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핵물질 실험 의혹으로 '한반도 핵'에 세계 이목 집중핵무기 초보기술 확보단계 관측, 남북 '핵 주권' 목소리 커져

[한반도 핵]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까?
한국 핵물질 실험 의혹으로 '한반도 핵'에 세계 이목 집중
핵무기 초보기술 확보단계 관측, 남북 '핵 주권' 목소리 커져


IAEA 사찰단이 사찰하게 될 한국원자력 연구소

지난 9월 4일 뉴욕타임스(NYT)는 한국의 핵무기 개발과 관련한 흥미로운 보도를 했다. 한국이 1970년대 초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을 추진했던 사례와 최근의 한반도 핵 사태를 비교하는 기사였다. 특히 눈을 끄는 대목은 “미국 내 한국인 핵 과학자가 한국의 핵무기 개발을 도와 주려다가 의문사했지만, 종국에는 남북한이 공동으로 핵무기를 개발해 일본의 공격을 격퇴한다는 줄거리의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가 한국에서 10년 전 베스트 셀러가 돼 300만부 이상 팔렸다”고 소개한 부분이다.

그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가 요즘 다시 화제다. 북한 양강도 폭발설과 한국의 핵 물질 실험 의혹으로 ‘한반도 핵’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것이 직접적인 배경이지만 ‘핵 주권’에 대한 국민적 관심사도 적잖게 작용한 까닭이다.


- 강대국 논리에 족쇄 채워진 핵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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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무궁화 꽃(핵무기)은 남북한 어느 곳에서도 아름답게 피지 못하고 있다. 남한에선 파종 자체가 금지돼 있고, 북한은 꽃을 피웠지만 주변의 감시와 협박 속에 제거를 강요 당하는 ‘악의 꽃’ 취급을 받고 있다.

그러나 국제 역학 관계에서 주변 강대국 눈치를 보지 않고 완전한 독립국이 되기 위해서는 ‘무궁화 꽃을 피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만만찮다. 한반도 비핵화 논리도 강대국 중심의 체스게임에서 걸림돌을 제거하자는 장치일 뿐, ‘핵 주권’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점증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한반도에 무궁화 꽃이 피어날 가능성은 있는가. 북한은 그 개화 속도에서 한국보다 훨씬 앞서 있는 상황이다. 원자력을 평화적으로 이용하는 시설과 핵무기를 만드는 시설은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지만 한국은 전자에 국한돼 있고, 북한은 후자쪽에 비중을 두고 있다.

인공위성 논란이 있었던 북한의 대포동 1호 미사일 발사 모습

한국이 무궁화 꽃을 피우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다. 72년 9월부터 시작된 핵무기 개발은 크게 두 방향으로 나뉘어 핵폭탄과 핵폭탄 운반체인 미사일 개발은 국방과학연구소(ADD)가 맡고, 핵폭탄의 연료가 되는 플루토늄 생산을 위한 연구용 원자로와 핵연료 재처리 시설의 확보는 원자력연구소 특수사업부에서 담당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고순도 플루토늄을 얻기 위한 연구용 원자로와 재처리시설은 각각 캐나다(NRX연구로)와 프랑스(SGN사)를 통해 진행했고, 핵폭탄 제조와 기폭 기술은 연구진이 프랑스에 있는 핵폭탄제조연구소 등에서 계속했다.

미사일 제조기술은 주한미군에 배치된 나이키 허큘리스(NH)를 생산하는 맥도널 더글러스사를 통해 개발을 진행하다 76년 12월 ‘대전기계창’이란 이름의 유도탄연구소가 설립되면서 독자 개발로 나아갔다

순조롭게 진행되던 핵무기 개발은 1974년 5월 인도의 핵실험 성공에 충격을 받은 미국이 압력을 가하면서 75년 NRX연구로 판매 협상 중단, 같은 해 12월 프랑스 재처리시설 포기 등 급제동이 걸렸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76년 핵무기 개발을 재추진했고 77년 1월 미 카터 대통령 취임 후 주한 미군 철수가 가시화하자 미국에 있는 한국인 두뇌들을 불러 들여 핵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79년 10월 박 대통령이 서거하고 12ㆍ12 쿠데타로 등장한 전두환 정권이 미국의 지원과 쿠데타 정당성을 추인받기 위해 핵개발을 포기하면서 한국의 핵무기 개발은 물거품이 됐다.

