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의 묘약을 가져온 복덩이 우리가족 행복지수 '쑥쑥'

[가족] 입양가정 이경우 씨
'조용한 가족'에 딸 은주는 활력의 메신저

웃음의 묘약을 가져온 복덩이 우리가족 행복지수 '쑥쑥'

오후 7시. 서울 종암동의 한 아파트. 이경우(37ㆍ리오로지스틱스 대표)씨가 초인종을 누른다. 이 씨는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채 신발을 벗기도 전에 생후 9개월의 딸 은주부터 찾는다. 지난해 6월 이후 이 씨가 귀가를 서두르는 까닭이다.

“거짓말처럼, 처음 봤을 때 느낌이 왔어요. 제가 얼굴이 좀 긴 편인데, 아기도 갸름했거든요.” 그러나 그 새 은주의 볼에는 살이 도톰하게 올랐다. 이 씨가 첫 눈에 반했던 그 ‘갸름한’ 얼굴과는 영 딴판이다. 이 씨, 이번에는 첫째 아들 우형(12)과의 닮았다 한다. “큰 애 어렸을 때 사진 보면, 우리 은주 모습하고 꼭 닮았어요.”

이 씨가 막내 딸을 맞이하기 위해 입양 기관 ‘홀트아동복지회’를 처음 찾은 것은 지난 해 5월. 3~4년 전부터 입양을 고려해오다 마침내 실천으로 옮긴 것이었다. 아내 박희경(35) 씨는 “갓난 아기를 키우는 것이 부담돼 처음엔 망설였지만,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빨리 키우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용기를 냈다”고 했다. 은주를 돌보기 위해 에어로빅 강사 일을 그만 두었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집안에 이렇게 활력이 넘치는걸요.”.

“사내아이만 둘을 기르다 보니, 귀여운 딸아이의 재롱을 보고 싶었어요.” 부부가 밝힌 입양 계기는 단순했다. 무뚝뚝한 남편에, 아빠를 닮아 도통 말이 없는 두 아들까지. 온 가족이 저녁에 모여도 할 말이 없고, 웃을 일이 없었다. 말 그대로 ‘조용한 가족’이 따로 없었다. “오죽하면 앨범에 웃는 가족 사진이 한 장도 없겠어요?”박 씨의 푸념이다.

2남1녀, 서로 보듬으며 사랑키우기
그런 이 씨 가족에게 은주는 ‘웃음’이라는 소중한 선물을 안겨줬다. 태어날 때 2.6kg였던 은주는 여전히 표준 체중에는 조금 못 미치는 작은 모습(7.5kg). 하지만 남들보다 더 잘 먹고, 잘 자고, 잘 웃는다. 이 씨는 이런 은주가 마냥 기특하다. 자신도 모르게 붙은 딱지, ‘과잉 보호 아빠’가 괜히 붙었을까. 은주가 이 씨를 보고 엉금엉금 기어 오면 안쓰러워 냉큼 안아버리는 것. “언제부터인가 은주가 스스로 기어 다닐 생각은 안 하고, 아빠 얼굴만 빤히 쳐다 본다.”아내의 걱정이다.

사실 은주 때문에 달라진 환경에 가장 적응이 힘들었던 사람은 아들 우형이와 수형인지도 모른다. 특히 수형(11)이는 막내 자리를 빼앗기고 한 동안 맘 고생이 컸다. 어느 날 집에 놀러 오신 할머니(69)에게 “할머니도 엄마 아빠처럼 은주만 안고 다닐 꺼예요?” 하고 투정을 부려 가족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래도 아이들은 이제 은주를 진짜 동생으로 받아 들이고 있다. 얼마 전 방학을 이용해 나흘간 경기도 안산의 할머니 댁에 묵었던 형제는 경쟁하듯 서로 집에 전화를 걸어 은주의 안부를 묻기도 했다. “잠자리에 들면 은주 얼굴이 아른거리더라고요.”수형의 말이다.

은주는 엄마 아빠의 ‘체온’에 유독 민감하다. 밤마다 부부는 은주를 꼭 가운데 두고 재운다. 은주는 세상 모르게 잠들었다가도 새벽에 한 번씩 눈을 뜨고는 엄마 아빠가 옆에 있는가를 확인하고서야 다시 눈을 감는다. 박씨는 “엄마 아빠 숨소리를 들어야 잘 잔다”고 했다. 그 덕에 큰 맘 먹고 구입한 아기용 ‘공주 침대’는 그저 방 구석의 장식물이 됐다.

“뭐 하러 고생을 사서 하냐”며 애초에 입양을 말리던 집안 어르신들도 어느 새 은주의 웃음에 봄 눈 녹듯 사라졌다. 요즘은 은주 보는 낙에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명절이면 우리 은주가 인기가 더 올라가요. 서로 기다렸다 안으려고, 순서를 기다리죠.” 은주를 꼬옥 안은 이씨의 손에 한껏 힘이 들어간다.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 2005-02-02 10:23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