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전술 최고의 베테랑, '군의 꽃'만개 위해 장군 진급에 인생 걸어

[盧정권과 軍 '별의 전쟁'] 별 바라기에 올 인…대령의 삶
전략·전술 최고의 베테랑, '군의 꽃'만개 위해 장군 진급에 인생 걸어

노무현 대통령이 10월 18일 청와대에서 중장 등 군 장성 진급자들로부터 시녹을 ㅏㄷ은 뒤 삼정도에 수치를 달아주고 있다. / 오대근 기자

‘군의 꽃.’ 여군으로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영관급 장교의 으뜸, 대령(大領ㆍcolonel)을 이르는 말이다. 최근 군인사 비리 의혹과 관련해 그 중심에 선 그들의 삶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우선 이들은 군 진급에서 가장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자리에 오른 인물들이다. 군별(육ㆍ해ㆍ공군)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중령에서 대령으로 진급하기 위해서는 50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는 게 이 바닥의 통설. 여타 계급 진급의 10배 이상에 해당하는 경쟁률이다.

• '병과 최고의 계급' 대령

관련기사
장성인사 비리의혹 파문
별들의 수난시대, 개혁 메스에 돌아선 軍心
대령이 ‘꽃’으로 불리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또 있다. 20년 이상의 군 생활을 통해 거의 모든 병과(육군의 경우 보병, 포병, 기갑 등)의 지휘관과 참모직 등을 두루 거치면서 갖은 경험을 쌓은 터라, 군 전반에 정통하다는 게 첫 손에 꼽히다. 군 전투력의 핵심을 이루게 되는 이들은 이쯤 되면 전략과 전술에 있어서는 베테랑 수준을 넘어 ‘신’의 경지에 이른다.

흔히들 “병과 최고의 계급”이라 불리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실제로 대령에서 준장으로 진급하면 병과는 없어지고 육군, 해군, 공군 등의 군별만 남는다. 더 이상의 병과 구분이 무의미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보통 대령으로 진급하게 되면 사단 참모장이나 동원사단 연대장(1~2년)을 거쳐 야전부대 연대장직(18개월)을 맡게 된다. 연대장직을 마치고 나면 군단 참모, 육ㆍ해ㆍ공군본부, 합참 등의 정책 부서에서 근무(2년)를 하게 되고 이 때 진급 여부를 가늠할 수 있다. 이른바 ‘장포대(장군 진급을 포기한 대령)’나 ‘장독대(장군 진급을 독하게 준비하는 대령)’으로 구분되는 시기다. 장군이 될 수 없는 ‘진급 적기 경과자’의 경우 부사단장이나 대학교 학군단장 등의 보직으로 정년(56세)까지 복무하게 된다.

치열한 진급 경쟁률 때문에 진급 심사가 있는 시즌이면 영관급 장교들이 많이 모인 국방부나, 계룡대 등의 인근 술집에서는 진풍경도 연출된다. 진급 심사 발표를 몇 달 앞두고 중령들을 중심으로 한 ‘초조주(酒)’ 모임이 바로 그것. 초조주는 말 그대로 진급 후보자들이 초조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마시는 술이다. 심사 결과 발표일이 임박한 시기에는 ‘한 테이블 건너 초조주’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들은 대령 진급에 대한 심리적 압박감을 술로 해소한다. 이후 초조주는 축하주, 위로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대령 진급이 이럴진대, 준장 진급 심사에 오른 대령들의 초조함이야 오죽하랴. 장군 진급 심사 결과 발표 전날에는 국립묘지도 들썩댄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이들도 술로 초조함을 달래기도 하지만 결과 발표일 전에 일찌감치 휴가를 내 집에서 조용히 ‘운명’을 받아 들이는 경우도 많다. 사정이 여의치 않은 경우는 당일 조퇴를 하기도 한다.” 이들을 보좌한 한 장교의 말이다.

• 소위에서 대령까지 평균 23년

국방부 청사에 주차된 장성들의 관용차. 대령들에게 장군 진급은 피말리는 경쟁에서 살아남는 서바이벌 게임이다.
‘육사 출신은 숨만 쉬고 있어도 대령까지 진급된다’는 얘기도 옛이야기가 된 지 오래다. 1964년에 임관한 육사 20기의 대령 진출률은 65.4%, 23기 때는 61.6%, 28기 때는 57.2%로 떨어졌다가 32기에 이르러 52.5%로 떨어졌고, 1980년 임관 기수인 36기부터는 아예 절반 이하로 곤두박질쳤다.

