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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받는 '담배의 제국'] 담배의 제국 아성이 흔들린다
금연열풍에 유해성 은폐논란으로 엎친데 덮친격
담배퇴치운동 확산 조짐, "애연가 권리침해" 반발도






기자는 담배를 피운다. 엄밀히 말하면 흡연과 금연의 사이에서 갈대처럼 흔들리는 경계인이다.

비단 기자만일까. 지금 세상의 많은 흡연자들은 담배를 계속 피울 것인가 끊을 것인가, 모진 고민의 시절을 건너고 있을 것이다. 어떤 부류는 사방에서 압박해 들어오는 금연 운동의 파도에 떠밀려 어렵사리 ‘야만인’의 대열에서 벗어났을 수도 있지만, 또 다른 부류는 여전히 한 모금 연기의 마력에 자신의 의지가 배겨내지 못함을 곱씹고 있을 수도 있다. 이와는 달리 정반대 편에선 담배를 긍정하는 애연가들이 엄연히 세를 과시하고 있음 또한 현실이다.

정신분석학의 태두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는 평생 동안 시가를 물고 산 골초 중의 골초였다. 흡연으로 인해 말년에는 구강암에까지 걸리는 고초를 겪었지만 쉽사리 시가를 놓지 못했다. 뺨이 썩고 괴상한 치료장치를 얼굴에 대야 하는 상황에서도 그는 담배를 끊어서 얻는 ‘건강’ 대신 피워서 얻는 ‘행복’을 원했다고 한다.

기막히지 않은가. 현대 심리학의 디딤돌을 놓은 대학자가 ‘고작’ 담배 연기 때문에 생사를 건 번민을 거듭했다는 사실이. 하지만 담배는 그처럼 본질적으로 갈등을 수반한다. 이제 그 전선은 개인의 선택 영역을 벗어나 세계적으로 확대 중이고, 이 땅에서도 다양한 대결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영원할 것 같던 ‘담배의 제국’이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 국산담배 유해성 진짜 숨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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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부터 강화된 금연빌딩 제도로 인해 한국에서 담배가 설 자리가 급격히 좁아진 것은 이제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담배 한 개비 피우기 위해 눈치를 살피는 것은 물론 꽤나 수고를 해야 하는 처지가 되자 적지 않은 흡연자들은 아예 금연을 선언했다. 도처에서 부는 웰빙 바람도 흡연 습관을 버리게 만드는 만만찮은 촉매제가 됐다.

실제로 한국의 20세 이상 성인 남성 흡연율은 2001년 69.9%를 기록한 이후 2002년 60.5%, 2003년 56.7%로 불과 2년 만에 13.2% 포인트나 떨어지는 감소세를 보였다. 특히 2001년에서 2002년 사이에 10% 가까운 대폭 하락을 보인 것은 그 무렵 폐암으로 고생하던 코미디언 고 이주일씨가 초췌한 얼굴로 언론에 나타나 금연 열풍에 대대적인 불을 지핀 덕이 컸던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보건복지부와 재경부가 한동안 줄다리기한 끝에 조만간 담배 가격을 대폭 인상하기로 예고한 것도 잠재적 금연 인구의 확산을 가져오고 있다. 경기침체로 돈벌이도 시원찮은 마당에 담배 값이 오르면 그 참에 끊겠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닌 것이다.

이런 와중에 8월 16일 불거진 ‘담배 유해성 은폐 파동’은 담배를 둘러싼 전선에 새로운 충격파를 던졌다. 1999년에 제기돼 5년째 1심에 계류 중인 국내 최초 ‘묍옘寗發??원고측이 오랜 공을 들여 이날 전격 공개한 KT&G의 내부 연구자료들이 국가의 도덕성에 직격탄을 날릴 만한 사실들을 적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고측 소송 대리인 배금자 변호사와 한국금연운동협의회가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들은 과거 국가와 KT&G의 전신인 담배인삼공사, 전매청이 담배의 온갖 폐해를 알면서도 이를 의도적으로 숨긴 채 국민 건강을 돈벌이와 맞바꿔왔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배 변호사 등 원고측의 핵심 주장을 몇 가지 추려 보면, 담배인삼공사는 ▲담배 속의 비소가 폐암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을 1960년대 후반부터 인지했다 ▲담배 속 니코틴의 중독성과 유해성을 알고 있었다 ▲1960, 70년대 국산 담배가 외산 담배보다 훨씬 질이 낮고 유독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간접 흡연의 피해를 알고 있었다 등이다.

