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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급도 감지덕지…뭘 더 바래?
[9급 공무원, 신화를 꿈꾸다]
식을 줄 모르는 공무원 시험준비 열기, 경쟁률 갈수록 높아져




대전시청 2층에 마련된 시 지방공무원 임용시험 원서접수장을 찾은 응시생들이 원서 접수를 하고 있다.



9급에서 7급까지 오르는 데 걸리는 시간은 통상 15년. 7급에서 5급까지 오르는 데에도 15년. 결국 9급으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다면 고시(5급)를 통과한 경우보다 30년 뒤에서 출발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렇지만 9급 공무원의 인기는 식을 기미를가 전혀 없다.

이 같은 정황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올해 치러지는 행정ㆍ외무고등고시의 지원자는 2004년에 비해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인사위원회는 2월 25일 “2005년 행정ㆍ외무고시 지원자는 1만3,902명으로 지난 해 보다 5,762명(29.3%)이 감소했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올해부터 1차 시험 합격자를 대상으로 차기 1차 시험 면제를 폐지하는 한편, 행정 고시의 경우 영어 시험을 토익이나 토플 등 공인 영어 능력 시험으로 대체하고 언어 논리와 자료 해석 능력으로 가늠하는 공직 적격성 평가(PAST)를 도입한 것 등이 요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고시생은 7급, 7급은 9급으로 '전향'
고시에서 발을 돌린 이들의 다음 행선지는 어디일까. 서울 노량진동의 한교고시학원의 이우 기획실장은 “대다수가 7급으로 ‘전향’한다”고 말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공무원 시험의 경쟁률이 높아지자 이제는 눈높이를 낮춰 잡는다는 것이다. 그는 또 “이 바람에 7급 수험생들은 보다 가능성 있는 9급으로 발길을 돌리는 경향이 지난 해부터 나타나고 있다”면서 “공무원 수험생들의 하향 지원 종착역인 9급 공무원으로 경쟁률이 치열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라고 말했다. 2004년 9급 공무원 시험의 경쟁률은 89.1대1이었다. 1,798명을 선발하는 데에 전년(11만7,000여명 지원) 대비 38%가 증가한 16만1,613명이 지원해 사상 유래 없던 경쟁률을 기록했다.

공휴일인 3월 1일. 그러나 노량진동 N행정고시 학원 강의실에는 입추의 여지도 없었다. 원래 수업이 없는 날이지만, 커리큘럼의 따라가지 못한 ‘행정학’과 ‘국사’ 과목의 보강(보충 강의)이 잡힌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한 개 층에 600명씩 들어간다는 강의실이지만, 빈 자리는 거의 찾아 보기 힘들 정도의 출석률이다. 수업도 평상시와 다를 바 없이 오전 9시부터 밤 10시까지 이어졌다.

8층 강의실에서 점심 시간에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계단을 통해 건물 밖으로 나오는 데에만도 20여분이 걸렸다. 평상시 점심 도시락을 집에서 들고 나오는 조상현(29)씨는 낭패를 봤다. 휴일이던 그 날도 그렇게 많은 수험생들이 보강을 들으려 올 줄 몰랐다는 것. 아침도 거르고 나왔지만 결국 근처 편의점에서 라면으로 급하게 점심을 때울 수밖에 없었다.

최근 고시 학원의 분위기는 거개가 그렇다. 일체의 생계 유지 수단은 포기하고 학원 수업에만 목을 매다는 전업 수강생의 경우, 한 학원의 설문 조사에 의하면 수강생들의 98%가 전업 수강생인 것으로 나타났다. 아르바이트와 시험공부를 병행하던 과거의 학원 분위기와는 그래서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부산시청의 공무원 임용시험 원서접수 창구에 길게 늘어선 응시생들

대학가 공무원 시험준비 일반화
학원가의 이 같은 수험 열기는 고스란히 대학가로도 번지는 추세다. 지난 여름 전역해 가을 학기에 복학한 서강대 박재홍(25)씨는 “공강 시간(강의와 강의 사이의 빈 시간)에도 공무원 스터디 그룹을 결성해서 뜻을 같이 하는 친구들끼리 모여서 서로 공부를 하고 있는 추세”라며 캠퍼스의 분위기를 전했다. 예전에는 언론사나 공기업 등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이 모여서 상식과 논술을 그룹 스터디 형식으로 공부했으나, 일반 공무원을 목표로 잡은 학생들 사이서도 그룹스터디는 일반화 됐다는 것. 실제로 각 포털 사이트의 공무원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카페에는 ‘올해 꼭 합격하실 분만 모십니다’, ‘최다 배출 그룹 ‘낭중지추’가 새 식구를 모집합니다’ 등의 글이 하루 5~6건씩 꾸준히 오르고 있다.

