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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친일 논란] 친일파 '더러운 땅', 되찾는다
매국의 대가로 치부한 재산 환수는 치욕의 역사 바로잡는 일



구한말 영친왕(가운데)과 함께 쵤영한 친일파의 거두 이완용(뒷줄 왼쪽에서 세번째)과 송병준(앞줄 오른쪽 끝).



올해는 해방 60주년, 을사조약 100주년이 되는 해이지만 퇴행적 역사의 그림자는 여전히 남아 있다. 최근 공개된 한일협정 관련 문건은 일제(日帝)의 잔영이 뿌리깊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드러냈고, 친일파 후손들의 끊임없는 준동은 ‘해방’의 의미를 무색케 하고 있다.

특히 친일파가 매국의 대가로 치부한 재산을 두고 후손들이 되찾겠다며 거리낌없이 나서고 사법부 또한 입법 미비 등을 이유로 국민 정서와 상반되는 판결을 고수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대표적 친일파인 이완용ㆍ송병준이 일제 때 경기도 일대에 보유했던 토지는 확인된 것만 약 95만평으로 현재 가격으로 환산하면 수 조원에 달한다는 평가다. 더 심각한 것은 그러한 토지에 대해 친일파 후손들의 재산 반환 청구소송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사한 소송은 1990년 이전에는 단 1건에 불과했지만 1990년대 23건, 2000년 이후에는 7건 등으로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완용·송병준 경기도 땅 95만평 소유
이 같은 사실은 열린우리당 최용규 의원이 1월 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에 의뢰했던 연구 보고서 ‘친일파의 축재 과정에 대한 역사적 고찰과 재산환수에 대한 법률적 타당성 연구’의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밝혀졌다. 보고서에 따르면 아직 일본인 명의로 돼있는 토지는 전국적으로 3,743만평(10만 2,483건)으로 여의도 면적의 14.7배에 달하는 규모다. 그 중 122 필지의 토지는 친일 반민족 행위자(130명) 명의(창씨명)인 것으로 밝혀졌다.

송병준 후손이 재산환수 소송을 제기했던 서울 상암동 난지도 일대. 70여만 평 중 20여만 평이 송병준 명의 토지로 확인됐고 나머지 50여만 평도 난지도 주변에 산재해 있는것으로 알려졌다.
/ 김지곤 기자



송병준의 경우 현재 소송 중인 인천 부평구 산곡동 소재 미군부대 캠프마켓 부지 13만3,000평(시가 3,000억원대) 외에 경기 고양시 등에 79만8,923평을, 이완용은 경기 광주시와 여주군 등에 14만5,098평을 소유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민족문제연구소의 백동현 연구원은 “친일파 명의로 된 토지는 전국에 수백만에서 수천 만평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며 현 시가로 수십 내지 수백 조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친일파 후손과 토지 브로커들이 친일파 명의로 돼 있는 토지를 반환받기 위해 소송에 나서고 있다. 현재 친일파 후손들이 국가나 개인을 상대로 토지 반환 소송을 제기한 것은 확인된 것만 31건이다(도표 참조). 을사오적 이완용(백작ㆍ은사금 15만원) 후손이 17건으로 가장 많고, 친일단체 ‘일진회’ 총재를 지낸 송병준(자작ㆍ 은사금 10만원) 후손 4건, 을사오적의 하나인 이근택의 친형인 이근호(남작ㆍ은사금 2만5,000원) 후손 5건, 윤덕영(자작, 은사금 5만원)ㆍ이해창(백작, 은사금 16만8,000원)ㆍ이기용(자작, 은사금 3만원, 일본 귀족원 의원)ㆍ남정철(남작, 은사금 2만5,000원)ㆍ 이재극(남작)의 후손들이 각각 1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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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재산 환수 특별법 제정 불가피
친일파 후손에 의한 재산 반환 소송이 사회적 관심사로 부각된 것은 이완용의 종손인 이윤형이 1992년 서울대학교를 상대로 경기도 고양시 소재 2만5,000평에 대한 소송을 제기하면서였다. 이 소송은 원고의 소 취하로 종결되었지만 이후 경기도 여주군과 강원도 철원읍 일대, 서울시 북아현동 일대 등의 부동산에 대한 소송에서 승소하면서 다른 친일파 후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쳐 잇따라 소송이 제기됐다. 재판 당시 항소심 재판부(1997년 서울고법)는 “친일파의 땅이라도 률웰엽鳴?없이 뺏을 수 없다”며 원고 승소 판결의 이유를 제시, 이후 친일파 후손의 재산환수소송의 전범(典範)이 되었다.

