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강외교 '러시아 홀대'서 방향타 수정의원외교 최우선 국가로 격상, 수출시장 다변화의 최적지

[러시아 러시] 외교·경협 파트너로 새롭게 자리매김
4강외교 '러시아 홀대'서 방향타 수정
의원외교 최우선 국가로 격상, 수출시장 다변화의 최적지


노무현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을 앞두고 정ㆍ재계를 중심으로 ‘러시아 붐’이 조성되고 있다. 정계에선 참여정부가 표방한 ‘동북아 중심국가’의 주요 축이자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ㆍ경협의 지렛대로 러시아가 새롭게 평가되면서 의원외교에서도 ‘최우선 국가’로 급부상하고 있다. 재계는 중국시장의 구조적 한계를 탈피하고 상품시장의 다변화를 위한 최적지로 러시아를 꼽고, 내로라 하는 국내 대기업의 CEO들이 앞장 서 러시아행에 나서고 있다. 특히 고구려사 왜곡을 꾀하는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 논란과 고유가시대를 맞아 러시아를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새롭게 조명받고 있는 한ㆍ러 관계의 현주소를 살펴봤다.

9월 말 노무현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은 취임 후 첫 방러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그 수준은 유감스럽게도 국빈방문(State visit)이 아닌, 한단계 격이 낮은 공식방문(Official Visit)이다. 이는 노 대통령에 앞서 국빈자격으로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 인도 대통령과 비교된다. 이는 한ㆍ러 외교의 현실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원래 한ㆍ러 정상회담은 지난해 7월로 예정돼 있었지만 청와대 국제관계 라인에서 러시아를 제치고 중국 카드를 먼저 내밀면서 러시아의 ‘홀대’를 자초한 것으로 알려진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지난 5월 러시아를 방문해 한ㆍ러 정상회담의 격을 조율했지만 끝내 ‘공식방문’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ㆍ러 관계는 1988년 소련(현 러시아)의 서울올림픽 참가와 당시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을 계기로 새로운 지평을 연 이래 92년 엘친 대통령의 서울방문을 통해 한단계 발전했고, 94년 김영삼 대통령의 모스크바 방문으로 ‘상호 건설적인 동반자관계’로 올라섰다. 그러나 러시아의 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1995년) 참여 무산과 4자회담 진행에 따른 소외감 증폭, 한ㆍ러 경협이 기대수준에 못 미치면서 양국관계는 소원해지기 시작했고, 우리가 외교의 중심축을 중국에 두면서 더욱 멀어졌다.


- 17대 국회 대 러시아 관계 중요성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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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이 이렇다보니 정부와 의회의 4강외교는 미ㆍ중ㆍ일에 집중됐고, 김대중 정부기간(1998∼2003년) 동안 의원들의 대 러시아 공식 외교활동은 고작 7회에 불과했다. 한러의원외교협의회의 활동도 상대적으로 침체됐고, 회장을 맡고 있던 민주당 이협 의원이 4ㆍ15 총선에서 낙선하는 바람에 회장부터 새로 뽑아야 할 형편이다. 부회장단 가운데는 이강두 한나라당 의원이 유일하게 살아 남았고, 열린우리당 김명섭 의원과 한나라당 박주천 의원, 간사장이었던 민주당 설훈 의원 樗?모두 낙선했다.

그러나 17대 국회에 초선이 대거(187명) 등장하고 이들 중 러시아와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의원이 늘면서 대러 의원외교도 활발해지고 있다. 특히 열린우리당 이화영ㆍ이인영ㆍ김형주ㆍ백원우 의원, 한나라당 박계동ㆍ고진화 의원, 민주노동당 이영순 의원 등이 주축을 이룬 대러외교는 ‘실용주의’를 지향, 과거 외유성ㆍ과시성을 띤 거품외교와 차별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와의 교류는 의회, 국회 연구단체, 의원 개인이나 소속 개별단체 등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의회 차원의 외교는 7월31일∼8월3일 열린우리당 임채정 위원장을 비롯해 국회 통일외교통상위 소속 여야 의원들이 모스크바를 방문, 로시닌 외무장관 대리, 메젠체프 상원 부의장, 코사체프 하원 외냅㎰坪?등 러시아 정계 중진들과 양국 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당시 코사체프 외교위원장은 러시아 하원대표단이 11월초 서울과 평양을 방문한다는 방안을 밝혔고 임 위원장이 초청장을 전달하겠다는 뜻을 전해 의원외교의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7월29∼31일에는 한국의 한반도재단과 러시아 극동연구소, 카네기재단 동아시아섹터의 공동주최로 모스크바에서 한ㆍ러 국제학술회의가 열렸다. 한국측에선 열린우리당 이인영ㆍ이철우ㆍ김형주ㆍ백원우 의원과 백준기 교수(한신대) 등 10명이, 러시아측에서는 6자회담 러시아 수석대표인 알렉세예프, 마쩨고라 炳ズ?한국과장, 비헤예프 카네기재단 동아시아섹터소장 등 정책당국자, 교수, 언론관계자 등 30여명이 참석했다.


