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울한 현실 헤쳐가는 베이비 붐 세대사회적 간극의 소용돌이 잠재울 집단의 잠재력 보여줘야

[한국의 40대-특별기고] 안개 속에서 희망을 노래했던 소외된 그림자의 그들
암울한 현실 헤쳐가는 베이비 붐 세대
사회적 간극의 소용돌이 잠재울 집단의 잠재력 보여줘야


"(한국의) 베이비 붐 세대는 이제 40대를 지나가고 있다. 대학시절에는 인간답게 사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의욕에 불타 거리로 나섰고, 민주화가 정착되자 가장 먼저 분배의 정의를 요구했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혹심한 경쟁을 겪어야 했던 세대, 경쟁에서 겨우 살아 남고 보니 구조 조정 바람을 타고 가장 먼저 가장 광범위하게 조직에서 퇴출 되고 있는 세대가 바로 베이비 붐 세대이다. 이 베이비 붐 세대의 분노가 또 다시 폭발하면 우리 사회는 또 어떤 상황으로 몰려갈지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다."

"(미국의) 베이비 붐 세대는 세상을 향해 록 뮤직을 선사했고 부모에게는 VCR을 선물했다. 마이크로칩과 초코칩을 소비했고, 린다 론슈타트와 데이비드 스토크만 그리고 다이앤 키튼과 스티브 ?스를 사랑했다. 전후 20여년에 걸쳐 태어난 7,600만 베이비 붐 세대는 수적으로 엄청난 다수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매우 예외적인 세대요, 끊임없이 사회 변동을 추동해 온 엔진 역할을 담당해왔다는 점에서도 기억되어 마땅한 세대이다."

앞 글은 1998년 발표된 주요 일간지 기자의 독백이요, 뒷 글은 1980년 출간된 미국 저널리스트의 베이비 붐 세대에 관한 기록이다. 최근 들어 새삼 40대 한국의 베이비 붐 세대에 대한 관심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음을 감지하고 보니, 동일한 베이비 붐 세대를 향한 사회적 평가의 판이함에 눈길이 간다.

인구학자들은 베이비 붐 세대를 일컬어 '거대한 도마뱀 속 돼지'(pig in a python)라 칭한다. 이들 돼지 부대가 생애 주기(life cycle)를 지나갈 때면 사회는 절대 다수 집단이 필요로 하는 욕구를 해결해 주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왔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실제로 미국의 베이비 붐 세대에게는 수적 다수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사회적 무드를 지배해 왔다는 평가가 주어져 왔다.

곧 베이비 붐 세대가 10대를 지나던 60년대는 '반항의 시대'로, 젊은 청년기에 진입하던 70년대는 '방향성 상실의 시대'로, 30대 성인이 된 80년대는 '이기적 Me 세대'로 규정되면서 시대 분위기를 조성해갔다는 것이다. 이어 90년대 이후로는 베이비 붐 세대가 중년의 위기 및 노년기로 접어 들면서 80년대의 낙관적 분위기를 비관적 분위기로 반전시켜갔다는 평가가 내려지기도 했다.


- 슬픈 샌드위치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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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한국의 40대 베이비 붐 세대는 '386세대론'의 집중 조명에 밀려, 수적 다수 집단임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인 사회적 조망을 받지 못한 채 '소외된 그림자 세대'의 성격에 머물러왔음을 부인하기 어려울 듯 하다. 덕분에 운동권 386세대가 정치권의 '젊은 피 수혈론'과 맞물리면서 실질적인 파워에 근접해가는 동안, 40대 베이비 붐 세대에겐 '이름 없는 40대' '사오정' '낀 세대' '철도 들기 전 망령 난 세대' 등 패배적이고 자조적인 명칭이 부여되어 오지 않았던가.

그러고 보니 잠시 거론되었던 H세대의 '샌드위치 세대적'의 속성이야말로 40대 베이비 붐 세대의 자화상을 일목요연하게 담고 있는 듯도 하다. H세대란 살아 온 날과 살아갈 날이 비슷한 인생의 중간(Half)에 서 있는 그 세대는 기혼자라도 다시 반쪽(Half)이 되고 싶은 세대자. IMF 위기의 어려움(Hard)을 어느 누구보다 진하게 겪어낸 세대요, 가정과 직장에 막중한 책임(Heavy)을 느끼는 세대요, 컴퓨터ㆍ인터넷ㆍ외국어 회화 등을 미처 익히지 못해 복잡하고 분주한 머리(Head)에다 무엇인가에 쫓기듯 모든 일을 서둘러 성취하고자 조급(Hurry)해 하지만 확실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주저(Hesitate)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또 현실이 절망적이라도 부정적이거나 패배주의에 빠져 있지만은 않아, 가정과 직장을 먼저 생각하고 남의 아픔을 함께 느낄 줄 아는 인간성(Humanity) 풍부한 세대요,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고 자위하면서 모두에게 희망(Hope)을 갖자고 외치는 세대라는 것이다.