주목되는 것은 이재극 후손이 제기한 소송으로, 1심인 서울지법은 “헌법 전문에 나타난 헌법 정신에 비추어 친일 반민족 행위자의 재산에 대해 법의 보호를 구하는 것은 정의에 위배된다”며 각하 결정을 했다. 그러나 항소심은 “국가가 헌법이나 법률에 위한 뒷받침 없이 국민 감정을 내세워 재산권을 박탈하는 것은 법치 국가의 이념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이완용 증손 이윤형이 소송을 제기해 승소한 서울 북아현동 545번지 일대 (712평)



친일파 후손들의 재산 반환 소송에 대한 재판부의 경향은 ‘법률의 명문 규정 없이는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릴 수 밖에 없다’는 것으로 이를 막기 위한 ‘특별법’ 제정이 불가피함을 말해 준다. 또 친일파의 재산이 확인될 경우 국가가 시효 취득을 하더라도 1997년 대법원의 판례를 따라 소유권자에게 반환해야 하므로, 매국 행위의 대가로 형성한 재산에 대해서는 국가 몰수 조치를 할 수 있는 특별법이 필요한 상황이다. 최용규 의원이 추진하고 있는 ‘친일 반민족 행위자 재산 환수 특별법’은 그러한 배경에서 나왔다.

이 특별법은 일본 식민 통치에 협력하면서 훈작을 받거나 을사조약(1905년), 정미7조약(1907년)의 체결을 주창한 대신 등 고위 공직자를 ‘친일 반민족 행위자’로, 또한 그들로부터 상속 받거나 증여 받은 재산을 ‘친일 반민족 행위자의 재산’이라고 각각 정의하고 있다. 대통령 소속으로 ‘친일 반민족 행위자 재산 환수 위원회’를 두고 조사를 벌여, 친일 반민족 행위에 의해 형성된 재산으로 판명나면 재산을 몰수해 국가에 귀속시키도록 한다. 국가에 귀속된 재산은 독립 운동 기념 사업 또는 교육 사업에 우선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송병준 후손이 진행 중인 인천 부평구 산곡동 미군 부대 부지 반환 소송으로 피해를 입을 처지에 놓인 지역 아파트 입주자 대표 조영래(50) 씨는 “나라를 팔아 이득을 취한 땅은 그들의 재산이 아니다”면서 “하루 빨리 특별법이 제정돼 친일파의 재산을 몰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씨에 의하면 송병준 후손이 제기한 소송 대상에는 아파트 부지 일부가 포함돼 이에 따른 예고 등기(등기 원인의 무효, 취소에 의한 등기의 말소 또는 회복의 소송이 제기된 경우에 이를 제 3자에게 경고하기 위해 하는 등기)로 아파트를 매매하거나 전세, 담보 등 전혀 활용할 수 없어 주민들이 들고 일어났고 결국 송병준 후손측이 소송을 취하했다는 것. 조씨는 “정부가 강도(친일파)를 보호하면 누가 국가에 충성하겠느냐”며 “재판부도 상식적인 판결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친일파 재산 환수와 관련해서는 입법 미비 뿐만 아니라 국가재산관리제도와 국가송무제도에도 구멍이 크게 나 있어 친일의 잔당들이 활개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사회장 파장을 일으킨 ‘강두운평(江頭運平)’사건은 일본인 명의 토지를 상대로 한 재산 반환 소송으로 국가 기관이 어떤 수준으로 대처하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사기범 김 모씨 등은 서울 마포구청이 보관하고 있는 민적부를 위조해 고양시 일대 16만평(시가 1,300억원대)의 소유자 강두운평이 창씨개명한 자신의 아버지와 동일인이라고 주장, 1심에서 승소했다. 판사와 검사 누구도 이들의 사기 행각을 밝혀내지 못했지만 민족문제연구소가 강두운평은 실존 일본인이었음을 입증하는 제보를 해 사기꾼들의 손으로 넘어갔던 1,300억 원대 국가 재산을 되찾은 사건이다. 이와 관련, 최용규 의원은 “각 부처(기관)가 제 각각 취급하는 친일파 재산 문제를 일원화ㆍ체계화할 필요가 있고, 국가 송무도 전담 부서에서 다루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정의와 민족정기 바로세우는 일
현재 일제시대 토지 소유권에서 비롯되어 국유 토지를 상대로 하는 소송은 한해 평균 150여건으로, △일제시대 창씨 개명한 한국인 명의의 토지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 △일본인 명의의 토지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 △일제시대 매각된 토지를 둘러싸고 이뤄지는 경우 등으로 대별된다. 이들 가운데 친일파 후손들이 추진하는 소송도 수십 건에 이르고, 그 액수는 수 억에서 수천 억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제도의 미비와 재판부의 소극적인 판결 때문에 역사상, 국민 정서상 국가 귀속이 당연시 되는 재산이 친일파의 장롱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게 현실이?