- 줄 잇는 러시아 의원외교

양국 관계자는 러시아의 대 한반도 정책, 6자회담에서의 러시아 역할, 철도(TKR, TSR) 및 에너지 문제, 러시아 이주 140주년을 맞는 고려인에 대한 정책과 지원 문제 등 주로 양국의 현안을 다뤘다. 학술회의를 주도한 한반도재단 동북아연구소장인 이인영 의원은 “중국, 일본이 역사ㆍ지정학적으로 공존ㆍ공영하는데 갈등의 소지가 있는 반면 러시아는 상대적으로 그러한 여지가 적고 경제나 외교 등에서 상호 협력적인 동반자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며 “양국 의원들이 젊어 통하는 데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7월6∼9일에는 열린우리당 강봉균ㆍ이화영 의원과 황두연 통상교섭본부장, 석유ㆍ가스 관련 공사 임원 등이 러시아 전략문제연구소와 함께 모스크바에서 한ㆍ러간 경제협력 세미나를 열기도 했다.

8월19∼22일에는 국회 연구단체인 ‘한민족평화네트워크’주최로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제1회 동북아의원 평화포럼’이 열렸다. 이 포럼에는 ‘한민족평화네트워크’공동대표인 열린우리당 이영화 의원과 한나라당 고진화 의원을 비롯해 열린우리당 김형주ㆍ이기우ㆍ조정식 의원, 한나라당 박계동 의원, 민주노동당 이영순 의원 등이 참석했다.

이화영 의원은 “포럼을 통해 러시아 관계자들과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의 상호관계에 공감하고 동북아의원평화네트워크에 참여하기로 했다”면서 “한반도와 러시아ㆍ중국ㆍ일본이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연해주는 동북아 평화의 상징적인 지역이고 고려인의 터전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라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9월말 연해주에서 있을 고려인 이주 140주년 기념식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박계동 의원은 시베리아와 극동지역 개발을 다루는 ‘바이칼 경제 포럼’에 관심이 많아 9월14∼17일 이르쿠츠크에서 열리는 제3차 바이칼 경제 포럼에 참석할 예정이다. 박 의원은 “한반도의 미래와 관련해 경제, 외교, 에너지 등에서 러시아만큼 중요한 나라도 없다”면서 “그러나 우리 정부는 미ㆍ중ㆍ일에 치중, 러시아의 가치를 간과해왔다”고 지적했다. 이 포럼에는 동북아 에너지의 중요성이 증대되면서 일본과 프랑스 고위 관계자도 참석하고 한국에선 이인영ㆍ이화영 의원, 에너지 전문가인 윤갑구 에이스기술단 대표 등이 참가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국회 연구단체 중 국회21세기동북아평화포럼(대표 장영달), 국회의원외교연구모임(대표 유재건), 동북아연구회(대표 신계륜), 21세기동북아연구회(대표 권철현) 등도 러시아 의원들과의 교류를 추진하고 있어 한ㆍ러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의 외교는 더욱 활성화할 전망이다.


- 균형적 외교관계 정립 필요

물론 정치권의 과도한 러시아행을 경계하는 소리도 있다. 러시아 문제 전문가인 양승함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는 대러 외교와 관련, “한반도 주변 4강 중 러시아는 3개국에 비해 비중이 떨어진다”고 전제, “러시아는 북핵문제의 중재자 역할과 시베리아 자원 등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지만 러시아의 대한반도 정책은 대미ㆍ대중국 외교에서와 마찬가지로 ‘균형 외교’라는 점을 인식해 우리도 러시아에 경도되는 것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경고했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4-09-02 15:27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