S. 노이만(Neuman)의 주장에 따르면 세대란 단순히 동년배 집단을 통칭하는 의미를 넘어 '공통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당대의 획기적 사건 내지 역사적 상황에 노출되었다는 사실을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집단'을 의미한다. 이에 동의한다면, 한국의 40대인 베이비 붐 세대는 전후 한국 현대사의 격동기 속을 온 몸으로 겪으며 지나왔음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 같다.

50년대 유년기에 절대 빈곤의 시대를 지나왔고, 60년대 초ㆍ중등학교 시절 '새마을 운동'의 종소리를 들었으며, 70년대 청년기에 독재정권의 전성기인 유신시대를 맞이한 40대 베이비 붐 세대는, 80년대 사회로 진출하면서 개발독재가 가져다 준 경제적 열매와 민주화의 열망 사이에서 갈등했고, 90년대 동구 사회주의의 몰락을 지켜보면서 과거 냉전과 반공 이데올로기의 잔영으로 인해 의식의 혼돈을 경험했다.


- 과밀과 과잉의 통과의례를 거치다

무엇보다 한국의 40대 베이비 붐 세대는 '과밀과 과잉의 통과의례'를 거쳐 왔다. 이는 오늘의 40대가 경험해 온 교육 현실에서 가장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베이비 붐 세대로서의 40대는 각급 학교에 진학할 때마다 진학자 및 졸업자 수가 그 이전 해에 비해 급증하는 현상을 뚜렷하게 체감한 가운데, 90명이 넘는 과밀 학급과 2부제 수업의 기억 속에서, 팽창하는 교육열을 해소하기 위한 '교육 대중화 정책'의 일환으로 중ㆍ고등학교 무시험 추첨제(중학교는 1971년, 고등학교는 1974년)의 첫 수혜자가 되었다.

그러나 고교 평준화는 교육 평준화의 이상을 실현했다기보다는 학력의 '하향 평준화'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오인의 대상이 되어왔고, 대학 진학을 위한 경쟁은 더욱 가속화되어 재수생 누적 현상과 과외 문제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부상하는 과정을 경험했다.

나아가 대학 입시에 실패하면 인생의 낙오자로 분류되는 사회 풍조에 따라 학벌주의가 공고화되는 과정을 경험한 이들 40대는, 자녀 교육을 위해서라면 과잉 투자를 아끼지 않는 '가족 공리주의'를 실천함으로써 자신들의 한을 풀고자하는 욕구를 표출하고 있기도 하다

다시 노이만의 주장을 상기한다면, 40대 베이비 붐 세대가 경험한 가장 중요한 사건은 1972년부터 시작된 '유신시대의 개막'이라 할 수 있다. 베이비 붐 세대가 경험한 바, 긴급조치 발효에서부터 대중가요 금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구사되었던 독재정권의 횡포, 당시로서는 제한된 정보에 입각하여 상황 판단이 불가능했던 '북한 공산당의 만행', 그리고 경제성장 과정에서 야기된 불평등의 확대 및 부정한 부의 축적 양식 등을 지켜보면서 베이비 붐 세대는 독재 권력과 북한 공산당 그리고 부정축재 집단에 대해 일정한 적개심과 분노를 키워갔으리라 추측된다.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당시 거리를 메웠던 이른바 '넥타이 부대'가 바로 30대 초반을 지나던 베이비 붐 세대였음은 의미심장하나, 동시에 4.19 및 6.3 세대로 상징되는 민주화 세대의 변절을 목도했고, 권력의 절대 지분이 구시대 정치인과 군 출신 인사들에게 과점된 현실로부터 오는 좌절을 경험한 세대라는 점에서 이들의 딜레마가 감지되기도 한다.

