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사법·행정 3부와 구별되는 제4의 헌법수호기관

[행정수도 이전 위헌 파문] 헌재의 힘, 정권을 흔들다
입법·사법·행정 3부와 구별되는 제4의 헌법수호기관

헌법재판소가 21일 신행정수도특별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림으로써 수도 이전은 사실상 백지화됐고 국토개발계획도 전면 수정이 불가피하게 되는 등 큰 파장이 뒤따랐다. 지난 4월 국내 정치 지형에 엄청난 충격파를 던졌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에 이은 것으로 '헌재의 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셈이다.

이처럼 헌재의 판결이 잇따라 현실 정치는 물론 국가 기반, 국민 의식에 커다란 직접적 영향을 주면서 헌재의 존재, 그 지위는 무엇이며 나아가 헌재의 권한은 어디까지 미치는가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우리 헌법상 헌법재판소는 1948년 제헌헌법의 헌법위원회가 1960년 헌법 개정에서 헌법재판소로 바뀌면서 처음 등장했다. 위헌법률심판, 권한쟁의심판, 정당해산심판, 탄핵심판, 선거소송심판 등을 담당했다. 이후 헌법에서 헌재의 권한은 대법원과 헌법위원회로 분산됐고 1987년 개정 헌법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헌재의 지위와 관련해서는 입법ㆍ사법ㆍ행정 3부와의 관계가 쟁점이다. 현 정부와 여당은 지난 21일 헌재 결정 후 헌재의 3부에 대한 우월적 지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김병준 대통령정책실장은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헌재의 결정은 국회의 입법권에 대한 새로운 제약이라는 측면에서 대의민주주의와 입법부의 권능에 대한 중대한 질문을 제기했다”고 비판했다.

열린우리당 김현미 대변인도 상임중앙위원회 브리핑에서 “대한민국 성문헌법에 따라 국회가 제정한 법률이 관습헌법에 의해 무력화되었다"며 ”국민의 대표 기관인 국회가 이제 무엇에 따라 어떻게 법률을 제정하고 개정할지 참으로 난감하게 되었다. 의회주의와 대의민주주의가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고 헌재를 강하게 비난했다.

그러나 헌법 전문가들은 헌재가 입법ㆍ사법ㆍ행정의 3부의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된 기관으로 형식적으로는 대등한 관계이지만, 헌재의 권한 행사 과정에서 우월적 지위가 인정된다고 보고 있다.

- 독립기관으로 3부에 대한 우월적 지위 인정

허영 명지대 초빙교수는 “헌재는 최후의 헌법수호 기관으로 법률행위나 행정행위, 사법행위 등을 통해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되는 것을 막고 헌법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보루이자 강력한 권력통제기관”이라고 강조했다. 전종익 헌재 헌법연구관도 “헌재는 사법부에 속하지 않는 독립된 헌법기관”이라면서 “통상적인 3권 분립으로 분류할 수 없고, 헌법에 정해진 권한을 행사하는 기관”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전통적인 3부와는 구별되는 제4의 헌법수호 기관이라는 의미다.

헌재의 권한과 관련, 현재 헌법은 제6장에서 △법률의 위헌 여부 심판 △탄핵 심판 △정당해산 심판 △국가기관ㆍ자치단체 상호간 권한쟁의 심판 △헌법소원 심판 등 5가지를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다.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한 헌법소원 최종 심리 결과가 선고될 21일 헌법재판소에서 방청객들이 입장권을 기다리고 있다.

헌재는 입법부가 만든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를 심사하고,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단하는 경우에 그 법률의 효력을 잃게 하거나 적용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 형벌 또는 보통의 징계절차로는 처벌하기 곤란한 고위 공무원이나 특수한 직위에 있는 공무원이 맡은 직무와 관련하여 헌법이나 법률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였을 경우 그에 대한 소추를 통하여 당해 공무원을 재판으로 파면하거나 공직에서 물러나게 할 수 있다. 노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은 대표적인 예다.

또 국가권력이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경우에 국가권력의 행위가 헌법에 위반되는지를 가려내어 그 행위의 효력을 제거할 수 있다.

1989년 9월부터 올해 8월말까지 헌재에 접수된 사건은 모두 1만 377건으로 그 중 9,762건이 처리됐다. 이를 사안별로 구분하면 헌법소원이 9,303건으로 가장 많고, 위헌법률 심판이 495건, 권한쟁의 심판과 탄핵 심판이 각각 16건과 1건이다.

결정 내용을 살펴보면 9,363 건 중 ‘각하’가 4,718건으로 절반 가량을 차지했다. ‘기각’ 3,222건, ‘합헌’ 801건, ‘위헌’ 257건, ‘인용’ 210건, ‘헌법불합치’ 79건, ‘한정위헌’ 44건, ‘한정합헌’ 28건 순이다.

- 관습헌법 논란 계속될 듯

한편 신행정수도특별법 위헌 결정과 관련해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아무래도 ‘관습헌법’의 인정 여부이다. 헌재 8명의 재판관은 이를 헌법의 핵심 부분으로 인정한데 반해 전효숙 재판관은 당위규범으로서의 관습헌법을 부인했다.

