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머지 삶은 먼저 간 사람의 몫 작은 아들과 꿋꿋이 살아야죠"푸껫 가족여행길에 부인·장남 잃어부인이 쓴 육아일기·장남일기, 책으로 펴낼 계획

[가족] 쓰나미 피해자 오병관씨
"나머지 삶은 먼저 간 사람의 몫 작은 아들과 꿋꿋이 살아야죠"
푸껫 가족여행길에 부인·장남 잃어
부인이 쓴 육아일기·장남일기, 책으로 펴낼 계획


오병관(41)씨는 한달 전 남아시아를 강타한 쓰나미(지진 해일) 희생자를 위한 합동 위령제(1월 26일)에 참석하지 않았다. 당시 사고로 왼쪽 다리의 인대가 끊겨 거동이 어려웠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부인과 아이에 대한 애틋함이 너무 커 위령제로는 도저히 위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데다, 날마다 마음의 위령제를 지낸 왔기 때문이다.

오 씨는 작년 12월 26일 부인 이미옥(당시 38세)씨와 두 아들과 함께 태국 푸껫으로 가족 여행을 갔다가 인근 피피섬에서 쓰나미를 만나 부인과 장남 승원(당시 10세) 군을 잃었다. 오씨는 “해안에 있다 갑자기 물이 밀어 닥쳐 어린 작은 아들을 지붕 위로 올리고 뒤돌아보니 아내와 큰 아들이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 씨는 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이 악화돼 귀국했고 친형과 장인이 시신을 수습해 국내서 장례를 치른 뒤 연고가 있는 사찰에 봉안했다.

그러나 오 씨는 부인과 큰 아들을 떠나보내지 못했다. 이른 아침이면 햇살과 함께 부인이 다가 왔고, 오후엔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저녁엔 가족의 따뜻한 식탁이 한 달 가까이 착시ㆍ환청으로 이어졌다. 14년을 함께 한 삶의 기억들이 문득 문득 눈물샘을 자극하며 오 씨 부자(父子)의 주변을 맴돌았다. “살아 오면서 늘 행복했습니다. 아내가 남편과 아이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아이들도 모범적으로 잘 컸어요. 그런 아내와 아이만 보내고 나니 살아 있다는 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집안엔 가족의 흔적 여전
오 씨는 이미옥 씨의 여성적인 미덕에 이끌여 1년여 구애 끝에 결혼했다. 부부는 독실한 불교 신자여서 삶을 이해하고 공유하는 부분도 남달랐다. 큰 아들 승원군은 운동은 물론 독서를 특히 좋아했고, 전국수학경시대회에 나갈 정도로 공부를 잘 해 부모의 기대가 컸다고 한다. 오 씨 가족은 평소 전국의 방방곡곡을 여행, 가정의 화목은 물론 아이들의 성장에 관심을 기울였고 오 씨가 4년 전부터 직장생활을 접고 자영업을 하면서부터는 가족 여행도 자주 했다.

그는 쓰나미 충격 후 한달 가량 지났지만 부인, 큰 아들이 집안에 남긴 흔적을 아직 그대로 두고 있다. 작은 아들이 마음 또 상할까 걱정해 실내의 가족 사진을 정리했을 뿐이다. 그래서 집안 어디에선가 부인이, 큰 아들이 금방이라도 달려 나올 것만 같다고 한다.

오 씨는 둘째 아들이 아픈 기억으로 상처를 받을 것을 우려해 친구들과 어울리게 하고 학원을 보내고 있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 무엇보다 큰 아들이 겨우 10년의 짧은 삶을 살다 떠난 것을 생각하면 눈물부터 난다고 한다.

“요즘 부인이 생전에 읽었던 에세이를 보며 인생을 다시 생각한다”면서 “저 세상으로 간 두 사람의 몫까지 합해 작은 아들과 함께 꿋꿋이 살 생각”이라고 그는 말했다. 부인이 쓴 육아 일기와 승원 군이 4학년까지 써 온 일기를 묶어 책으로 펴내 영원히 ‘한가족’임을 확인할 계획이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5-02-02 10:20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