최근의 주요 선거에서 변화를 추구하는 20 - 30대와 안정을 희구하는 50 - 60대 등으로 성향이 확연히 양극화되어 가는 상황에서 '넥타이 부대'로 통해 온 40대 베이비 붐 세대의 선택이 선거의 캐스팅 보트로 작용했음은 주목할 만하다.

이 과정에서 40대는 사회적 변화를 갈구하면서도 가정의 안정을 희구하는 이중 잣대를 갖고 있기에 '충돌 세대'라는 명칭이 붙여졌으며, 이념적으로도 보수와 진보가 혼재된 세대라는 특징을 보인 것으로 평가되었다. 유권자 비율 27%대에 이르는 40대 베이비 붐 세대의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표심'이 한국의 선거에 최대 변수로 등장한 셈이다.


- 성장의 환희와 위기의 고통을 겪다

한편 40대 베이비 붐 세대의 경제적 지위는 가속화된 경제 환경의 변화로 인해 롤러 코스터를 타는 듯한 경험을 해 왔다고 보아 무리가 없을 것이다. 한국의 베이비 부머들이 사회에 진출할 무렵인 19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반에 이르는 시기는 한국 경제가 고도성장기를 거치면서 3저 호황을 누리고 있었던 덕분에 대기업 및 금융시장의 인력수요가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1997년 IMF 위기를 지나면서 경제적 안정성에 관한 베이비 붐 세대의 전망은 급격히 반전하였다. 현재 40대를 지나가는 베이비 붐 세대(남성)는 전체 경제 활동 인구의 32.8%, 취업자의 33%를 차지할 만큼 비중이 높은 집단인 동시에 구조 조정 및 정리 해고로 인한 실업의 위기를 온 몸으로 부딪치고 있는 집단이기도 하다.

'사오정'으로 상징되는 이들 베이비 붐 세대의 실업 문제는 인구 구조적 요인에 의해 증폭되고 있?바, 한국의 인구 구조는 피라미드형에서 30, 40대 중간 연령층이 두꺼워지는 항아리형으로 변했으나, 기업 조직은 여전히 피라미드형이어서 이들에 대한 조기 퇴직 압력이 다른 연령층에 비해 거세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전망은 이미 현실로 나타나 현재 과장­ㆍ차장급들로 회사 내에서 한창 일할 40대 '허리 세대'는, 위로는 승진에 대한 불안과 해고 가능성에 직면해 있고 아래로는 신세대 후배들과의 문화적­ㆍ정서적 단절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

특히 1997년의 IMF 위기는 베이비 붐 세대에게 치명적 결과를 야기했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당시 40대 초반 ~ 30대 후반을 지나던 이들은 가장으로서 경제적 기반을 미처 확립하지 못한 상태에서 교육비 부담이 가장 큰 생애 주기에 직면해, 그 어떤 연령집단보다 구조 조정 및 정리 해고의 부정적 여파를 강하게 경험하였다.

더 더욱 베이비 붐 세대는 앞으로 '중산층의 쇠퇴' 및 계급 구조의 양극화 현상을 목격하는 동시에, 부모 부양의 이데올로기를 고수하고 있는 마지막 세대로서 또 다른 경제적 부담의 위기를 경험하게 될 것으로 짐작된다. 곧 출산 파업과 고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됨에 따라, 부모 세대의 부양을 책임진 베이비 부머들의 고충이 짐작되는 동시에, 베이비 붐 세대 자신이 노년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에 이르렀음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제 한국의 베이비 붐 세대도 수적 다수 집단으로서의 잠재력을 확인하기 위한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다. 오늘의 40대 베이비 붐 세대가 타결해야 할 사회적 화두는 '급격한 변화 속 전통 – 근대 - 탈근대의 공존으로 인한 혼란'과 '이념 대립 등 사회적 간극의 확대로 인한 불안'이라 하겠다.

이 소용돌이 속에서 수적 다수 집단으로서의 베이비 붐 세대가 사회구조적 전환의 폭발력 및 시장의 동력을 좌우할 잠재력을 보유한 집단으로 자리매김 되는 동시에, 자신들에게 주어진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다한다면 한국사회의 성숙도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교 교수
1959년 출생. 이화여자대학 사회학과ㆍ동대학원 졸업, 미국 에모리대학 졸업(박사). 현 이화여자대학 사회학과 교수. <사랑을 읽는다> <여자들에게 고함> 등 출간

입력시간 : 2004-10-14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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