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으로 쓴 인생역전 신화고졸 9급 교육공무원 출신, '일과 사람에 쏟은 정성이 나를 있게 해"

이기우 총리비서실장 인터뷰
[9급 공무원, 신화를 꿈꾸다] '정성'으로 쓴 인생역전 신화
고졸 9급 교육공무원 출신, '일과 사람에 쏟은 정성이 나를 있게 해"


“고졸 9급 출신이었기에, 역으로 오늘의 내가 있습니다.”

흔히들 ‘공무원 신화’로 일컫는 이기우 총리 비서실장(57ㆍ차관급)이 요약하는 자신의 인생 역정이다. 고시 출신도, 명문대 출신도 아닌 지방의 9급 교육 공무원 출신인 그가 일궈낸 오늘은 자신의 인생 사전에서 ‘자만’이란 어휘가 들어 갈 자리에 ‘정성’이란 단어를 새겨 넣은 덕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잊지 않은 하루 하루가 그의 공직 생활 37년이다.

이해찬 총리와의 인연은 이 총리가 교육부 장관에 부임한 1998년에 시작됐다. 당시 이 실장은 교육부 교육환경개선 국장이었다. 이 장관의 부임이 교육정책 일대 개혁을 예고하던 상황에서 이기우 당시 국장은 자신의 부족함을 내세워 국립대나 지방 교육청으로 전보해 달라며 차관에 건의했다. 그러나 이 장관은 부임 몇 개월 후 이 국장에게 교육부 서열 3위 자리인 기획관리실장에 임명하려 했다. 이 장관이 갑자기 물러나는 바람에 임명은 후임 김덕중 장관 시절에 됐지만 이 총리가 당시 왜 그렇게 중책을 맡기려 했는지 여태 물어 보지 못 했다고 한다. 다만 이 총리가 자신을 일컬어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인물”이라 평한 바에서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일과 사람에 대한 예사롭지 않은 그의‘정성’을 알아준 듯하다는 것이다.

고향은 거제도다. 빈농 집안 출신이었지만 다행히 공부를 곧잘 해 명문 부산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객지에서의 궁핍한 고학 생활에 병까지 얻어 고등학교도 4년 만에 졸업했다. 건강 탓에 대학 진학도 실패했다. 그는 가난한 재수생 시절,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친구 따라 우연히 본 9급 시험에 덜컥 붙어 버린 것이다. 돈도 벌면서 재수하겠다는 계산에, 결국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다.

1967년 공직의 첫 발을 디딘 곳은 부산 대연동 우체국 조건부(6개월 수련 과정) 서기보였다. 그러나 그 곳은 아무래도 그의 길이 아니었다. 다시 9급 시험을 본 뒤 그 해, 고향 거제군 교육청 9급으로 발령받아 교육 공무원으로서 인연을 맺었다.

그런데 거제 교육청 시절, 이 실장은 지금의 그를 있게 한 뼈저린 경험을 한다. 당시 그는 재수를 한답시고 대충 대충 자리만 지켰다. 소위 복지부동한 셈. 그걸 모를 리 없는 윗사람이 어느 날 자신의 책상을 빼 버리고, 타 부서로 전격 좌천시켜 버렸다. 수모이자 충격이었다. 결국 이 사건은 그에게 쓰디쓴 약이 됐다. ‘정성스런 공무원’이라는 자신의 철학에 도달하게 한 결정적 계기였다. 이 실장은 “그 때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의 기준에서, ‘1등 공무원’이 되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고 회고한다. 대학 재수를 과감히 접은 것은 물론이다.

이 실장 별명은 ‘발치수 320㎜ 마당발’이다. 김범일 대구시 정부부시장(전 행정자치부 기획관리실장)이 붙인 것이다. 그의 마당발 행보는 1989년 교육부 과장으로 있을 때인 국회에 파견 근무를 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국회는 여소 야대로, 청와대에 안 통하는 민원은 모두 국회로 집합하던 때였다. 특히 민원이 많기로 소문난 교육 관련 분야 민원의 국회 통로가 바로 그였다.

당시 그의 정성을 다한 수완은 “ 이기우에게 부탁해서 안 되면 애당초 안 되는 일이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하니 알만하다. 휴일 없이 뛰어다닌 그 당시를 그는 “옷깃을 스치는 인연도 내가 할 수 있는 정성을 다 한 것이 큰 재산이 되었다”고 술회한다.

기자가 지난 2일 인터뷰를 위해 광화문 정부청사 집무실에서 찾았을 때, 자료 스크랩 제공 등 편한 취재를 위해 그가 보여준 세심한 배려는 기자의 예상을 넘어선 것이었다. 기자 역시 그와의 첫 만남에서 그를 기억할 예사롭지 않은 ‘정성’을 경험한 셈이다.

조신 차장


입력시간 : 2005-03-09 14:13


조신 차장 shincho@hk.co.kr