현재 한국의 핵무기 개발 수준은 최근 핵물질 관련 실험을 두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견해차를 보인 데서 알 수 있듯 초보단계라는 게 중론이다. 무궁화 꽃이 제대로 피기 위해서는 △우라늄이나 플루토늄과 같은 핵물질 확보 △핵물질 농축 △핵폭탄으로 가공ㆍ제조 △미사일 개발 등이 종합岵막?이뤄져야 가능하다. 국내 원자력 전문가들은 그 동안 우라늄 분리, 플루토늄 추출, 우라늄 정제 실험을 한 것이 밝혀진 것을 근거로 “핵무기를 만드는 수준까지는 오르지는 못했지만 초보적인 기술은 확보한 셈”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 북한, 핵개발에 충분한 토양

이에 반해 북한은 무궁화 꽃을 피우는 데 적극적이고 충분한 토양을 갖췄다는 평이다. 1956년 옛 소련과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협정’을 체결한 것을 계기로 핵개발에 나선 이래 1967년 영변에 원자력 연구 단지가 조성되면서 가속도가 붙었다. 75년에서 87년까지 재처리 공정 개발을 마쳤고 86년에 완성된 연구용 원자로는 연간 7kg의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데 매년 1개의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양이다.

북한 핵시설

5MW 원자로에서 94년에 인출된 8,000개의 연료봉을 재처리하면 6개월 내에 약 17~27kg의 플루토늄 추출이 가능하며, 이것으로 2~6개의 핵무기 제조가 가능하다. 재작년 12월 21일 제네바합의에 따른 핵동결 조치가 해제돼 북한은 8,000개 연료봉을 바탕으로 핵무기를 대량 생산할 수 있어 국제 사회를 긴장시키고 있다.

핵무기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미사일 개발의 경우, 한국은 78년 9월 사거리 180km의 ‘백곰’시험발사에 성공한 이래 2001년 미국과의 협상에서 ‘미사일 정책선언’을 통해 300km 이하의 미사일 개발에 동의를 받아냈다.

그러나 그 이상은 연구용으로만 가능하다는 족쇄에 묶여 있다. 반면 북한은 스커드 미사일 B형(사거리 500km)ㆍC형(사거리 500km)을 비롯해 93년에 발산된 노동 1호 미사일은 사거리가 1,000 ~ 1,300km에 이르고, 98년 8월 31일 시험발사, 인공위성 논란이 있는 대포동 1호 미사일은 사거리가 2,000km에 이르는 등 한국에 월등히 앞 서 있다.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 민족 공조에 근거해 남한은 플루토늄을 내 놓고 북한이 이를 재처리ㆍ가공해 핵무기를 개발하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미국이 북한 핵을 공격하는 현실 상황과는 동떨어진 내용이지만 핵 주권과 남북 공조, 한반도 비핵화 등에서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있다는 평이다. 특히 중국의 동북공정, 미ㆍ중의 패권주의 심화, 일본의 군사 재무장 등 한반도 주변 상황이 남북한을 압박하는 형태로 진행되는 것에 비쳐 무궁화 꽃을 피운 ‘민족 공조’는 공통 분모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국제문제 전문가들은 최근의 한반도 상황이 20세기 초 제국주의 시대와 유사하다는 것을 근거로 한반도가 주변 4강에 휘둘리고 있는 패러다임에서 탈피하기 위해서는 남북한이 핵 문제를 포함해 주체적인 교류를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반도의 지형을 좌지우지하는 미국과 중국의 편가르기를 넘어설 수 있는 지혜를 남북한이 공유할 때 비로서 무궁화 꽃의 맹아가 움틀 것이라는 지적이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4-09-23 13:33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