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의 외교 앞세운 미국 중심주의 강화 예상한반도 등 세계 안보상황에 변수, 국가통합 과제도

[부시 집권 2기] 힘의 부시 드세진 미국
힘의 외교 앞세운 미국 중심주의 강화 예상
한반도 등 세계 안보상황에 변수, 국가통합 과제도


세계는 향후 4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지휘하는 미국과 다시 직면하게 됐다.

9ㆍ11 이후 ‘전시 대통령’을 자임하면서 세계를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격랑 속으로 몰아 넣은 부시 대통령을 지켜 본 지구촌. 집권 2기에도 이어질 ‘테러와의 전쟁’에 우려하면서도 다른 한편 그의 일방주의가 수정될 수 도 있다는 막연한 희망을 품은 채 향후 4년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그의 재집권은 북한 핵 문제에 결정적 의미를 지닌다는 점에서 우리는 ‘부시 변수’를 대북 정책의 ‘상수’로 다시 올려 놓고 대북 로드맵을 만들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게 됐다.

부시의 재집권은 미국 정치, 세계 안보 상황, 한반도 상황 등에 대해 적지 않은 변화를 몰고 왔거나 몰고 올 것이다. 존 케리 민주당 후보와의 치열한 접전이 예상되던 상황에서 거둔 부시 대통령의 완승은 1980년대부터 보수화된 미국 사회가 9ㆍ11을 겪으며 한층 더 보수화했음을 입증, 21세기 미국 사회를 가늠하는 척도로 작용할 것 같다.

세계 안보 전략면에서 볼 때는 선제 공격 전략을 골자로 한 부시의 안보 독트린이 미 국민 다수로부터 인증을 받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부시 대통령이 당선 후 첫 기자 회견에서 “나는 테러범을 숨겨 주는 나라도 테러범과 마찬가지라는 독트린을 발표했으며, 미국 대통령이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면 그렇게 해야 세계 평화가 유지된다고 믿는다”고 말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이로써 본토 수호를 위한 미국의 선제 공력론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이며,자연 세계는 숨을 졸이면서 부시 행정부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

- 부시, 독주 거듭하며 싱거운 완승

관련기사
정·재계'부시 맨' 미 핵심부와 선 닿는 '미국통'
북한 핵, 뿌리 뽑을까?
기고-新부시 행정부의 국제관계

2004년 미 대선은 치열한 접전을 예상한 여론 조사 기관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시종일관 부시의 일방적 우세로 진행됐다. 개표 직전 플로리다, 오하이오 등 접전 지역에서 존 케리 민주당 후보가 이겨 민주당이 압승을 거둘 것이라고 점친 여론 조사 기관 조그비는 개표 직후 정반대 양상이 전개되자 혹독한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부시는 전국 총득표에서 케리 후보에게 한번도 우세를 빼앗기지 않는 독주를 거듭하면서 350만표 이상의 표차로 완승했다. 이러한 전국적인 열세로 인해 케리 후보는 논란에 휩싸였던 오하이오 논란에서 버틸 기력 조차 상실했다. 케리는 개표 막판 문제가 돼 개표가 중단된 오하이오의 잠정 투표(17만 표)를 고리로 장기 투쟁에 돌입할 수 도 있었다.

그러나 개표가 이뤄진다 해도 부시가 오하이오에서 리드하고 있는 13만 표를 상쇄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데다 전국적인 열세가 예상보다 심각하다고 판단, 하루도 채 안 돼 백기를 들었다.

전국 총득표에서 부시 후보에게 35만여표를 리드했던 앨 고어 민주당 후보가 플로리다에서 537표가 뒤져 법정 투쟁을 하던 2000년 대선과는 판이한 상황이어서 깨끗한 승복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 9·11의 위력, 전시 대통령의 승리

그렇다면 무엇이 부시의 압승을 낳았을까. 미국 정치 평론가들은 2001년의 9ㆍ11 테러가 낳은 미국민들의 불안, 안보 심리를 부시의 가장 승인으로 꼽았다. 미 언론들은 “1800년대 이후 전시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한 전례가 없었는데 이번 역시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중인 부시에게 국민들의 힘이 실렸다”며 “9ㆍ11 이후 미 본토가 공격 당할 수 있다는 악몽에 시달려 온 미국인들의 불안 심리는 안보 대통령의 이미지가 강한 부시에게 득이 됐다”고 분석했다.

선거 전략 측면에서는 적을 확실히 분리하고 동지를 결집하는 부시측 전략이 주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CBS 방송은 “부시는 승리를 위해 중도 성향 유권자들에게 손을 내밀기 보다는 보수층의 지지를 확실히 다진 가운데 동성간 결혼 등 이른바 도덕적 문제에 중점을 둔, 도박에 가까?전략을 채택했다”고 분석했다. 선거 후 보수 기독교 계층 결집에 초점을 둔 부시가 미국을 통합시키기 보다는 철저히 분열시키는 무책임한 전략을 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 분열된 미국, 보수화된 미국

대선후 부시를 싫어해 미국을 떠나려는 이민 희망자들이 적지 않다고 미 언론이 보도할 만큼 미국은 반 부시와 친 부시로 철저히 양분됐다. 반 부시 캠페인을 이끌던 ‘화씨 9/11’의 감독 마이클 무어는 “헌법상 대통령 3선이 불가능한 만큼 미국을 떠날 필요가 없다”고 너스레를 떨 정도다.

