 담배 회사를 상대로 한 흡연 피해자들의 소송에서 승리의 열쇠는 두 가지다. 담배 회사들의 위법 행위를 밝혀내는 것이 첫째이고, 흡연이 원고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줬음을 입증하는 것이 둘째다. 그 두 가지는 승소를 위한 필요 충분 조건인 셈이다.

천문학적인 배상금 규모로 사람들 입을 벌려 놓았던 미국의 담배 소송에서 원고들이 승소한 것도 그 열쇠를 잡았던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열쇠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피고측인 담배 회사의 ‘아킬레스건’을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국내 최초 담배 소송의 원고측 대리인인 배금자 변호사 등이 8월 16일 공개한 KT&G 내부 자료들은 피고의 잘잘못을 가릴 수 있는 시금석이다. 피고측의 아킬레스건일 수도 있다. 때문에 원고측은 이를 입수하기 위해 거의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고, 이 과정에 말도 못할 만큼 어려운 고비들을 넘겼다. 원고측이 공개한 자료가 얼마나 결정적인 것인지는 결국 재판부가 판단할 몫이지만, 이번 담배 소송에 새로운 국면을 가져 온 자료 공개의 내막은 그 자체로도 흥미로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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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2월 흡연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며 원고들이 국내 최초의 담배 소송을 제기했을 때부터 담배 연구자료는 피고의 위법성을 입증할 가장 중요한 증거로 떠올랐다.

원고측은 우선 국내에도 담배 연구소가 존재하며, 또한 많은 연구를 해왔음에도 그 동안 연구 결과가 공개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에 따라 소송 초반인 2000년 3월 원고 대리인 배금자 변호사는 KT&G 중앙연구원(당시 한국인삼연초연구원)이 가진 모든 담배 연구자료에 대한 문서 제출 명령을 신청했다.

하지만 신청은 바로 각하됐다. 당시 민사소송법은 문서 제출 명령을 신청하려면 문서 목록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도록 돼 있었기 때문에 ‘흡연의 유해성, 중독성을 연구한 자료 일체’ 같은 포괄적 표시로는 신청 자체가 불가능했던 것. ‘공개된 적이 없는 자료의 목록을 특정하라니….’ 원고측은 잠시 허탈감에 빠졌지만 곧 바로 우회 전략을 구상했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 의거한 정보공개 청구소송이 그것이었다.

원고측을 후방 지원하던 한국금연운동협의회는 2000년 9월 한국인삼연초연구원을 상대로 대전지방법원에 연구 문서에 대한 정보 공개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서광이 비쳤다. 법원이 연구원에 우선 연구 자료의 주요 문서 목록을 제출하도록 명령한 것이다. 이를 통해 1978년부터 2000년에 걸친 520건의 주요문서 목록이 제출됐다. 원고측은 이 기간 동안의 문서 목록 중에 제출되지 않은 것을 비롯해 1978년 이전의 목록에 대해서도 추가 제출명령을 신청,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낫?

그러나 피고측이 문서 목록 작성 중이라며 제출을 차일피일 미루던 가운데, 2001년 12월 한국인삼연초연구원이 공무원연금법의 시행 규칙이 개정되는 바람에 정보 공개 대상 기관에서 제외되는 뜻밖의 사태가 발생한다. 이로 인해 1차 정보공개 청구 소송이 취하되자 한국금연운동협의회는 2002년 8월 한국인삼연초연구원을 이어 받은 담배인삼공사를 상대로 2차 정보 공개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 법원, 464건 문서 제출 최종 명령

한국금연운동협의회와 담배소송 원고측 대리인인 배금자 변호사(뒷줄 왼쪽에서 두번째)가 16일 오전 서울지법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 최종욱 기자

대전지방법원은 이에 현장 방문 자료 열람을 허락했고, 마침내 원고측은 1978년 이후 담배 연구 문건 259건의 실체에 처음으로 다가서게 됐다. 이 때가 2003년 6월이었다. 그 내용은 이번에 원고측이 공개한 자료들과 대부분 같다. 원고측은 열람 내용을 그 節?요약해 법원에 증?자료로 제출했다.

한편 2002년 5월 13차 변론 기일 이후 정보공개 청구소송 결과를 지켜보며 한동안 중단됐던 담배 소송에도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민사소송법 개정으로 인해 문서 제출 명령 신청의 전단계인 문서 목록 제출을 신청할 수 있게 된 것. 이에 따라 원고측은 담배 소송 재판부에 문서 목록 제출을 신청했고, 법원은 피고측에 1958년부터 1999년까지 이뤄진 담배 연구 문건과 경영진 보고 자료 등의 문서 목록 제출을 명령했다.

이후 원고측은 올 2월 문서 목록상 소송과 관련성이 있는 문서 786건을 특정해 제출 명령 신청을 냈지만, 피고측은 그 중 상당수는 ‘기업 비밀’이어서 제출 대상에서 제외돼야 한다고 주장하며 버텼다. 자료 공개 과정이 파행을 겪을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재판부가 직접 현장 검증을 통해 지난 4월 30일 최종적으로 464건의 문서를 제출하도록 명령함으로써, 마침내 원고측의 ‘자료 공개 대작전’은 결실을 맺게 된다. 이후 8월 16일 기자 회견까지 3개월여의 시간은 자료 분석에 매달린 기간.

원고측 소송 대리인 배금자 변호사는 “KT&G측의 내부 자료를 공개하기까지 얼마나 험난한 과정을 거쳤는지 모른다”며 “국민 건강과 직결된 이번 소송 과정에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윤현 기자


입력시간 : 2004-08-25 21:06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