청소년이 담배의 유해성을 알리는 표를 들여다보고 있다.



모든 게 사실이라면 경천동지할 일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의무를 가진 국가가 국민의 건강과 돈을 조금씩, 그것도 눈치채지 못하게 갉아먹은 셈이기 때문이다.

배금자 변호사는 “국산 담배의 유해성에 대한 연구가 1950년대부터 시작됐고 이를 통해 담배의 수많은 해악들이 일찌감치 드러났다”며 “그럼에도 이 같은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옛 담배인삼공사나 이를 묵인한 정부는 국민을 기만한 범죄집단이나 마찬가지 아니냐”며 피고측을 맹비난했다.

그는 또 “1960년대 국산 담배는 타르나 니코틴 함량이 요즘 담배의 4배에 이르렀는데, 당시 흡연자들은 그냥 연초를 태운 셈”이라며 외국산 담배 수입을 오랫동안 불허하고 국산 담배를 장려한 정부 정책에도 화살을 날렸다.

하지만 이 같은 원고측 주장에 대한 KT&G의 견해는 사뭇 다르다. KT&G측 소송 대리인인 박교선 변호사(법무법인 세종)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소송의 쟁점이 되는 사안을 정리해 원고측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원고측이 반드시 입증해야 할 내용은 담배 제조자의 위법행위가 실제로 존재했느냐 하는 점인데, 기술력이 있음에도 저급한 담배를 의도적으로 생산했는지 여부와 담배 유해성에 대해 오로지 제조자만 알고 있었느냐 여부 등이 그것이다.”

박 변호사는 두 가지 쟁점 모두 피고측의 해당사항은 없다고 주장한다. 우선 과거 담배의 질이 낮았던 것은 기술의 한계 때문이지 의도된 것이 아니며, 또한 담배 유해성에 대한 연구결과 등도 당시 의학계나 관련 업계, 언론 등에 널리 알려진 사실을 재확인하는 수준에 불과한 것이었으므로 원고측의 ‘숨겨 왔다’는 주장은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다.

박 변호사는 또 “흡연이 폐암을 유발한다는 의학계의 주장은 ‘위험성’이 높아진다는 것일 뿐, 폐암 환자 개개인과 흡연의 인과관계가 모두 성립한다는 의미는 아니다”고 말했다.

이처럼 원고측과 피고측의 기 싸움이 팽팽한 가운데 소송 전망에서도 양측은 크게 엇갈리고 있다.

배 변호사는 “이미 공개한 자료로 피고측의 위법성은 충분히 드러난 데다 서울대병원에 의뢰한 환자들의 신체감정 결과도 흡연과 폐암의 상관관계를 입증할 것으로 본다”며 “재판부가 담배를 스스로 피운 원고들의 과실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피고를 면책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박 변호사는 “현행법상 KT&G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근거는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며 “특히 한국과 유사한 법 체제를 가진 일본에서 담배 소송을 제기한 원고들이 승소한 사례가 전무한 사실에 비춰 걱정할 것이 없다”는 반응이다.

KT&G측은 이번 소송과 관련, 법원의 판단에 따른다는 입장이지만 한편으로는 원고측의 자료 공개가 사법부에 ‘간섭’한 것이 아니냐는 불만을 나타내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새로울 것도 없는 내용을 언론에 공표함으로써 원고측이 금연 운동의 연결고리로 활용한 측면이 있다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 원고 승소 땐 유사 소송 봇물 전망

청소년 금연콘서트에서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출연자들과 함께 금연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
/김지곤 기자

법조계에서도 이번 소송은 관심榮? 일각에서는 최근 법원이 ‘이례적인 판결’을 자주 내놓는 경향에 주목, 만약 진보적인 결론이 나온다면 한 차례 후폭풍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조심스런 전망도 내놓는다. 미국의 경우처럼 담배 소송이 러시를 이루고, 정부에 책임있는 조치를 취하라는 요구가 빗발치리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정부로서도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담배 정책에 대한 전면 재검토가 불가피해지기 때문이다. 사실 원고측이 KT&G와 함께 국가를 소송 상대로 한 것은 과거 국가의 KT&G에 대한 관리 감독 책임을 묻기 위한 측면이 크지만 금연 운동 확산을 위한 ‘전략’도 없지 않아 보인다.

