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TV, 이동 중에도 DVD급 화질의 멀티미디어 동영상 시청지하철·버스 속 아침 풍경에 변화, 종이 대신 단말기로 뉴스 읽는 시대

[DMB, 멀티미디어 혁명] DMB가 여는 유비쿼터스 세상
움직이는 TV, 이동 중에도 DVD급 화질의 멀티미디어 동영상 시청
지하철·버스 속 아침 풍경에 변화, 종이 대신 단말기로 뉴스 읽는 시대


디지털 멀티미디어 방송(Digital Multi-media Broadcastingㆍ이하 DMB)의 본격 출범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휴대폰이나 전용 단말기를 통해 뉴스, 드라마 등의 방송 콘텐츠를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도록 한다는 DMB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신세계의 예감으로 사람들을 흥분시킨다. 지금까지는 TV 시청이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데 비해, 이 같은 기존의 한계를 완전히 극복한 DMB의 등장은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된다.

일상 속으로 들어서고 있는 DMB는 나아가 문명의 패러다임이 본질적으로 바뀔 것임을 예고하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고도로 발전된 디지털 정보통신(IT) 기술이 낳은 유비쿼터스(ubiquitous) 시대, 즉 언제 어디서나 컴퓨터 기반의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세상의 도래를 알리는 첨병이라는 것이다.

유비쿼터스 시대를 열어갈 핵심 기술 분야로는 DMB 외에도 휴대 인터넷(WiBro), 텔레매틱스(Telematics), 홈 네트워크(Home Network) 등이 유력하게 꼽힌다. 이들 기술은 이미 초급 수준의 상용화가 이뤄지고 있거나 조만간 본격적인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확실시되고 있다. 그 시점은 그리 멀지 않았다. 유비쿼터스 시대가 벌써 코 앞에 바짝 다가온 것이다.

농업, 산업, 정보화에 이어 인류 사회가 맞이하는 제4의 물결이라 할 만한 거대한 변화의 흐름은 과연 세상을 어떤 모습으로 바꿔 놓을 것인가. 한 가상 가족의 일상을 통해 미리 유비쿼터스 세상에 가봤다.

걸으며 회의 준비·교육방송 시청
오전 7시. 수도권 신도시에 사는 이 부장은 서울의 회사 사무실로 출근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이 부장은 매일 아침 조간 신문과 인터넷으로 새로운 소식을 대충 살펴본 다음 출근하는 게 습관이지만, 오늘은 지난밤 회식의 여파로 늦잠을 자는 바람에 그렇게 하지 못했다.

뉴스를 챙기지 못하면 업무상 곤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이 부장. 하지만 답답할 것은 없다. 현관 문을 나선 순간부터 그의 휴대폰에는 뉴스를 전해주는 TV가 켜졌다. 이른바 DMB 폰이다.

이 부장은 지하철 역으로 천천히 걸어가면서 우선 DMB 폰이 쏟아내는 뉴스를 대충 훑었다. 잠시 후 열차에 몸을 실은 그는 DMB 폰의 선택 메뉴를 눌렀다. 맞춤식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경제 관련 뉴스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회사 근처 지하철 역까지는 40여분 거리. 이 부장은 거실에서처럼 느긋하게 앉아 뉴스를 시청하며 아침 회의에서 발언할 내용들을 머리 속으로 가다듬어 나갔다.

같은 시각 이 부장의 집에서는 아들 철수 군이 등교 준비를 하고 있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철수 군도 DMB 폰을 필수품마냥 주머니에 챙겼다. 집 근처에 위치한 학교까지는 20분 가량을 걸어서 왕래한다. 상쾌한 아침 거리를 걸으며 철수 군이 습관처럼 하는 일은 DMB 폰으로 교육 방송을 시청하는 것. 특히 자신의 취약 과목인 수학과 관련, 유명 강사가 족집게처럼 집어주는 공식 암기 방법은 철수 군에게 아침 이슬처럼 싱그러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1교시 시작은 오전 9시. 학교에 도착해서도 철수 군의 ‘DMB 학습’은 한 동안 이어진다. 교실을 죽 둘러보니 교과서와 참고서를 읽는 친구들 못지않게 DMB 폰으로 예습ㆍ복습하는 친구들이 눈에 많이 띈다. 물론 더러는 DMB 폰을 이용해 음악이나 영화 같은 콘텐츠를 시청하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사실 DMB 폰 때문에 학생들을 지도하는 데 골머리를 앓기도 하는 게 요즘 일선 중고교의 풍경이다.

