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 해체로 성장엔진 올 스톱"미완의 '세계 경영'에 아쉬움, '대우 해체 교훈' 간과해선 안돼

[대우 해체 5년] 백기승 전 대우그룹 홍보이사 인터뷰
"대우 해체로 성장엔진 올 스톱"
미완의 '세계 경영'에 아쉬움, '대우 해체 교훈' 간과해선 안돼


대우그룹이 해체된 지 만 5년이 지났다. 짧지 않은 시간이 흐른 만큼 ‘대우인’들의 상처도 이젠 제법 아물었을 법하지만, 대우가 남긴 잔영은 아직도 이들의 가슴에 짙게 드리워져 있다.

세간에서 ‘대우의 입’으로 통했던 백기승 전 구조조정본부 홍보이사(47ㆍ유진그룹 전무)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다른 직장의 녹을 먹는 입장임에도 여전히 대우라는 단어는 그의 가슴을 뜨겁게 만든다. 지난 2000년 ‘신화는 만들 수 있어도 역사는 바꿀 수 없다’라는 저서를 통해 대우그룹 몰락과 관련한 당시 정부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한 바 있는 백 전 이사는 지금도 그런 입장에서 한 치의 물러섬이 없다.

- "기업구조조정은 실패한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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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대우 해체와 직결됐던 기업구조조정 정책을 실질적으로 진두지휘한 이헌재 재경부 장관(당시 금융감독위원장)에 대해서는 독설에 가까운 말로 비판한다. “항간에서는 이헌재씨를 시장주의자로 말하기도 하는데, 명분만을 내세워 기업구조조정의 칼을 휘두른 사람이 어떻게 친(親)기업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투자도 부채라고 몰아붙였던 그가 경제정책 수장으로 있는 한 기업들의 투자 의욕은 살아나기 어려울 것입니다.”

단순히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해 갖는 원망 같은 감정에서 내뱉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백 전 이사는 이를 단호하게 부인했다. 국가 경제정책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는 데 대한 질책이라는 것이다. 그는 “지난 DJ 정부 때부터 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이씨가 주요 경제정책 결정권자로 버티고 있는 동안 한국 경제가 얼마나 활력을 잃었는지 한번 현실을 보라”고 말했다.

대우 해체가 갖는 의미에 대해서도 그는 ‘한국 경제 성장엔진의 가동 중단’이라는 시각을 갖고 있다. 오랜 경기 침체, 기업들의 투자 의욕 상실, 산업 기반의 공동화 등 현재 우리 경제에 패인 골은 대우 해체로 압축되는 ‘산업 죽이기’ 정책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대우가 죽는 순간, 한국 경제의 성장도 멈췄어요. 지금 경기 침체가 잘 증명해 주고 있지 않습니까. 김우중 회장이 DJ 정부의 기업구조조정 정책에 반발한 것도 대우그룹 총수 자리에 연연해서가 아닙니다. 김 회장은 ‘특정 세력의 이익을 대변하는 IMF의 요구대로 가다가는 산업의 肩“?없다’고 종종 되뇌었을 정도로 국가 경제의 앞날을 걱정했던 겁니다.”

백 전 이사는 김우중 전 회장의 야심찬 미래 사업 구상을 ‘세계 경영’이라는 슬로건으로 개념화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뜻을 제대로 펼치기도 전에 멈춰선 세계 경영에 대해서 그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한국은 내수 시장만으로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없는 근본적 한계를 갖고 있어요. 김우중 회장이 창업 초기부터 초지일관 해외로 눈을 돌리고 수출에 전력을 기울인 것도 그 때문이죠. 세계 경영을 내걸면서부터 김 회장은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을 통한 초국적 기업으로의 도약을 목표로 했습니다. 1990년대 중반 세계 경영이 순항할 때만 해도 ‘그래, 이렇게 가면 10~15년쯤 뒤에는 뭔가 이룰 수 있겠다’며 흐뭇해 하기도 했죠. 그런데 꽃을 피우기도 전에 그만….”

- 대우의 '국가 경제 기여' 재평가 돼야

어쨌든 대우의 실패와 몰락은 이미 흘러간 과거가 됐다. ‘골수 대우인’인 백 전 이사도 “너무 안타깝기는 하지만 이제 와서 되돌릴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누구에게 살려 내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무런 소망마저 없을까. 백 전 이사는 “대우 해체에서 역사적 의미와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국가 경제로 봐서도 너무 억울한 일 아니냐”며 “IMF 위기의 본질은 무엇이었으며, 기업구조조정 정책은 과연 합당했었는지 지식인들이 진지하게 성찰을 해줬으면 한다”고 주문한다.

대우가 잘못한 점이 있었囑捉?국가 경제에 기여한 공적에 대해서는 재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도 그의 바람이다. “대우 정신은 나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도덕적으로 타락한 기업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그의 한결같은 생각이다.

김윤현 기자


입력시간 : 2004-11-18 11:38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