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순결선언은 마음의 자물쇠를 열고 깨끗한 가치관을 갖는 것가족 앞에 떳떳한 아버지로 거듭나는 계기"비뚤어진 남성문화 바로 잡고 아버지 위치 되찾는 것"

[습관을 바꿔라]
두란노아버지학교 비전 2005 '순결 서약식'

아버지의 순결선언은 마음의 자물쇠를 열고 깨끗한 가치관을 갖는 것
가족 앞에 떳떳한 아버지로 거듭나는 계기
"비뚤어진 남성문화 바로 잡고 아버지 위치 되찾는 것"


성적으로 순결한 사람이 ‘천연 기념물’에 비유되는 이즈음, 아버지들이 순결 지키기에 나섰다. 이해달(50ㆍ지은프라스틱 대표)씨, 김학룡(43ㆍ기독교 출판유통 대표)씨, 조성현(51ㆍ세무사)씨. 40ㆍ50대 평범한 가장인 이들은 저마다 하는 일은 다르다. 그러나 가정 폭력과 외도, 이혼 등으로 붕괴되고 있는 위기의 가정을 바로잡기 위해선 아버지들이 먼저 순결하게 바로 서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 모았다.

1월 8일 서울 양재동의 두란노아버지학교(국제운동본부장 김성묵 장로)에서 열린 ‘비전 2005’ 행사에 참가한 이들은 1,000여 명의 아버지학교 수료자들과 함께 순결 서약식에 동참했다. ‘순결 서약식’이란 생소한 행사에 대한 주변의 호기심 어린 관심과,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촛불을 들고 서약을 한다는 것에 어색해 하면서도 얼굴 표정에는 엄숙함이 가득하다.

“순결 서약식을 한다고 하니 사실 조금 찔렸어요. 사회 생활을 하면서 순결을 지켜나간다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잖아요.” 이해달 씨는 이어 “그간 때로는 사업 등 특정한 목적을 위해, 때로는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순결 문제를 간과했던 적이 있다”며 “순결 서약을 통해 다시금 자아 정체성을 확립하는 계기로 삼고 싶다”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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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기혼자들에겐 애인 한 사람 두는 것이 너무 보편화돼 있어요. 모두들 집에만 걸리지 않으면 무슨 문제야 하는 식이예요. 그러면서 자녀들에게는 순결을 강요하니 모순이 아닐 수 없죠.” 스무 살 안팎의 아들과 딸을 두었다는 이씨는 “아버지의 순결 서약을 두고 아이들이 몹시 기대를 거는 눈치”라며 이번 순결 서약식에 대해 “자녀들 앞에 떳떳한 아버지로서 서는 길”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자녀들에게 백 마디 말을 하는 것보다 행동으로서 본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는 이따금 젊은이들과의 대화 속에서 성적 혼란의 위험성을 심각하게 느낄 때가 많다고도 덧붙였다.

순결은 본질로 돌아가자는 것
“얼마 전엔 갓 스무 살을 넘은 아가씨가 유부남을 만나는 건 재미없다고 하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어요. 유부남은 만나면 바로 섹스로 ‘직행’하니까 시시하다는 거예요. 기성 세대의 상상을 뛰어넘는 이렇게 당돌한 아이들을 과연 우리가 언제까지 통제할 수 있을까 더럭 겁이 났어요. 이처럼 혼탁한 시대에 아버지들이 먼저 깨끗해지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더군요.”

다소 쑥스러운 듯 순결 서약에 나선 소감을 밝힌 이씨와 달리, 독실한 기독교인 김학룡 씨의 목소리에는 힘이 들어간다. “순결하자는 건 ‘본질’로 돌아가자는 얘기인데 뭐가 이상한가요? 근본적으로 순결한 아버지의 위치를 되찾자는 것이죠.”‘이성과 육체 관계가 없음’이라는 좁은 의미로 주로 통용되는 순결(純潔)의 본래 넓은 사전적 의미는 마음에 사욕(私慾)ㆍ사념(邪念) 따위가 없이 깨끗함을 일컫는다. 김씨가 생각하는 순결은 이러한 비단 육체적인 순결에 국한되지 않은, 보다 넓은 의미에 가깝다.