오전 11시 무렵 이 부장의 사무실. 회의를 마친 이 부장은 외근 중인 박 과장을 전화로 호출했다. 거래처 관계자를 만난 결과를 묻기 위해서였다. 마침 기분 좋은 성과를 올린 박 과장은 “모든 게 잘 됐습니다. 상세한 내용은 지금 바로 이메일로 보고 드리겠습니다”라고 답변했다.

동료 직원이 운전 중인 자동차를 타고 있던 박 과장은 통화가 끝나자마자 노트북을 켰다. 시속 60km로 달리는 차 안이었지만 이메일을 보내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휴대 인터넷이 널리 보급된 덕분이다. 휴대 인터넷은 언제 어디서나 이동 중에도 초고속 인터넷을 이용?수 있는 서비스로, 2006년 상반기부터 서울과 수도권에서 상용 서비스가 시작됐다. 시속 60km 이내라면 자동차, 버스, 지하철 등 그 어떤 교통 수단에서도 인터넷 사용이 가능하다.

이메일로 보고를 마친 박 과장은 동료 직원에게 “일도 잘 풀렸는데 맛있는 점심이나 먹고 들어가자”고 제의하고는, 인터넷으로 주변의 음식점을 검색했다. 현재 위치 근처에 마침 괜찮은 식당이 하나 눈에 띄었다. 박 과장은 즉각 운전석 앞에 붙어 있는 텔레매틱스 장치에 식당 이름을 입력했다. 잠시 기다리자 화면에는 식당을 어떻게 찾아가야 할지 구체적인 좌표와 방향이 알기 쉽게 나타났다.

점심 시간. 이 부장의 아내는 집에서 오후 외출을 앞두고 옷을 고르거나 화장을 하는 데 여념이 없다. 그 동안 청소 로봇이 거실과 주방, 침실 곳곳을 누비며 먼지를 빨아들이는가 하면, 지능형 냉장고는 채소, 고기, 양념, 음료수 등의 재고를 파악해 외부의 자그마한 화면에 띄웠다.

‘음, 채소와 고기를 좀 채워 넣어야겠군.’ 이 부장의 아내는 친구들과의 만남을 약간 미룬 뒤 집 근처의 할인점으로 향했다. 지하 식품 매장으로 내려간 그는 진열대 위의 채소와 고기를 꼼꼼히 살펴본 뒤 쇼핑 카트에 달린 인식기에 갖다 댔다. 그러자 인식기의 화면에는 원산지와 영양 성분 등 각종 식품 정보가 고스란히 나타났다.

RFID(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 즉 초소형 반도체 칩을 내장한 전자 태그를 이용해 사물의 정보를 처리하는 새로운 기술 덕분에 가능해진 일이다. RFID를 활용하면 언제 어디서나 모든 사물의 고유 정보를 판독하는 일이 한결 수월해진다. 기존의 바코드 시스템을 대체할 것으로 전망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홈네트워크 단말기로 집안일 원격조종
오후 4시께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카페. 이 부장의 아내와 여고 동창들이 모처럼 모였다. 으레 그렇듯 아줌마들의 수다가 시작된다. 남편 이야기, 자식들 이야기, 화장품 이야기 등으로 화제가 끊이지 않는다. 그러다 최근 크게 히트치고 있는 한 드라마에 관심이 모아졌다. 주인공과 스토리를 두고 일대 격론이 벌어진다. “DMB 폰으로 지금 확인해 보자”는 제안이 나온 것은 바로 그 때였다. 각자 DMB 폰을 열고 제목을 입력하자 화제의 드라마가 실시간으로 방송되기 시작했다. 논란은 그것으로 끝.