대학가가 고시촌으로 변해가는 추세를 두고 한교고시학원 이우 기획실장은 이렇게 말한다. “ ‘대졸’ 또는 ‘졸업 예정’으로 학력 제한을 두는 일반 기업과 달리 공무원 시험의 경우 고졸 이상의 학력만 되면 누구나 응시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재학생 중의 많은 학생들이 즐겨 응시하는 추세다. 평균 5년 주기로 변하는 입시 시험가의 유행 양상으로 봤을 때, 이 같은 분위기는 최소 2~3년은 지속될 것이다.”
김종원ㆍ신은경씨 인터뷰
“공무원 커플만한 커플이 또 있습니까?”

이번 화이트데이(3월 14일)로 교제 700일을 맞는 김종원(가명ㆍ27) - 신은경(가명ㆍ26) 커플의 꿈은 공무원 부부가 되는 것. 지난 가을에 나란히 졸업한 후 서울 노량진동의 똑같은 학원에 등록하고 똑 같은 독서실에 등록해서 공무원 시험 준비에 열 올리고 있는 대학 졸업 동기다. 둘 다 공무원이 되는 순간, 결혼식을 올릴 계획이다.

“한 여름과 겨울에 한 달 이상의 휴가(방학)를 누리는 교사 커플들이 ‘걸어 다니는 중소기업’으로 불리며 한때 수많은 부러움을 사지 않았습니까? 주 5일 근무제가 정착 단계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일반 공무원 생활도 그에 못지 않게 질적으로 향상됐다고 봅니다.” 김씨의 말이다. “출퇴근 시간 비교적 분명하고 휴일까지 같은 날이니 여행을 가더라도 시간 맞추기가 한결 쉽지 않겠어요? 취미 생활도 같이하고, 주말도 같이 보내고….” 신씨도 많은 시간을 남편과 함께 보낼 수 있는 ‘공무원 부부의 꿈’에 부풀어 있다.

“취직은 못 했지만, 은경 부모님한테 가서 당당하게 인사 드리고 장래 계획(공무원)을 말씀 드렸더니 ‘(취업)서두르지 말고 꼼꼼히 준비해서 꼭 공무원이 되라’며 격려해 주셨습니다.” “오빠(김종원)의 부모님도 오빠랑 같이 공무원 시험 준비한다니까 좋아라 하셨죠. ‘애 생기면 직접 봐 주겠다’시며 도중하차하지 말고 끝까지 가라고 하십니다.” 지난 해 7급ㆍ9급 공무원 시험에 응시해 각각 공무원의 문턱을 경험한 이들은 올해 시험을 낙관하고 있다.

“때 맞춰 직장 얻고, 적당한 시기에 결혼하고 또 애 낳고…. 이렇게 때를 놓치지 않고 남들 하는 일 자신도 한 번씩 다 하면서 여유롭게, 평범하게 살고 싶습니다.” 학부에서 행정학을 전공한 김 씨와 신 씨가 다른 사람들처럼 고시를 통한 입신양면을 꿈꾸지 않았을 리 만무하다. “7ㆍ9급 공무원 시험도 욕심일 수 있습니다만, 더 큰 욕심을 줄이면서 일의 보람도 느끼고, 또 일이 아닌 다른 데서도 행복을 찾으려 합니다. 위로 올라가면 밑으로 떨어지는 일밖에 더 있습니까?”

“평범하게 사는 게 제일 힘든 일이랍니다.” 젊은 사람들이 너무 쉽게, 편안하게만 살려고 하는 거 아닌가 하고 넌지시 묻자 기다렸다는 듯 되돌아 오는 그들의 답이다.




정민승 기자 prufrock@empal.com


입력시간 : 2005-03-09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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