예정대로라면 ‘친일 재산 환수 특별법’은 2월에 심의를 거쳐 4월경 국회를 통과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러나 지난해 ‘친일 진상 규명법’ 이 겪은 풍랑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정의와 민족 정기를 앞 세운 특별법과 재산 환수를 추진하는 친일파 후손들의 충돌이 어떻게 귀결될 지, 웅크리고 있던 친일 문제가 초미의 현안으로 떠 오를 4월은 폭풍 전야인 셈이다.

▲ 민족문제연구소 백동현 박사
“친일파 재산 몰수는 헌법정신,국가재산ㆍ송무제도 개선 시급”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해 10월 민족문제연구소에 친일 반민족 행위자 토지 보유 현황 등에 대한 연구 용역을 의뢰했다. 연구소 백동현 연구원(문학박사)은 이후 두 달 동안 주로 ‘친일파의 축재 과정과 해방 후 친일파 후손의 재산반환 소송’, ‘친일 반민족 행위자 재산 환수법의 법률적 타당성’ 등에 대해 집중 연구했다.

백 박사는 친일파의 재산 축적과 관련, “1905년 을사조약 강제 체결 시기에 이등박문은 300만엔(円)의 자금을 갖고 들어 와 을사오적에 뇌물을 풀어 조약 성립을 꾀했다”면서 “10만엔 이상 수령자였던 이완용ㆍ송병준ㆍ박제순 등은 을사조약 및 합방 조약 체결에 관여한 자들로, 돈은 매국 행위의 대가성이었다”고 말했다. 10만엔을 현재 환산하면 20억~70억원에 이르는 거액으로 추산된다. 그는 또 “매국형 친일파의 경우, 을사조약 전후나 한일합방 조약 과정에서 각종 은사금과 특사금 등 매국에 따른 대가성 자금이 재산 형성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그는 “매국형 친일파 후손의 재산 환수 소송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친일 반민족 행위자 재산 환수 특별법’의 제정이 시급하다”면서 “식민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매국형 친일파의 재산을 몰수하는 것은 헌법 정신을 구현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친일파 후손들의 재산 환수 소송에는 토지 브로커들이 깊이 개입돼 있는 경우가 많다”며“국가 재산 관리 제도를 일원화하고 국가 송무 제도를 체계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행정자치부가 일본인 명의 재산 중 창씨개명한 조선인 명의의 자료를 공개하는 것에 대해 “새 유형의 국가 송무가 폭증할 우려가 있는 만큼 일본인 명의와 조선인 명의를 구분하는 등 ‘선(先)조사 후(後)공개’의 절차를 밟아 국가 귀속 조치를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  


입력시간 : 2005-01-27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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