일부 전문가들은 세계적인 담배 규제 정책의 흐름에 맞춰, 이제 한국 정부도 담배 문제를 새롭게 볼 것을 제안하기도 한다. 담배 산업을 통한 국가 재정 충당이라는 구시대적 목적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상황 인식이다.

우리나라의 국가 주도 담배산업 장려정책은 1948년 정부 수립 때부터 재무부에 전매국이 설치됐던 역사에서 출발한다. 담배는 산업화 시대를 거치는 동안 정부 재정의 주요 재원으로 자리매김했고, 1990년대 지방자치 시대가 열린 후로는 지방자치단체의 곳간으로 거듭났다.

재경부 재정정보관리과 이웅희 사무관은 “과거 정부가 담배를 전매하던 시절에는 국가 재정의 적지 않은 부분이 담배로부터 나왔다”며 “현재도 지방세법상의 담배소비세는 재정자립도가 약한 지자체들에게 상당한 재원으로 기능한다”고 말했다.

이 사무관에 따르면 2003년 담배 산업(KT&G와 외국 회사 포함)에서 발생한 각종 세입은 대략 5조원을 상회한다. 담배 산업이 여전히 상당한 규모의 세원임에 틀림없지만, 한편으로는 한국 경제의 덩치가 크지면서 과거에 비해서는 현저히 줄어든 비중임을 나타내는 수치다. 일반회계와 특별회계를 포함한 우리나라의 1년 국세 세입 예산은 2003년 기준 114조원 가량이다.

주판알을 튕겨 보면 담배 산업의 이익보다 비용이 훨씬 많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박태규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과거 정부가 담배를 전매한 이유는 세수에서 차지하는 절대 비중이 컸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이제 세수는 줄어든 반면 환자 치료나 노동력 손실 등 사회적 비용은 훨씬 늘어나, 국가에게도 담배는 비가치재(쓸모없는 물건ㆍdemerit goods)의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담배 가격에 건강증진부담금을 많이 부과하는 방안도 논의되지만, 결국 정부가 병 주고 약 주고 하는 격일 뿐”이라며 “정부도 이젠 담배 산업의 딜레마를 정면 돌파할 때가 됐다”고 덧붙였다.


- 담배금지법안 입법청원 운동

주목되는 것은 지금 우리 사회 일각에서 박 교수가 지칭한 ‘정면 돌파’의 깃발을 든 선봉대가 조용히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담배를 이 땅에서 영원히 몰아내자는 이른바 ‘담배 금지법안’ 입법청원 운동이다.

금연 전도사 중 한 명인 국립암센터 박재갑 원장이 주도하고 있는 이 활동에 현재 60명 정도의 국회의원들이 동의를 한 상태다. 그 중엔 민병두 의원(열린우리당) 등 소문난 ‘골초’ 의원들도 적잖아 세간의 눈길을 끌고 있다.

‘담배의 제국’을 전복시키러 나선 혁명군이라고 할 만한 이들의 행보가 어떤 식으로 매듭지어질지는 아직 안개 속이다. 일부에선 현실성이 결여된 부질없는 짓이라고 폄훼하는가 하면 애연가들은 어처구니 없다며 불쾌감을 나타내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흡연자들을 쾌락과 병마라는 양날의 칼 위에 세워 놓고 쥐락펴락하던 담배가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과연 담배는 금연 운동을 넘어 퇴치 운동에까지 직면한 21세기에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김윤현 기자 unyon@hk.co.kr


입력시간 : 2004-08-25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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