강원도 전방 부대의 한 연대장은 “소위로 임관하면서 저마다의 가슴에 ‘장군’의 꿈을 품었는데, 이제는 장군을 ‘아주 특별한 케이스’로 인식한다”며 “요즘은 대령만 달아도 상당히 만족해 한다”고 군 내부의 분위기를 전했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육군 소위에서 대령까지 평균 15년 걸리던 것이 최근에는 이보다 8년 이상 늘어난 23년이 걸린다는 국방부의 발표도 이 같은 분위기를 뒷받침하고 있다.

육군본부의 한 대령은 “미국이나 서양의 경우는 장군진급을 꺼리는 분위기다. 대령은 정년이 보장되는 데 비해, 장군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대령과 준장계급에 따른 예우 차가 그렇게 심하지 않은 것도 그 이유”라며 우리 군의 대령들이 준장 진급에 사생결단으로 달려들 수 밖에 없는 실태를 꼬집었다.

부산 군수창의 한 대령도 “그 대령과 준장의 예우 차가 현격하기 때문에 준장 진급에 ‘올인’하는 경향이 있다. 피라미드 구조의 군조직 특성상 동기들을 반드시 눌러야 올라가기 때문에, 동기로 시작해서 적으로 끝나는 경우도 많다”며 치열한 진급 경쟁에 따른 비정한 현실을 토로했다.

준장으로 진급하면 무엇이 달라지길래 대령들이 이토록 별을 다는 데 목을 매는 것일까. 우선 대령에서 준장으로 진급하게 되면 굳이 계급을 보지 않아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는 의전변화가 수십 가지가 된다는 게 군 관계자의 설명이다.

• 인생이 바뀌는 장군 진급
우선 복장이 달라진다. 금테가 달린 정모에 단화가 지급된다. 일반 장교들과 달리 가죽 허리띠와 끈 대신 지퍼가 달린 군화를 지급 받는다. 사단과 연대의 중간급 부대인 여단의 여단장 보직을 받게 되면 지휘관 군용차량 외에도 번호판 대신 성판(星板)을 단 2000cc급 이상의 승용차와 전속 운전병이 배치된다.

다른 중앙정부처의 경우, 차관급부터 전용 승용차와 운전 기사가 나온다. 이와 함께 장군이 되면 그림자처럼 따라 붙는 대위급 전속 부관과 집무실(CP)에는 당번병, 공관에는 공관병이 1명씩 나온다.

개인 화기도 45구경 권총에서 38구경 리볼버로 교체된다. 집무실 입구에도 성판이 부착되고 장군기가 게양된다. 대령과 준장의 예우 차량은 특히 부대 행사에서 확연하게 드러나는데, 매 행사 때마다 군악대가 도열해 일성곡( 一星曲)을 연주하게 된다. 이 연주는 별을 하나씩 더 달면서 2성곡, 3성곡으로 바뀐다.

별을 다는 의식, 진급식에서도 차이가 난다. 장군 진급자의 경우, 진급식을 청와대에서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 주재로 갖는다. 이때 육ㆍ해ㆍ공군이 일치 단결해 호국ㆍ통일ㆍ번영을 달성하라는 의미에서 삼정도(三精刀)라는 장검을 하사 받는다. 권위의 상징이자, 대개 가보로 대물림하는 예물이다.

일반 장교들의 식당인 장교 식당에서의 식사는 끝난다. 장군 전용 식당이 제공되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전용 이발소ㆍ화장실도 별만의 특혜다. 죽어서도 장군은 특별 대접을 받는다. 대령 이하의 장교, 부사관, 병사의 국립묘지 면적은 1평인데 비해 장군의 묘는 8평. 장군은 유해 매장이 허용되지만, 대령 이하의 군인은 반드시 화장해 유골만 묻게 돼 있다.

전역 후에도 대접은 달라진다. 대령이 5년간 매월 50만원의 연구비를 지원받는 대신, 장군들은 군사문제연구소로부터 70만원의 연구비를 받는다. 급여의 경우도 대령 때보다 높아지긴 하지만, 그 차이는 3만~4만원 수준으로 미미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장군의 진급은 명예보다는 책임이 늘었다는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전용 식당과 이발소 등의 특혜도 점점 줄어 드는 추세다. 실제로 내년부터는 가죽 허리띠와 지퍼 군화 등의 지급이 중지되고 안장될 국립묘지 면적도 1평으로 축소될 전망이어서, 장군 진급에 따른 여타 실질적 특혜가 어떻게 변화할 지에 관심이 점증하고 있다.

정민승 인턴기자


입력시간 : 2004-12-02 15:50


정민승 인턴기자 prufrock@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