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사랑이 빚어내는 情과 和의 하모니부모님과의 아름다운 동거, 웃음 끊이지 않는 가정

[가족] 3대 가족의 사랑키우기
내리사랑이 빚어내는 情과 和의 하모니
부모님과의 아름다운 동거, 웃음 끊이지 않는 가정


“다 지 자식이고, 지 행젠데(형제인데) 머시 불팬할낍니꺼. 불팬할 거 하나도 업심니더.”

다가오는 설이면 손자 열 넷을 포함해 모두 스물 아홉의 가족들이 부산의 23평짜리 큰아들 아파트에 모여서 이틀 사흘을 보낼 것이라는 얘기에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자 임성도 - 김영순 부부가 하는 말이다. 올해 결혼 52주년을 맞는 고희의 동갑내기 부부다.

이들 부부가 사는 곳은 경기도 고양시 지축동의 조그마한 단독 주택. 손녀 금희(11), 손자 종선(8), 초등학교 교사인 며느리 김정하(39)씨, 실내 인테리어 일을 하고 있는 아들 임낙권(43)씨 등과 함께 3대 6식구가 살고 있다. 인테리어 일을 하는 아들이 손수 만든 책장과 책상 그리고 마당 한쪽의 사랑채 등 집안 구석 구석 임 씨의 손길이 닿아 있는 집이다.

“형제들끼리 서로 모시려고 하는데, 부모님이 ‘아파트’라고 하면 손사래를 치고 나서시는데 다른 도리가 있습니까. 덕분에 제가 모실 수 있게 됐죠. 넉넉한 살림은 아니지만 살 집 하나 있고, 부모님 건강하고 아이들 밝게 자라는데, 더 이상 뭘 바라겠습니까. 더 바란다면 과욕이겠죠.”

부모와의 동거에 반가운 건 아들 임 씨만이 아니다. “엄마 아빠가 늦게 들어오는 날에도 무섭지 않아요(딸 금희)”, “방학이라 집에 하루 종일 있어도 할머니랑 있으면 심심하지 않아요(아들 종선)”, “가정 교육 중요하다고 하는데 우리는 따로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이들과 얼굴 붉힐 일도 없죠. 또 부모님이랑 함께 살면 제 스스로도 말 하나 행동 하나에도 신경을 쓰게 되고 그러면서 또 많은 걸 배웁니다(부인).”

고부간·형제간 갈등은 먼나라 얘기
이에 질세라, 노부부의 칭찬이 여간 아니다. “야(얘)들 장가갈 때 10원짜리 하나 못 보태줬는데, 다들 자리 잡고는 서로 뫼실라꼬 난리제. 우리는 뭐, 그저 고맙지. 내일은 불광동 사는 막내 매느리가 하도 놀러 오라케서 또 그리 갈끼라. 이 매느리가 잘 항께 작은 매느리도 잘하고 글치(어머니).” ‘아들 집’이 아니라 아예 ‘며느리 집’이란 표현이 입에 붙었다. 그렇다 보니 고부 갈등도 먼 나라 얘기. 또 부모 모시기 위해 서로 다툴 지경이라고 하니 싸늘하게 식어 간 어느 독거 노인의 소식은 이 집에서만은 딴 나라의 얘기다. “나중에 금희나 종선이도 애미 애비한테 잘 할끼라.”

“없이 자랐지만, 형제들끼리 다툰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형제간 우애를 강조하셨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서로 많이 돕고 살았습니다. 7남매 중 다섯이 부산서 살고 있는데, 30분이면 한 데 모일 수 있는 곳에서 살 정도니깐요.” “힘들어도 부족하게 사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부모님이 가진 게 많았다면 남매간의 우애가 지금과 같았을까요?” 황금 만능의 시대라지만 형제간의 우애와, 가족의 화목에 있어서 과도한 ‘황금’은 오히려 그 행복을 저해할 수 있다는 것을 이들 가족들이 증명해 보이고 있다.

임성도 할아버지의 소일을 보자. 평범한 듯 범상하지 않다. 난로에 쓸 장작 패는 일과, 식구들이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약수를 길어다 놓은 일, 그리고 손자들의 재롱 보는 일로 하루 하루를 소일한다. 할아버지는 울타리 없는 마당 한 켠에 선 6대의 자전거만 보면 봄이 기다려진다. 자전거 6대를 온 식구들이 타고 월드컵 공원과 한강 둔치를 내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정민승 기자


입력시간 : 2005-02-02 10:28


정민승 기자 prufrock@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