헌법학자들 사이에서도 견해가 갈려 최대권 서울대 명예교수(헌법학)는 “헌법의 핵심을 이루는 관습헌법은 성문헌법에 준하는 효력이 있기 때문에 헌재가 이를 위헌법률 심판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고 주장한 반면, 장영수 고려대 교수(헌법학)는 “관습헌법이 위헌법률 심사의 근거가 될 수 있지만 성문헌법의 보충적ㆍ보완적 효력이 있을 뿐”이라며 “헌재가 관습헌법에 근거해 헌법개정 문제를 성문헌법과 동일시 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 소수 의견 낸 전효숙 재판관
"관습헌법 당위규정 인정은 논리적 비약"
위헌결정에 유일하게 '각하'의견, 최초 여성 헌법재판관

전효숙 헌법재판관은 신행정수도특별법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8명의 재판관이 위헌 결정을 내린 가운데 유일하게 '각하'의견을 냈다. 헌법 개정 과정에 필수적인 국민투표권(헌법130조)과 국가 중요정책에 대한 국민투표권(헌법 72조)을 침해했다는 다른 재판관들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전 재판관은 각하 논거에서 "서울이 수도라는 관행적 사실에서 관습헌법이라는 당위규범을 인정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며 설령 관습헌법이라 해도 반드시 헌법 개정을 통해 결정해야 할 사항이라고 단정할 수 없으므로 청구인들의 국민투표권 침해 주장은 부적법하다"고 주장했다.

전 재판관은 2001년 여성으로서는 두번째로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된 뒤 서울고법 형사부장판사를 거쳐, 지난해 헌정 사상 최초로 여성 헌법재판소 재판관에 임명됐다.

전 재판관은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판결을 많이 내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7년 검찰의 무리한 구속 수사로 남편이 자살하는 등 가정 파탄을 겪은 여성에게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결을 내려 무분별한 구속수사 관행에 경종을 울렸으며, 1998년에는 제일은행 소액주주들이 부실 경영진을 상대로 낸 400억원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부실 경영진은 배상해야 한다'는 첫 판결을 내림으로써 소액주주의 권리찾기에 주요한 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같은 해 여성의 법적 지위 향상을 위해 서울지법 안에 여성법 연구회를 만들었다.

전 재판관은 노무현 대통령, 안대희 전 대검 중수부장과 사시 17회 동기이며, 남편 이태운 서울중앙지법 민사수석부장판사와의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 헌법재판관 9인은 누구인가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모두 9명이다. 9인의 재판관은 대통령, 국회, 대법원장이 각각 3인씩 추천해 대통령이 임명하게 되는데 현재 윤영철 헌법재판소장, 송인준ㆍ주선희 재판관은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 대통령 몫으로 임명되었으며, 권성ㆍ김효종ㆍ이상경 재판관은 국회에서 추천됐다.

김영일ㆍ김경일ㆍ전효숙 재판관은 최종영 현 대법원장이 지명한 경우다. 국회 추천 재판관 3명 가운데 이상경 재판관은 민주당, 권성 재판관은 한나라당, 김효종 재판관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공동 추천했다.

신행정수도특별법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윤영철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8명은 '위헌' 의견을, 전효숙 재판관은 유일하게 '각하' 의견을 냈다. 윤영철 소장 등 다수 의견은 위헌의 근거로 "서울이 수도라는 것은 핵심적인 헌법사항이자 국민의 근본적 결단으로 명백한 관습헌법인 만큼 이전을 위해서는 헌법 개정이 필요한데 이러한 절차를 밟지 않아 헌법 130조의 헌법개정을 위한 국민투표권을 침해했다"고 밝혔다.

'위헌'의 소수의견을 낸 김영일 재판관은 "수도 이전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국가 안위에 대한 중요한 정책이므로 헌법 72조(대통령의 국민투표부의권)에 따라 입법 목적과 정신에 위배되지 않아야 하는데 대통령이 수도 이전 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치지 않은 것은 재량권을 일탈 남용한 것으로 72조에 위반되는 위헌"이라고 했다.

반면 ?逑構?'각하' 의견을 낸 전효숙 재판관은 "서울이 수도라는 관행적 사실에서 관습헌법이라는 당위규범이 인정되기 어렵고, 설혹 관습헌법이라 해도 그것의 변경에 헌법 개정이 필수적이지 않고 국회 입법으로 가능하다"고 봤다. 또 "72조상의 국민투표 여부는 대통령의 재량사항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김경일 재판관
60세, 광주, 광주일고ㆍ서울법대, 사시 8회, 전주ㆍ수원 지법원장, 최종영 대법관 임명(2000년)
김영일 재판관
64세, 서울, 경기고ㆍ서울법대, 사시 5회, 창원ㆍ부산지법원장, 최종영 대법원장 임명(1999년)
송인준 재판관
60세, 충남 대덕, 대전고ㆍ서울법대, 사시 10회, 대검 강력부장, 대구고검장, 김대중 전 대통령 임명(2000년)

권성 재판관
63세, 충남 연기, 경기고ㆍ서울법대, 사시 8회, 청주지법원장, 서울행정법원장, 한나라당 추천 임명(2000년)

이상경 재판관
59세, 경북 성주, 경북사대부고ㆍ중앙대 법대, 대구지법원장, 부산고법원장, 민주당 추천 임명(2004년)
전효숙 재판관
53세, 전남 승주, 순천여고ㆍ이화여대 법대, 특허법원 부장판사, 서울고법 부장판사, 최종영 대법원장 임명(2003년)
김효종 재판관
61세, 충남 조치원, 경기고ㆍ서울법대, 사시 8회, 서울지법 법원장, 법원행정처 차장, 한나라ㆍ민주당 공동 추천 임명(2000년)
주선회 재판관
58세, 경남 함안, 마산상고ㆍ고려대 법대, 대검 공안부장, 광주고검장, 김대중 전 대통령 임명(2001년)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4-10-28 16:19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