이번 선거를 계기로 미국이 갈기 갈기 찢어졌다는 사실은 부인할 여지가 없다. 2000년 대선에서 부시를 찍었던 주들은 이번에도 어김 없이 부시를 선택했고, 백인 부유층 보수층 기독교도들은 부시를 지지했다. 그 반대의 경우가 케리에게 표를 몰아 주었다.

특히 이번 선거에는 동성 결혼, 줄기세포 연구 등 종교적 색채가 짙은 이슈가 크게 부각해 보수 기독계층의 결집이 두드러졌다는 사실은 미국 사회의 보수화를 촉진하는 전환점으로도 해석되고 있다. 미국 사회의 이러한 ‘우향우’ 덕분에 공화당은 상ㆍ하원의 의석을 늘리면서 정국을 좌지우지하는 절대적인 권력을 거머쥘 수 있게 됐다.

특히 출구 조사를 통해 22%의 유권자들이 종교적 신념과 동전의 양면이라 할 수 있는 도덕적 가치를 기준으로 표심을 결정했다는 사실은 “유럽과 비교해 볼 때 미국이 ‘종교 국가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유럽 언론의 우려를 낳을 정도였다. 부시 대통령도 상황의 심각성을 감안, 승리 직후 “우리 나라는 하나이며 우리의 헌법과 우리를 한 데 묶는 미래도 하나”라고 강조했지만 반 부시 정서를 지닌 이들은 코방귀로 응수하고 있다.

- "안전한 미국 위해 테러와 싸울 것"

부시 대통령은 11월 3일 당선 연설을 통해 “동맹국들과 함께 우리 자녀들이 자유와 평화 속에서 살 수 있도록 국가가 지닌 모든 힘을 동원해 테러와 싸울 것”이라고 다짐했다. 자신을 선택한 지지자들의 요구대로 ‘안전한 미국’을 위해 집권 2기를 설계하겠다는 것이다. 부시는 또 완승을 염두에 두고 ‘국민의 뜻’을 6차례나 강조, 자신의 뜻이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임을 덧붙였다.

이는 지난 4년간 그가 견지해 온 일방주의적 외교 노선이 결코 변경될 수 없음을 시사한다. 국제 사회의 반발과 비판의 소리가 있지만, 미국민의 안전과 미국의 이해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독자 노선을 걷겠다는 천명이다. 그는 “비록 이라크 문제는 서로 다른 의견이 있고 과거 불화가 어떠했든 우리는 공동의 적에 직면해 있으며, 여타 나라에도 손을 내밀 것”이라고 말했지만, 협력의 전제는 어디까지나 미국과 가치를 공유하는가 하는 점이다.

결국 9ㆍ11 이후 비상 상황이 지속된다고 판단하는 부시는 그에 대응할 비상한 수단이라고 여기는 일방주의, 선제 공격 전략을 실천으로 증명할 것이다.

- 미국 일방주의 수정 가능성

6일 브뤼셀에서 진행된 유럽연합(EU) 정상 회담에서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점차 다극화하는 세계에서 유럽 연합은 독자성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부시 집권 2기를 맞는 심정을 밝혔다. 부시가 자신의 독트린을 강요한다면 이라크 전쟁을 반대했듯 앞으로도 미국에 반대할 수 밖에 없다는 것으로, 부시에 대한 짙은 회의가 깔려있는 반응이다.

전문가들은 시라크 처럼 부시가 집권 2기에서 지난 4년간의 안보 전략의 골격을 고수할 것이라고 예상하면서도 미묘한 변화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일방주의로 인해 미국이 세계로부터 고립됐다는 거센 비판에 시달려 온 부시로서는 반대 세력을 끌어 안을 필요가 있고, 동맹들의 협력이 절실한 이라크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변화를 시도할 것이라는 예상이 그것이다.

김성한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부시는 집권 2기를 맞아 과거보다 더욱 동맹들을 포용하는 정책을 펼칠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이는 정책의 골간을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책 추진의 스타일 변화에 국한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도 “부시의 집권 1기는 9ㆍ11이 낳은 도덕적 절대주의, 선제공격, 공세적 현실주의를 골자로 한 부시 독트린을 낳았지만, 이는 반사적이고도 실험적인 것으로 집권 2기에는 실용주의와 현실주의로 접근할 수 밖에 없다”고 점쳤다. 미 언론들도 분열된 미국을 치?歐?위해서는 통합적인 정책 추진이 절실하다고 주문하고 있는 형편이다.

- 북한의 위기인가 기회인가

이런 맥락에서 부시의 재선은 북한 핵 문제에서 호재가 될 수도, 악재로 작용할 수도 있다.

대선 선거 운동 내내 김정일과의 양자 대화는 없다고 주장해 온 부시가 기존 6자회담의 틀을 변경할 가능성이 매우 적어, 북핵 문제의 돌파구가 마련될 가능성은 불투명한 것이 사실이긴 하다. 그렇지만 한국 등 동맹의 입장을 미국이 상당부분 수용하는 자세를 취하고 북한도 부시 행정부를 상대로 본격적인 협상에 나설 경우 해결의 실마리가 찾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미국이 현재 상정하고 있는 북핵 해결 구도가 북한의 선(先) 핵포기를 전제로 한 리비아식 해법이라는 점에서 북미 양측간 골이 매우 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3차 6자 회담에서야 비로소 양측이 자신들의 카드를 꺼내 비로소 실질적 협상을 시작한 점에 비춰, 그리 비관할 필요도 없다는 지적이다. 이 밖에 미국이 줄곧 북한에 대한 선제 공격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온 점, 북한 이외에 이란 핵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 등도 한반도 해빙에는 좋은 토양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국제부 이영섭기자


입력시간 : 2004-11-11 10:28


국제부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