“1998년 아버지학교를 다닐 때 잘못된 남성 문화 6가지에 관해 배웠어요. 가정을 등한시하면서까지 성공에 매달리는 일 문화가 그 첫번째이고, ‘남자이기 때문에’나 ‘아버지이기 때문에’라는 허구성에서 비롯된 체면 문화가 두 번째, 잘못된 음주와 그로 인해 파생되는 섹스와 폭력 문제가 다음 문제이죠. 골프나 낚시 등 지나치게 빠져 소위 ‘일요 과부’를 만드는 이기적인 레저 문화도 여기에 포함되죠. 이러한 비뚤어진 남성 문화를 바로 잡고, 깨끗한 가치관을 세우는 게 바로 순결하게 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두란노아버지학교 순결서약식에 참가한 김학룔, 이해달, 조성현(왼쪽부터)씨. 임재범 기자

이러한 아버지 학교의 가르침 덕에 “술이나 여자, 담배로부터 비교적 멀리 있었다”고 자평하는 조성현 씨도 넓은 의미의 순결 차원에서는 마냥 예외일 수는 없다는 듯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직업이 세무사라 고민이네요. 세무사를 찾는 사람들은 주로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다 보니 성적 순결 문제는 그렇게 큰 것 같지 않은데… 조금이라도 세금을 적게 내려는 탈세 분위기가 문제이죠. 사회적으로 순결을 지키려면, 사람들에게 떳떳하게 세금을 더 잘 내자고 해야 하니 부담이에요.”

더럽고 음탕한 것에서 멀리 있어야
사실 두란노아버지학교의 ‘비전 2005’가 지향하는 순결의 의미 역시 포괄적이다. 우리의 마음과 눈, 손, 입, 발, 귀가 전부 ‘더럽고 음탕한 것에서 멀리 있어야 한다’는 것. 김성묵 본부장은 “IMF 이후 두드러진 우리 사회의 총체적 위기는 도덕성의 타락과 가정의 붕괴에서 기인했다”며 “가정의 중심인 아버지들이 잃어버린 순수성을 되찾을 때 사회의 혼란도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우리 사회를 충격에 빠지게 했던 밀양 집단 성폭력 사건과 광주지역 수능 비리 사건은 김 본부장과 김학룡 씨가 공통적으로 지적한 도덕성의 몰락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어른들의 도덕적 불감증이 아이들에게까지 그대로 전파된 것이죠. 문제가 불거진 뒤에도 책임지겠다는 사람조차 없었고.”

그렇다면 아버지들이 일상 속에서 순결을 지켜나가는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순결에 대한 해석만큼이나 아버지들이 제시한 그 실천방법 또한 각기 상이했다. “먼저 가족에게 비밀을 두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사춘기를 겪으면서 자기 방에 들어가 꼭꼭 문닫고는 자기들만의 세계에 빠진다고 나무라는데, 따지고 보면 우리 부모들도 똑같잖아요. 휴대폰과 이메일에 비밀 번호 걸어 놓고, 누가 볼까 전전긍긍하고 …. 스스로 떳떳하다면 그런 ‘잠금 장치’는 필요 없을 텐데.”(이해달) “제 바람으로는 아버지들이 자원 봉사에 참여하는 풍토가 자리잡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아버지학교 졸업한 뒤 스탭 자원 봉사자로 후배들을 지원하는 일에 참여하고 있는데 그게 큰 도움이 돼요. 후배들한테는 순결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얘기하고 다니면서 저는 안 그럴 수 없으니까요.”(김학룡)

조성현 씨는 가족 화합을 중시하는 아버지학교 출신답게 가족 구성원과 많은 시간 보내기를 꼽았다. 설명만 조금 들으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아버지가 순결해지는 길은 가족을 바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이죠. 예전에는 골프를 즐겼는데 요즘에는 가족들과 함께 탁구를 배우고 있어요. 사소한 것 하나라도 가족과 함께 하는 것, 그것이 가족간의 무너진 신뢰를 바로 잡고 이해의 폭을 넓히는 길이더라고요.”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 2005-01-13 10:26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