오랜 만에 만나서인지 친구들과의 모임은 예상 밖으로 길어졌다. 혹시 하는 마음에 집안 일이 걱정되기도 했다. 한 친구가 그만 일어서자는 말을 꺼내자, 다른 한 친구는 가방에서 뭔가를 꺼낸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집안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하게 해주는 홈 네트워크 단말기다.

홈 네트워크는 가정에서 쓰는 각종 가전 기기뿐 아니라 보안 시스템까지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시켜 원격 조종할 수 있도록 한 시스템. 그런 까닭에 요즘 주부들은 자질구레한 가사는 물론이고, 외출 중에도 집안의 안전 여부에 대한 불안감으로부터 완전 해방됐다. 그야말로 손가락만 까딱이면 집안 일을 손쉽게 해치울 수 있게 된 것이다.

“집 밖에 있으나 집 안에 있으나 별 차이가 없는 걸 보면 세상 참 편해졌지, 얘들아. 우리 오랜 만에 만났는데 만사 제쳐두고 좀 더 놀까.” 여고 동창들의 명랑한 웃음 소리와 함께 유비쿼터스 시대의 하루는 그렇게 저물어 갔다.

위성 DMB 지상파 재송신 '뜨거운 감자'

위성 DMB 사업자인 TU미디어가 지난 1월부터 시험 방송에 돌입하면서 '손 안의 TV'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DMB의 출범은 유비쿼터스 시대가 개막됐음을 알리는 생활 속의 실질적인 변화다. DMB는 TU미디어라는 단일 사업자에 의한 위성 DMB와 3월께 우선 6개 사업자가 선정될 예정인 지상파 DMB의 두 가지 형태로 시청자 앞에 선을 보인다.

위성 DMB와 지상파 DMB는 전파를 송출하는 방식에 따라 나뉘어진 개념이다. 위성 DMB는 지상의 송신소에서 일단 정지 궤도 위성으로 전파를 쏜 뒤, 위성이 이를 다시 지상의 전용 단말기를 향해 재송신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에 비해 지상파 DMB는 방송국의 송신소에서 보낸 전파를 단말기가 직접 수신하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서비스 권역에도 차이가 있다. 위성 DMB가 전국을 커버할 수 있는 반면 지상파 DMB는 일부 권역에서만 서비스가 가능한 것. 정부는 오는 3월 수도권 지상파 DMB 사업자를 우선 선정한 뒤 향후 순차적막?지방 권역별 사업자를 선정할 전망이다.

현재 시험 방송 중인 위성 DMB의 화질과 음질은 기대 이상으로 상당히 우수하다는 평가다. 하지만 지하나 건물 내부 등 위성 전파가 도달하기 힘든 '음영 지역'에서는 화면이 끊기는 등의 문제점도 드러나고 있다. TU미디어 측은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일종의 전파 중계기인 '갭 필러'(gap filler)를 계속적으로 증설한다는 방침이다. 지상파 DMB 사업자들 역시 갭 필러에 대한 투자는 필수적일 것으로 보인다.

위성 DMB의 지상파 재송신 여부도 뜨거운 감자다. TU미디어 측은 KBSㆍMBCㆍSBS 등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을 내보낼 수 없다면 가입자 확보에 어려움이 클 것이라며 정부에 지상파 재송신 허가를 요구하고 있다. 실제 시청자들을 상대로 한 여러 설문 조사에서는 지상파 DMB의 선호도가 위성 DMB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유료로 운영하는 방송 사업자가 무료를 기본 정신으로 하는 지상파 방송을 재송신하는 것은 일단 원칙에 어긋난다는 입장이다. 2월말 또는 3월경에 내려질 정부의 최종 판단에 귀추가 주목된다.

김윤현 기자


입력시간 : 2005-02-22 17:23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